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생명 존중문화

믿고 소통하는 사회 연결망, 노인 삶에 도움 커

2023-10-17 00:00:01 게재

말벗 연결, 전문적인 상담창구 '하소연' 들어야 … "노년 내 세대-남녀-도농 차이 따라 자살예방대응"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노인 자살률은 한국 노인의 불행한 삶을 반영한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2023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최근연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노인자살률 평균은 16.3명이다. 한국은 2020년 41.7명으로 1위다. 평균의 2.6배에 이른다. 한국 노인의 높은 자살률 배경으로는 경제적-육체적 질병-정신 건강문제 등 동기와 요인들을 주로 언급한다.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다루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노인의 자살예방과 사후대책 접근도 치료나 복지서비스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노인자살문제가 완화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은 노년에 대한 폭넓은 배려와 구체적인 정책접근이 방치돼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노인의 자살현상은 개인차원의 사안이 아닌 사회적 문제이며 노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사회적 연결망을 튼실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전문가들은 실효성있는 자살예방정책을 위해 노인층 내에 존재하는 60대-70대-80대 이상 세대, 남녀 노인, 도농 거주지역 노인 등 차이를 확인하고 구체적인 지역사회 자살예방활동이 이뤄져야하며 노인의 삶을 존중하고 생명을 귀히 여기는 사회문화 확산 등을 제시했다.

노인에게 제공되는 사회연대는 생을 유지하는데 튼실한 버팀목이 된다. 사진 이의종


우리나라 국민의 생애주기 중 노년시기가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인들이 주변인 혹은 지역사회에서 믿고 소통되는 연결망이 존재하고 작동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진 박지영 교수 제공

16일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의 자살 시도를 줄이기 위해 노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고통이 되는 문제에 대해 해소감을 경험할 수 있는 상담창구가 필요"하며 "노인이 필요로하는 상담은 '하소연'을 듣고 공감받는 것이다. 노인에게 필요하고 이용 가능한 지원 정보를 주고 심리적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 '혼자가 아니다'라는 연결감 안도감을 주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미나 경기노인종합상담센터장은 "노인의 심리·사회적 안정망으로서 문턱 낮은 '공공노인전문상담기관' 설립이 시급하다"며 "자살에 이르기 전 평소 외로움 상실감 불안 등 다양한 심리·사회적 어려움을 줄여야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며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웃 간 서로돌봄네트워크를 통해 노인이 사회와 소통·연결감을 이어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에 대한 1차 보호기능 상실 = 우리나라 노인의 높은 자살률의 배경으로 격변하는 현대사회 위기상황에서 가족이라는 '1차 보호기능'의 상실이 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노인은 현대화과정에서 격변, 즉 IMF국가부도사태, 골드만삭스 금융위기, 코로나19 대유행 등 사회와 가족을 책임지는 중장년기와 노년기를 보냈다. 노인들의 자살이 높은 배경에는 가족에 대한 기대와 책임감 사이의 괴리가 자리한다.

김미나 경기노인종합상담센터장. 사진 이의종

자살예방 측면에서 가족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노인이 가장 우선적으로 소속감과 유대감을 유지하고 싶은 대상이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은 노인에게 중요한 자살예방의 보호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사회적 위기상황에서 가족 관계성이 불안정해지고 그 결과 노인의 고립감은 더 높아졌다.

김 센터장은 "노인세대는 평생을 가족과 나라를 위해 자신을 다 내어 줬다. 노후를 준비할 겨를이 없었고 노후 보장은 오롯이 자신의 몫으로 남겨졌다"며 노인세대의 허무함을 설명했다.

경제적 여유, 건강은 나빠지고 일상을 도와주거나 마음을 나눌 사람도 마땅찮다. 대안도 없어 살자니 막막한 상황에 놓여 지게 된다. 자살을 시도하는 노인이 특별히 심리적으로 취약해서라고 볼 수만은 없는 사회문제라는 지적이다.


◆노인 친화적 자살예방 정책 필요 = 노년층 안의 세대 간-남녀-도농 차이에 맞춰 자살예방대응도 달라져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교수는 "노인 계층안에서도 60대 70대 80대 등 연령에 따라 세대문화가 다르다. 이들 특성에 적합한 맞춤형 예방정책이 시도돼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노인의 전형성이 강한 80대 이상 노인에 비해 베이비부머 60대 노인은 자아감이나 노후 삶에 대한 기대감이 분명하고 높다. 그 어떤 세대보다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을 성취한 세대이기에 자신의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노년 문제에 더 큰 위기감을 가질 수 있다. 거기에 자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해지면 죽음을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녀 차이도 있다. 2023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21년 노인 남자 자살률은 68.4명, 여자는 22.0명이었다. 남자노인이 여자노인의 3.1배 높다.

