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실리챙기는 베트남, 제편 만들려는 미국 치열한 수싸움

2023-10-13 12:10:37 게재

미국-베트남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의 의미와 한국의 대베트남 협력 방향 … 한-미-베 공동사업 가능해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전략실장

지난달 한국의 대베트남 수출이 9개월 만에 플러스로 전환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한국의 대아세안 수출은 약 50%가 베트남과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대베트남 수출 품목의 80% 이상은 2018년 이후 중간재이다. 이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대베트남 수출 증가는 베트남의 대세계 수출 증가를 의미하고, 이는 다시 한국의 대베트남 수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과 베트남 경제가 긴밀하게 연결된 상황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은 한국과 베트남간 경제협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베트남과 미국간 향후 협력 방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미국과 양자관계 두단계 격상 =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동안 베트남의 대미국 수출은 약 4.6배 증가했다. 특히 2018년 미·중 무역 갈등이 고조된 후, 베트남의 대미국 수출은 2018년 475억 달러에서 2022년 1091억 달러로 급증하면서, 베트남은 중국의 우회 수출기지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2023년 9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은 양국이 오해보다는 협력을 통해 이익을 공유할 것임을 시사한다. 이를 방증하듯 바이든 대통령은 베트남 방문 계기에 양국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두 단계 격상했다.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는 베트남이 맺고 있는 양자 외교관계 가운데 가장 상위 단계이다.

베트남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미국과의 양자관계 개선을 자제해 왔다. 2045년까지 고소득 경제 도달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드러낸 베트남은 경제구조의 고도화와 다각화가 필요하다. 기존의 전통적 제조업 이외에 반도체 및 첨단 산업 부문에서 미국과 협력을 강화한다는 점은 베트남에 양자관계 격상의 충분한 유인이 된다. 한편 미국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상쇄하려는 안보적 목적과 베트남으로 이전한 탈중국 공급망의 활용을 통해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베트남과 협력에 적극적이다.

◆반도체 공급망에 베트남 끌어들이기 = 먼저 바이든 미 대통령은 베트남의 반도체 생태계의 빠른 발전을 지원하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베트남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협력을 적극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이를 위해 종자 자금으로 200만 달러의 '반도체 인력 양성 이니셔티브'를 출범하고, 반도체 조립, 테스트 및 패키징을 위한 실습 교육 실험실과 교육 과정을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또한 양국은 '전자 및 선도 기술 발전 파트너십(DELTA)' 네트워크를 출범하기로 했다. 회복력 있는 기술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유사 입장국과 기술 전략을 연계 및 조정하고, 주요 정부 및 산업계 이해당사자가 네트워크를 통해 협력을 촉진할 계획이다.

특히 인재 육성, 정책 조정 및 전자 부품 제조 부문간 효율성 개선에 중점을 둘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베트남과 미국은 '베-미 과학기술 연구협정(VUSTAR)'을 맺고 인공지능, 연구개발(R&D) 및 거버넌스, 보건 및 의학, 기후 과학, 생명공학, 보존 분야에서 공동연구를 통해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베트남의 대규모 생산역량과 풍부한 인적자원, 중국 의존도에 대한 축소 노력 이외에 베트남-미국 정상간 반도체 및 첨단 산업 협력을 확대하기로 함에 따라, 베트남은 반도체 공급망의 이상적 파트너로 여겨지면서 삼성, 인텔, SKC, 한미 반도체 등 민간기업들은 베트남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반도체기판(FC-BGA) 사업을 위해 총 22억7000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고,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반도체 조립, 패키징, 테스트 업체인 암코르 테크놀로지(Amkor Technology)는 베트남 박닌성에 16억 달러를 투자해 올해 말 신규 공장 개설을 준비 중이다.

한편 한미 반도체는 박닌성 북쪽에 지난 5월에 신규 지사를 설립하였다. 미국의 거대 칩 제조업체인 인텔도 15억 달러 투자에 이어 1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할 예정이다. 또한 인쇄회로기판 제조업체인 한국의 하나마이크론도 2025년까지 베트남 공장 근로자 수를 30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9월 11일(현지시간) 보 반 트엉 국가주석과 회담을 열었다. 양국은 상호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하고 경제 교류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하노이 AFP=연합뉴스

 

◆베트남, 전력과 인력 부족 해결 과제 = 그러나 미국과 반도체 및 첨단 산업 부문 협력을 통해 성장하려면 베트남은 경제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먼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중요하다. 2022년 12월에 베트남은 203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5년 앞당기기로 약속하는 '공정한 에너지전환 파트너십(Just Energy Transition Partnership)'에 서명했고 G7 및 유럽 선진국으로부터 155억 달러를 향후 3~5년간 지원받기로 했다.

