박상주가 만난 '비즈니스 한류의 개척자들'

"케냐 초원에서 빨리빨리 대신 뽈레뽈레 삽니다"

2013-09-09 17:42:21 게재

아프리카 '한국인 추장' 홍교관 친구사파리 대표

혹시 일자리를 찾고 계십니까. 그런 당신은 '우물 안 개구리'는 아닌지요. 눈과 귀를 활짝 열고 글로벌 무대를 살펴보십시오. 지구촌 곳곳에서 '비즈니스 한류'를 일으키고 있는 개척자들이 많습니다. 그 생생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실래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더군요.

 

누군가 한국에서보다 나은 삶의 질을 찾아 아프리카로 떠난다면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지 않을까. 세계 어느 지역보다 극심한 기아와 질병, 내란, 에이즈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곳이 아프리카 아닌가. 과연 그런 곳에서 한국보다 더 나은 삶을 찾는 일이 가능할까.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서 사파리 전문 여행사를 하고 있는 홍교관(49)-박선아(47) 부부는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고단한 생활 대신 '뽈레뽈레'(스와힐리어로 천천히 천천히) 진행되는 아프리카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어려서부터 학업 및 입시 경쟁에 시달리고, 젊은 시절에는 취업준비와 승진경쟁에 청춘을 소진하고, 중년 이후에는 정리해고 공포와 노후생활을 걱정해야 하는, 한국의 팍팍한 삶을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잘나가던 대기업 영업사원 자리도 내던졌고, 짭짤한 수익을 안겨주던 식당사업도 접었다. 2000년 8월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마사이족 차림을 한 홍교관 친구사파리 사장이 케냐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에서 고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홍 사장은 '빨리 빨리' 대신 '뽈레뽈레'(스와힐리어로 천천히) 살 수 있는 아프리카가 좋다고 했다.

그들은 지금 마사이마라와 암보셀리, 세렝게티, 응고롱고로 등 아프리카 대평원을 누비는 자유인으로 살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행도 하고, 안정된 수익도 올리고, 프랑스계 학교에 다니는 외동딸 유니(13)의 교육에도 만족하면서 '뽈레뽈레'의 삶을 만끽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자기 주도적일까.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설계하고, 그 방향으로 한발씩 나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라! 말이야 쉽지만 어디 행동으로 옮기는 게 쉬운 일인가. 더군다나 처자식 줄줄이 달린 입장에서는 꿈조차 꾸기 어려운 일. 나이 들수록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기는커녕 세상이 시키는 대로 순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홍 사장은 이런 일상의 족쇄들을 과감히 벗어 던져버렸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나가던 대기업 영업사원 자리를 내 던졌고, 짭짤한 수익을 안겨주던 식당을 접었고, 아프리카로 무대를 옮긴 이후에는 인근에 소문이 날 정도로 운영이 잘 되던 제과점과 카페테리아를 차례로 정리했다. 하나같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 주던 일들이었다. 안정적인 생활을 본능적으로 찾게 마련인 해외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가슴이 시키는 대로 주저 없이 새로운 삶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홍 사장은 지금 케냐 대평원을 무대로 한 여행업을 키우는 일에 푹 빠져 있었다. 거대한 아프리카 초원 위에 새로운 삶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아침 7시 쯤 홍 사장과 함께 나이로비에서 꼽히는 특급호텔 중 하나인 사파리파크호텔에 도착했다. 사파리파크호텔은 '카지노 대부' 였던 고 전낙원 파라다이스그룹 회장이 1974년 설립한 나이로비 최고의 호텔이다. 1970년대 중반에 아프리카에서 카지노 사업을 시작한 전낙원 회장의 안목이 놀랍다. 10만여 평의 녹지 위에 들어선 아프리칸 방갈로 형식의 객실들과 야자수, 수영장, 산책로 등이 도심의 안락함과 자연의 상쾌함을 함께 만들어내고 있었다.

홍 사장이 호텔 1층에 위치한 한 사무실의 문을 밀고 들어선다. 사무실 문에는 'Chin Gu Safari'란 간판이 걸려있었다. 컴퓨터가 놓여 있는 책상 두 개와 손님 접대용 작은 의자 몇 개가 차지하고 있는 3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다. '친구 사파리'의 영업소였다. 사파리파크호텔이 지정한 공식 여행사 자격도 얻었다고 했다. 컴퓨터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책상 위 서류를 뒤적거리는 등 한동안 이것저것 들여다보던 홍 사장은 호텔 이층 카페테리아로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카페테리아에는 새벽 비행기로 도착을 한 승객들과 조종사, 승무원들이 빵과 커피 등으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대한항공은 2012년 6월부터 주 3회 인천공항-나이로비 직항노선을 운항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 조짐을 보이면서 취한 선제적 조처다. 대한항공이 한국 관광객들을 싣고 오는 화요일과 목요일, 토요일 아침은 홍 사장에겐 장날 같은 시간인 셈이다

"사파리파크호텔은 대한항공 조종사와 승무원들의 전용 숙소일 뿐 아니라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입니다. 대한항공 비행기가 들어오는 날 아침에는 사파리파크호텔을 한 바퀴 돌면서 인사를 한답니다."