김 센터장은 "남자노인은 사회적 역할이 축소되고 경제 능력이 줄어들 때 무기력해지고 더욱 우울하고 불행감이 높아진다. 은퇴 후 가족 내 관계 형성의 어려울 때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 여성노인은 경제적 어려움, 노화로 인한 질병, 가족과 사회적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이 깊어질 때 우울해지며 불행하다고 여긴다"고 설명했다.

도시 남자노인은 사회적 역할이 없을 때의 고립감, 소득 감소나 중단으로 높은 생활·주거비 등이 부담된다. 농촌 노인은 통증과 기능장애를 유발하는 근골결계 등 질병과 도시로 나간 자녀와의 거리감 등 고독 문제가 상대적으로 크다. 기초적인 의식주 해결이 도시노인보다 좋더라도 병원 이용 등 사회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진다.

박 교수는 "고령화가 진행됐지만 사회시스템은 도농지역과 상관없이 노인들이 체감할 만큼 고르게 갖춰지는 못했다. 또 사회서비스의 이용자격기준과 노인의 상황 간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 예를 들어 장기요양 대상으로 해당되지 않지만 독립 생활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노인친화적이지 않는 사회정책·인프라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에게 친밀한 접근, 관심 가져야 = 노인의 자살 시도를 줄이기 위해 사회적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박 교수는 "노인들이 쉽게 접근하고 실제로 도움이 된다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필요하다. 지역마다 지역과 노인 특성에 맞는 섬세한 작업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단위는 융통성 있게 정책을 추진하고 지역단위에서는 지역에 맞는 구체적인 전략이 만들어져야 한다. 자살예방기본계획을 지역단위에서 실현하기 위한 충분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김 센터장은 "세상을 등지고 싶을 때 남아있을 가까운 이들을 생각해 보라. 이들에게 어떤 유산을 남기고 싶은가"라고 전했다. 가까운 이의 자살은 오랫동안 큰 상처가 되며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내내 불행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인의 자살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가족 혹은 주변인의 '관심'이 중요하다. 부모와 떨어져 있어도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김 센터장에 따르면 노인세대는 자신의 욕구를 참아온 세대로 특히 자식에게 해가 될까봐 남들이 업신여길까봐 자신의 어려움을 축소하거나 감출 수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노인의 '괜찮다'는 답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더 친절한 대화와 섬세한 살핌이 필요하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이에 깊은 마음을 오히려 나타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노인방문서비스나 말벗을 연결해주고 마음이 힘들 때에는 자연스럽게 지역 노인전문상담사와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사전에 정보를 제공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안부전화로 연결감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소통이 지속돼야 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말씀하세요'라고 하는 게 중요하다. 안도하는 노인들은 자살시도까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쁜 중에도 주변인이 노인들과 연결하도록 국가의 지속적인 홍보와 안내가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자살예방의 주체를 전국민으로 확대하고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홍보와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인센티브를 통한 이통장 등 주민참여의 자살예방을 유도하기보다 이들의 자발성을 독려하기 위한 대안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살예방 예산·인력 확보, 노년의 삶 존중문화 절실 = 노인 자살예방을 위해 예산·인력 확보도 중요하다. 박 교수는 "매년 자살예방센터는 동결이나 삭감이냐 증액이냐 가슴 졸인다. 자살예방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중요한 국가의 의무의 하나이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 근거에 기반한 자살예방 전략의 목표를 명확히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자살예방현장은 숙련된 전문인력을 유지할 수 있고 자살위험군의 발굴·지원을 촘촘하게 수행할 수 있다. 민관의 협력이 지속될 때 자살률도 지속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

국가차원의 자살예방센터 상담사 처우 개선도 제기된다. 임금뿐만 아니라 상담사들의 심리적 안정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외국의 경우 상담사 1명당 사례자가 8∼9명이라면 우리나라는 50명정도에 이른다. 실질적인 케어가 어려운 상황이다.

사회 전반에 깃든 노년에 대한 통념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센터장은 "사회 곳곳이 생산성을 우선 가치로 두는 시각이 팽배하며 노인들을 교통비 의료비 연금 등을 축내는 마치 사회에 피해를 주는 '잉여인간'으로 보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태어난 아이를 마땅히 보살핌의 대상으로 여기듯이 노인이 늙어감에 따른 쇠약함에 대한 보살핌도 마땅하게 여기는 '정상사회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김 센터장은 "노인들도 나이듦에 따라 늘어나는 몸의 불편함을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대신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재밌게 하기를 권하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낸 것만으로도 아주 장한 일이다. 의기소침하지 말고 이제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노년 시기를 사랑하라"고 덧붙였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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