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 박사

구의역 사고, 젊은층은 '자기 운명과 직결된 일'로 바라봐

2016-06-07 12:02:32 게재

추모하며 젊은 세대 개개인이 각성 과정 겪는 듯

포스트잇 추모, 세련된 추모 양식

집회는 메시지 몇개 없지만 수백 수천개의 메시지 전해

60대, 청년일자리 정책에 긍정 반응

지난달 서울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19살 인생을 마감한 젊은이를 향한 추모가 뜨겁다. 추모열기의 중심에 선 청년세대는 유명을 달리 한 19살 김씨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며 색색의 쪽지(포스트잇)에 마음을 적어 보내고 있다. 추모쪽지에 담긴 젊은 층의 메시지는 다양하지만 같은 비정규직·파견직 노동자로서 느낀 공감, 비극적인 사고에 이르기까지 방치한 사회에 대한 분노,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다짐 등이 담겨 있다.

사진 이의종

강남역 20대 여성 살인사건에서 처음 시작된 포스트잇 추모는 단순 추모인 줄 알았지만 구의역으로 이어지며 사회현상으로 자리매김되는 분위기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4일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를 만나 물어봤다. 이 책은 2007년에 출간된 책이지만 아직도 젊은 세대를 분석할 때마다 언급되는 책이다. 우 박사는 이 책에서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의 덫에 허덕이며 살게 될 지금 젊은이들의 모습을 예고했다.

젊은 세대가 마주치게 될 가혹한 세상에 대해 지적한 후 거의 10년이 지났다. 젊은 세대의 삶은 나아졌나.

일부러 그 때 책을 낸 건 아닌데 지표로 보면 우리 경제의 클라이맥스가 2007년이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성장률로 보면 2007년이 가장 높다. 2007년에 모든 지표가 좋았다. 그 전에 또다른 클라이맥스가 하나 있었는데 문화지출비의 클라이맥스가 2003년이었다. 2003년 이후로는 소득 대비 문화지출비가 줄어든다. 2002, 2003년 이 때는 사람들이 영화도 책도 많이 보면서 다양한 걸 시도했다는 이야기다. 그 힘으로 2007년까지 갔지만 한국 경제는 위기에 부딪혔다. 풍요로웠을 때 청년들에게 투자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경제가 안 좋아지기 시작한 후부터는 더욱 청년들에게 해 준 것이 없고, 악순환의 10년을 보냈다. 청년들에게 지금이 최악일까. (지금의 정책기조가 이어진다면) 그게 아닐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더 나빠진다는 이야긴가.

박근혜 정부의 정책 중 핵심이 노동개혁이다. 파견직을 많이 늘리자는 것이다. 1차적으로는 노인 대상이긴 하지만. 지금은 정규직으로 하는 일도 파견직으로 바꾸겠다는 거다. 지금은 특수한 분야에 한해 파견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지만 점점 더 많아진다고 생각하면 결국 청년들이 그런 쪽으로 내몰리게 된다. 구의역 사고의 추모열기는 그냥 추모만이 아니다. 청년들이 자기들의 운명과 직결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도 많이 해보고 생산자로 많이 살아봤기 때문에 정부에서 하는 일, 뉴스에서 나오는 말이 자기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해도가 높다. 젊은 세대가 느끼는 공포감이 실체가 있다는 이야기다.

구의역 사고 이후 젊은 세대의 추모열기가 거세다. 어떻게 보고 있나.

몇년 전에 한 대학생이 등록금 마련하려고 냉동고 보수작업을 하다가 냉매처리를 잘못해서 질식해 죽은 사건이 있었다. 구의역 사고와 속성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안전조치가 충분하지 않았고 파견직들이 소위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위험에 몰리고. 그런데 그때는 단신으로 처리됐고 그냥 안쓰럽다 했을 뿐이다. 그럼 이번에는 왜 다른 걸까. 바뀐 것은 사회의 수용성이다. 사회학에선 '당사자성'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부모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일로 보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메시지를 포스트잇에 써서 붙이는 형식의 추모를 한다.