7시40분쯤 나이로비의 사파리파크호텔 앞에서 사파리 지프에 올랐다. 홍 사장이 유치한 고객 세 분을 모시고 마사이마라 사파리 여행을 가는 길에 따라 나선 것이다. 출근길 체증 때문에 시내를 벗어나기까지 애를 먹어야 했다. 그러나 나이로비 시내를 벗어나 탁 트인 도로위로 들어서자 언제 짜증이 났나는 듯 몸과 마음이 상쾌해진다.

3시간 쯤 달렸을까. 민가들의 숫자가 부쩍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지프는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드디어 악명 높은 '아프리칸 마사지'가 시작된다.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리는 차가 이리저리 요동치면서 전신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에서 즐거운 탄성이 터지기 시작한다. 아직 국립공원으로 진입을 하지 않았는데도 길 양편에서 얼룩말과 가젤, 기린 등 야생동물들이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알록달록 멋진 망토를 걸친 마사이족 목동들이 소와 양, 염소 등 가축을 몰고 가는 모습도 큰 눈요기 거리였다. 나이로비에서 마사이마라까지 1시간 걸리는 경비행기를 이용하면 누릴 수 없는 케냐의 진면목이었다. 게다가 아프리카 야생동물들에 대한 홍 사장의 해박한 설명과 걸쭉한 인생담은 마사이마라 국립공원까지 가는 4시간 반 동안 지루함을 허하지 않았다.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이제야 만난 것 같아요. 저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는 것일 겁니다. 고등학교나 대학시절엔 선후배들과 몰려다니는 게 큰 낙이었어요. 운동을 워낙 좋아하니까 이곳에 와서도 나이로비 한인 테니스회와 골프회 회장 등을 맡아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보면 호기심이 발동하고, 누구를 만나던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는 재주가 있지요. 그런 저에게 여행업은 아주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 사장이 여행업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건 2004년쯤이었다. 2000년 8월 처음 아프리카에 들어와 시작한 빵집인 '홍스 베이커리'가 안정궤도에 진입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 시작할 때였다. 현지인 직원들이 홍 사장 없이도 빵을 구울 줄 알았기 때문에 훨씬 자유로워진 것이다. 근질근질한 몸도 풀 겸 홍 사장은 이따금씩 지인들이 부탁하는 가이드 역할을 해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여행업과 끈을 맺게 된 계기는 2011년 5월 나이로비에서 열린 삼성 아프리카포럼이었다. 삼성포럼은 해당지역 바이어와 거래처, 언론사 기자 등을 대상으로 신제품을 공개하는 행사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1000여명의 바이어들과 기자들을 초청하는 대단한 행사입니다. 당시 나이로비 케냐타국제콘퍼런스센터(KICC)에서 열렸지요. 우리나라 코엑스쯤 되는 곳입니다. 삼성포럼이 열리기 몇 달 전, 평소 알고 지내던 나이로비대학 관광학과의 데이비드 교수가 저에게 솔깃한 제안을 하더군요. 함께 여행사를 차리자는 거예요. 삼성포럼을 봐라, 앞으로 한국 기업들이 아프리카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할 거다, 지난 수년 간 사파리 관광을 하려는 한국관광객들의 수도 눈에 띄게 늘고 있지 않느냐, 이렇게 저를 설득하더라고요.

2011년 4월 데이비드 교수와 NGO(비정부기구)에서 일하던 아가씨 한 명이랑 셋이서 '프렌즈 투어 엔 트래블'이란 여행사를 차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장기적으로 케냐의 관광 인프라를 생각해볼 때 여행업의 비전이 밝다고 생각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여행업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저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놀면서 일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막상 여행사를 차려 놓으니까 두 사람은 코빼기도 안 내비치더라고요.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친구 사파리'로 이름을 바꾸면서 독립을 했지요. 현재 현지인 직원 7명을 두고 있습니다. 한 달 3만~6만 달러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어요. 성수기와 비수기 사이에 차이가 많이 나지요."

귀로는 홍 사장의 입담을 즐기고, 눈으로는 마사이족들이 사는 초원의 풍경을 감상하는 사이에 지프는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우리 숙소는 강가의 우거진 숲속에 들어앉아 있는 텐트형 로지였다. 텐트라고는 하지만 내부는 특급호텔 못지않을 정도로 깨끗한 침대와 샤워시설 등이 갖춰져 있었다.

2m는 족히 돼 보이는 커다란 악어가 우리 텐트 바로 앞을 흐르는 강가 풀섶에 누워있었다. 한 무리의 개코원숭이들이 강 건너편에서 우리를 원숭이 바라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로지에 짐을 풀고 늦은 점심을 먹은 뒤 본격적으로 마사이마라 탐험에 나서기 위해 지프에 올랐다.