이를 위해 베트남은 석탄 화력 발전 용량을 2030년까지 37GW에서 30.2GW로 줄이고 전제 전력의 재생에너지 비율을 36%에서 47%로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에 성공해도 송전망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올해 5~6월 경험했던 전력 부족 문제를 다시 겪을 수 있다.

둘째, 전문 인력의 부족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현재 베트남은 반도체 산업에 종사가 가능한 숙련 엔지니어의 숫자가 5~6천 명에 불과하다. 반도체 부문과 첨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관련 학과의 졸업생 수를 늘려야 한다.

셋째, 베트남은 저부가가치 생산경제에서 고부가가치 생산경제로 전환할 때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처럼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산업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조업과 함께 산업 고도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금융, 물류, 법률 서비스 부문의 성장도 중요하다. 최근까지 GDP에서 서비스 부문의 비중은 늘었지만, 생산성은 여전히 낮다. 노동자당 부가가치로 측정한 2019년 베트남 서비스 부문의 노동 생산성은 노동자당 5000달러에 불과했다.

경쟁국인 말레이시아는 2만900달러, 필리핀은 9300달러, 인도네시아는 7300달러라는 점을 고려할 때 베트남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

◆베트남 대외정책은 독립과 자주 강화 = 한편 미국은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베트남의 태도를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베트남 대외정책의 핵심은 독립과 자주를 강화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유지를 강조하며 베트남에 가장 유리하도록 미국과 중국을 상대하는 것이 지금까지 베트남 대외정책의 핵심이었다. 체제안정을 중시하는 베트남 공산당 지도자의 입장을 중국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바이든 미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 앞서 중국 대외연락부장이 베트남 응웬푸쫑 총비서를 예방했고, 정상간 연례회의를 갖기로 한 점은 이를 방증한다. 또한 베트남이 G7뿐 아니라 BRICS 회의에도 참석했을 뿐 아니라, 지난 9월 중국이 '2023 표준지도'를 발표하며 남중국해를 자국영토로 표시했음에도 중-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이를 논의한 흔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큰 틀에서 베트남의 전략적 궤도가 변화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또한 지난 9월 10일 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미국-베트남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선언에 대한 팩트 쉬트(Fact Sheet)'를 봐도 미국은 베트남의 입장을 인식한 것 같다. 양국이 협력 목적을 위해 '함께 일 하겠다(work together)'고 밝힘으로써 일방이 희생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앞서 이야기한 인력 양성 사업에 대해서도 미국은 초기 종자자금 200만 달러를 제공하고, 향후 베트남 정부 및 민간 부문의 지원과 함께하겠다는 점을 밝힌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양국 사이에 한국의 역할 분명히 존재 = 또한 정상 방문 계기에 체결한 '공급망 지원 신반도체 파트너십'도 베트남의 반도체 생태계 역량 구축이 미국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공식화했다.

특히 베트남의 반도체 생태계, 규제 프레임워크, 인력 및 관련 인프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2022년 미국 CHIPS법에 따라 조성된 '국제기술안보혁신(ITIS) 기금'을 활용하기로 했는데, 기금 규모가 연 1억 달러씩 총 5억 달러라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이 파트너 국가 가운데 베트남을 어느 정도 우선순위에 두었는지 의문이다.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으려면, 신뢰할 수 있는 국가임을 명확히 하라는 의도로도 해석할 수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으로 양국 관계를 격상하고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양국 관계를 꾸려 나갈 것으로 관찰된다. 미국과 베트남이 서로를 완전히 신뢰한다고 단정을 지을 수 없으므로 미국-베트남 사이에서 우리나라의 역할이 존재할 전망이다.

한국은 내년에 '한-아세안 디지털 혁신 플래그십 사업'을 출범하고, 아세안 지역에 대해 데이터 공동 축적·활용을 위한 초고성능 컴퓨터 구축, 인공지능 개발 관련 인적 역량 강화 등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다. 이는 바이든 미 대통령이 밝힌 미국의 대베트남 협력 방향과도 결을 같이하므로, 한국, 미국, 베트남이 함께하는 사업 구상도 가능하다. 그리고 3국 협력의 성과를 바탕으로 메콩 지역에서의 협력 사업 추진도 고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