밀도가 굉장히 높은 방식의 의사표현이다. 넓은 광장에 모여서 하는 집회도 밖으로 나오는 메시지가 몇 개 없다. 촛불추모와도 다르다. 촛불집회 역시 메시지는 10개도 안 될 것이다. 지하철 승강장이라는 좁은 공간내에서 이루어지는 포스트잇 추모는 수백 수천의 메시지를 발산하고 있다. 주어진 조건 내에서 최적화시킨 양식이 나온 거다. 전세계에서 처음 본 것 같다. 너무 세련되고 잘 만든 양식이어서 훈수를 둘 수도 없다. 추모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방해도 못하고 난감할 것이다. 공공장소인 지하철이니 장소를 폐쇄시킬 수도 없고, 인터넷 댓글도 아니니 댓글부대 만들 수도 없고. 과거의 집회는 막는 쪽도 하는 쪽도 군사작전이었지만 포스트잇 추모는 미학적이다. 포스트잇 하나하나 다 시다.

강남역에서 구의역으로 이어졌듯이 포스트잇의 띠가 생겼다고 할까. 이후에도 이런 양식은 이어질 것이다. 일본만화나 게임에서 각성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게임 캐릭터가 한 단계 넘어서서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전투능력을 발휘하거나 할 때 이 표현을 쓴다. 지금 젊은 층 개개인의 각성과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추모열기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자꾸 (추모분위기와 젊은 층이) 어떻게 될 것 같느냐고 사람들이 묻는데 여긴 시작점이 아니라 종착점이다. 지난한 10여년의 사회적 논쟁을 보낸 젊은이들이 여기까지 도달해 또는 쫓겨와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어디론가 가야 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그들에게 와야 할 때다.

사회가 응답해줘야 할 것 같은데.

응답을 해줘야 하는데 기성세대들은 이 사건이 뭔지 아직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다른 나라는 세대간 갈등을 여러 방식으로 풀어왔지 않나

옛날에는 정치권에서 장식용으로라도 청년을 끼워줬는데 이제 필요없다고 떼어버렸다. (기성세대가) 잔인하다.

다른 나라를 보라.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으로 국가별로 노동의 재구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국가는 인공지능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청년을 많이 만들어내는가 하면 어떤 국가는 인공지능이 시키는 일을 하게 될 청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지식의 깊이와 다양성, 지식의 절대총량이 중요해진다. 천명이 똑같은 지식만 알고 있다면 그 사회의 지식값은 1이다. 각자 다양한 것을 안다면 지식값은 1000이 된다. 외국에서 최저임금 높이고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을 논의하고 하는 것도 다 국가의 지식체계를 바꾸려는 것과 연관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비하려면 청년들이 각자 다양하게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먹고 살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최저임금을 높여서 더 창의적인 일을 하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청년에 대한 논의를 그렇게 시작해야 한다. 지금 교육을 하고, 다양성에 승부를 걸어서, 청년들 한명 한명에게 다양하면서도 숙련된 지식을 줘야 하는 거다.

지식이라는 게 뭔지 다뤄 본 나라들은 알아서 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뭐가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다.

유럽에서만 그런 건가.

일본이 지난해 일억총활약 시대를 내걸고 담당 장관을 만들었다. 일억명의 인구를 유지하고 모두 적극적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건데 일본도 새로운 시대를 맞을 고민을 하고 있는 거다. 최저임금도 연 3%씩 올려 1000엔(1만원)까지 인상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베 정권도 보수에 친기업성향이지만 기업들과 사회적 합의 이뤄서 최저임금 인상시키고 국가 지식체계를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청년 문제의 희망은 있나.

세대간 연대 가능성이 있다. 아주 없지는 않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20대와 60대는 정반대로 나오는 게 보통이다. 예를 들어 그 해 가수와 노래를 물어 보면 40대를 경계로 위는 트로트, 아래 쪽은 '양화대교'같은 노래가 나온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 갤럽에서 청년에 관한 여론조사를 했는데 공공부문에서 일자리 늘리는 게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겠느냐는 문항에 84% 찬성으로 나왔다. 당연히 20대 찬성률이 가장 높았지만 놀랍게도 60대 찬성률이 굉장히 높았다. 청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괜찮은 정책을 내놓고 그걸 가지고 충분히 토론을 한다면 20대와 60대가 같은 의견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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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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