마사이마라 마사이마라는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한 덩어리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적인 야생동물보호구역이다. 마사마라가 제주도 보다 조금 작은 1,670㎢이고, 세렝게티는 1만4760㎢나 되는 광대한 규모다. 동물들은 풀이 많은 지역을 찾아 양쪽을 자유롭게 오가며 생활을 한다. 특히 7~10월 사이 수천만 마리의 동물들이 세렝게티를 떠나 마사이마라로 이동하는 장면은 드넓은 초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감동적인 대서사시다.

"마사이마라와 세렝게티 중 어디가 더 좋으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정말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이지요. 마사이마라는 상대적으로 좁은 지역에 많은 동물들이 몰려 있습니다. 누 혹은 얼룩말, 코끼리, 가젤 등 흔한 동물들은 물론 사자나 표범, 코뿔소 등 숫자가 적은 친구들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또한 세렝게티가 정해진 길만 따라 사파리를 할 수 있는 반면 마사이마라는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게 허용됩니다. 세렝게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드넓은 초원을 보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인간에겐 금지된 성역으로 발을 들여놓는 기분이 이럴까. 가벼운 흥분과 설렘이 가슴에 들어찬다. 어찌 보면 마사이마라는 동물들에겐 '노아의 방주'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야생동물들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최후의 공간 아닌가.
 

아프리카라는 거대한 도화지 위에 그려진 저 찬란한 초원은 누구의 작품일까. 만물의 창조주가 작심을 하고 붓을 들면 저런 그림이 나올까. 망망한 황금빛 초원이 눈부신 햇살을 가득 안은 채 끝 간 데 없이 출렁이고 있었다. 일행들은 어느 새 의자에서 일어나 지프의 지붕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는 휴대전화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짝 잃은 타조 한 마리라 뒤뚱뒤뚱 홀로 산보를 하고 있었다. 우뚝한 두 뿔과 커다란 귀를 쫑긋 세운 채 긴 다리로 깡충깡충 날렵하게 뛰어다니는 가젤들의 모습은 우아함과 귀여움을 함께 갖추고 있었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친구들은 누떼들이다. 마사이마라와 세렝게티에 모두 1300만 마리나 살고 있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누는 신이 모든 동물들을 만들고 난 후에 남은 자투리들을 이용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이에나의 몸통에다가 염소의 얼굴을 붙이고, 사자의 갈기, 버팔로의 뿔, 소의 발굽을 재활용해서 만들었다는 거지요. 누의 생김새를 뜯어보면 참 그럴듯한 해석이에요."

갑자기 일행 중 누군가의 입에서 "야, 코끼리다"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코끼리 10여 마리가 뚜벅뚜벅 어딘가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었다. 작은 아기 코끼리 한 마리가 행여 엄마랑 떨어질세라 허리춤에 찰싹 붙어 걷고 있었다. 홍 사장이 코끼리 가족의 평화로운 나들이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코끼리는 기억력이 아주 비상합니다. 30~40년 전에 물을 마셨던 우물을 기억하고 다시 찾아가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답니다. 코끼리는 암컷이 대장입니다. 임신기간이 무려 22개월이나 되지요."

갑자기 지프가 속력을 늦추는가 싶더니 홍 사장이 긴장된 표정으로 한쪽을 가리킨다. 사파리 차량이 다니는 길 한 가운데 한 무리의 사자들이 한가롭게 모여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저 놈이 대장 수컷입니다. 수사자는 참 못된 습성을 지니고 있어요. 새로 대장이 된 수사자는 어린 수컷들을 다 물어 죽입니다. 생존력이 강한 놈들만 무리에서 도망을 쳐서 살아남는 거지요. 게다가 암컷들이 힘들게 사냥을 해 오면 연한 내장과 넓적다리 등으로 자신의 배를 먼저 채운 뒤 나머지를 가족들에게 넘깁니다. 사자뿐 아니라 이곳은 강한 수컷이 지배하는 공간입니다. 임팔라는 수컷 한 마리가 암컷 50마리까지 거느리기도 한답니다."

사자나 표범, 치타, 하이에나 등 포식자들이 움직이지 않는 한 초원은 정적 속의 평화를 유지한다. 초원을 지배하는 기본 리듬은 '빨리빨리'가 아니라 '뽈레뽈레'다. 포식자들이 사냥을 하는 잠깐 잠깐의 급박한 박동을 제외한다면 초원은 아주 느릿느릿 움직인다. 지평선 서편으로 뉘엿뉘엿 붉은 태양이 넘어간다. 홍 사장이 독백처럼 한 마디를 던진다.

"얼마나 평화롭고 조용합니까. 24시간 연중무휴로 허둥허둥 쫓기며 사는 우리의 삶과는 아주 다른 세상이지요. 저 동물들처럼 서로 비교하지 않고 단순하게 사는 케냐에서의 삶이 너무 편하고 좋습니다."

언론인·오지여행가 sangjo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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