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규칙' 정하는 글로벌 경쟁 본격화

2023-09-15 11:34:09 게재

유럽 'AI기업에 무거운 책임 부과', 중국 '생성내용 통제', 미국 '자율규제 우선'

미국의 대표적인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이 13일(현지시간)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미 연방의회가 주관한 비공개 인공지능(AI) 회의에는 오픈AI CEO 샘 올트만과 엔비디아 CEO 젠슨 황,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와 CEO 사티아 나델라가 참석했다.

이번 포럼을 개최한 민주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AI의 위험성을 최소화하면서 그 기술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밝혔다.

사진 왼쪽 위부터 오픈AI CEO 샘 올트만,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 MS CEO 사티야 나델라. 사진 AF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하면서 챗봇의 기반기술인 대규모 언어모델이 설득력 있는 텍스트 구절을 만들어내고 에세이를 직접 작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전세계에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이 분야 기술기업들은 텍스트와 사실적인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는 자체 생성형AI 도구를 출시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동시에 잘못된 정보를 생성하고 퍼뜨릴 가능성, 창의적인 산업에서 일자리를 대체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 인간보다 더 똑똑해져 인간을 대체할 위험성 등 위기의식도 커졌다.

올해 7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AI로 인해 일자리를 대체당할 위험이 가장 높은 직종은 회원국 전체 고용의 약 27%를 차지하는 고도숙련 사무직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OECD는 "바닥을 향한 경쟁을 피하려면 긴급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각국 간 대응을 조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국립 데이터과학·AI연구소인 '앨런 튜링 연구소'의 데이비드 레슬리 교수는 "생성형AI 확산에 따른 결과는 한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제적인 공동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4일 "전세계 규제당국과 기술기업들이 AI를 규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규제방법과 규모에 관해선 지역과 나라마다 큰 차이가 난다"고 전했다.

'브뤼셀 효과' 노리는 유럽

EU는 올해 말까지 AI 규제안을 최종 승인할 계획이다. 전세계 데이터보호법의 기본틀을 제공한 유럽은 AI 규제와 관련해서도 다른 국가들이 모방할 수 있는 기준안을 설정하고자 한다. 이른바 '브뤼셀 효과'다. 유럽이 규칙을 만들면 다른 나라는 그 틀에서 비즈니스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AI 법안 제정작업은 수년 전 시작됐다. 안면인식 등 무분별한 기술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지난해 말 생성형AI가 등장하면서 접근방식이 바뀌었다.

이 기술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의회는 생성형AI 기술이 기반한 기초모델에 법률을 적용하는 것을 검토중이다. 다른 시스템에 AI기술을 내장한 경우에도 해당 기초모델 제작자가 자신의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구글 글로벌업무 담당 사장인 켄트 워커는 "타자기 제조업체가 타자된 글의 명예훼손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합리적인 선을 찾아야 한다. 대부분의 법률시스템에서 그 선은 예측가능한 피해의 위험"이라고 말했다.

또 유럽의회 검토안에 따르면 기초모델 제작자는 AI시스템이 학습한 데이터를 식별해 이를 공개해야 한다. 텍스트나 이미지 같은 콘텐츠 제작자가 이에 대한 보상을 얻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검토안에 대해 150개 이상의 기업은 지난 6월 유럽위원회와 의회, 회원국들에 서한을 보내 "이 제안은 유럽의 경쟁력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동차 제조업체 르노, 맥주 제조업체 하이네켄 등 다양한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로 기술을 개발하고 구현하는 기업들에게 불균형한 규정준수 비용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오픈AI 올트만 CEO는 해당 안이 발표된 올해 5월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준수할 수 없다면 유럽 내 운영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후 트위터에 "유럽을 떠날 계획은 없다"는 글을 올리며 입장을 번복했다.

IBM 정부·규제 담당 부사장인 크리스 파딜라는 "유럽의 방침은 과잉규제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핵심가치 우선

중국은 추천 알고리즘과 생성형AI를 비롯한 다양한 신기술에 표적 규제를 도입하는 한편, 향후 수년 내 광범위한 국가AI법 초안을 마련할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생성형AI 규제를 통해 '사회주의 핵심가치'를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AI가 생성한 정보를 통제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지난달 발효된 규정에 따라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품을 제공하는 생성형AI 제공업체는 당국의 보안검토를 받아야 한다. 바이두와 바이트댄스를 포함한 여러 중국 기술기업은 2주 전 당국의 승인을 받고 일반대중에게 생성형AI 제품을 출시했다.

이러한 규제는 외국기업에도 적용된다. 때문에 중국 소비자에게 콘텐츠를 생성하는 AI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자발적이어야 혁신 살려

미국은 현재까지 업계 자율규제를 허용했다. 지난 7월 백악관에서 MS와 오픈AI, 구글, 아마존, 메타 CEO들이 일련의 자발적 약속에 서명했다. AI시스템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전 내·외부 테스트를 실시해 사람들이 AI로 생성된 콘텐츠를 식별케 하는 한편 시스템의 기능과 한계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는 것 등이다.

미 국무부 사이버공간·디지털정책 담당대사인 너새니얼 픽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중요한 신기술 분야의 혁신능력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발적이라는 것은 빠르다는 뜻이다. 기술변화 속도를 고려할 때 규제 구조를 마련하는 데 걸릴 10년이라는 시간은 의미없다"고 덧붙였다.

미 연방의회는 AI 규제법안 마련에 신중한 접근방식을 취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6월 슈머 원내대표는 의원들이 업계 임원과 전문가, 활동가들로부터 AI 관련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이른바 '인사이트 포럼'을 시작했다.

바이든정부는 '책임있는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행정명령을 마련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언제 서명할지, 어떤 조치를 포함할지는 불분명하다. FT는 "미국기업에 대한 지침을 설정하는 것만큼이나 중국 AI 프로그램 능력을 제한하는 데에도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자율규제, 믿을 수 있을까

AI산업이 상당한 수준의 규제를 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할 전망이다. 규제입법에 가장 근접한 EU의 AI법조차 법 제정 후 약 2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관련 기업들이 이를 준수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국가 간 공통의 규제근거가 없기 때문에 기업들의 규정준수를 파악하는 일은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기업들은 특정시장에서 어떻게 운영할지, 특정지역의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다른 모델을 설계하거나 다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 처지다.

MS와 구글은 기초모델을 변경할지 여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현지법률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AI 분야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4개 기업, 즉 앤스로픽 구글 MS 오픈AI는 지난 7월 '프론티어 모델 포럼'을 설립해 책임감 있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방법에 대해 함께 협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소셜미디어 등장에 따른 대규모 기술혁명에서 자율규제라는 접근방식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지적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틱톡 등을 규제하는 법안은 아직 구체화 과정에 있다. EU의 디지털서비스법은 이제 막 시행되기 시작했고, 영국 온라인안전법안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미국의 소셜미디어 규제는 주로 주정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규제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가장 인기있는 플랫폼에서 잘못된 정보와 유해한 콘텐츠가 난무하지만 기업소유자에 대한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앨런 튜링 연구소의 레슬리 교수는 "분명한 건 자율규제가 효과가 없었다는 점"이라며 "우리의 정치·사회 생활의 많은 부분이 실리콘밸리의 '빨리빨리' 태도로 형성되고 있다. 이는 모두 자율규제에 기반한 것이었다. 따라서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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