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개미와 공작
이타주의와 성(性)선택, 그리고 진화
개미와 공작? 진화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조합이야?'하며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진화론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개미와 공작이야말로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래 150년 동안 진화론자들을 끙끙 앓게 했던 두가지 난제, '이타주의'와 '성 선택'을 대표하는 사례들이라는 것을 안다.
일개미는 같은 여왕개미의 자손이면서 혈연집단의 존속을 위해 자손을 낳지 않는 쪽으로 진화했다. 공작은 암컷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생존에 불리한 화려하고 거대한 깃털을 발달시켜왔다. 개미와 공작은, 번식에 유리한 개체들이 자연선택에 따라 개체를 발달시켜왔다는 다윈주의 이론으로는 설명이 쉽지 않았기에 진화론이 등장한 이후 현재까지 가장 뜨거운 논쟁의 주인공들이었다.
이번에 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개미와 공작'(The Ant and the Peacock)는 이타주의와 성 선택의 수수께끼를 둘러싼 진화론 역사의 가장 치열한 토론과정과 성과를 집대성한 역작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다윈주의, 그 경쟁자와 배교자들'에서는 다윈주의의 역사를 성 선택과 이타주의를 중심으로 세밀하게 소개한다. 2부 '공작'은 암컷의 배우자로 선택받기 위해 수컷이 섹시한(?) 깃털을 발달시켜온 성 선택의 원리가 해명된 과정을 다룬다. 3부 '개미'는 개미 뿐 아니라 벌 등 사회성 동물들의 이타성에 대한 진화 생물학자들의 논의 과정과 쟁점들을 정리한다.
흥미롭게도 헬레나 크로닌은 이 책이 출간되기 전까지는 생물학계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오죽하면 진화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이 책의 추천사 제목을 '헬레나 크로닌,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라고 붙였을 정도다. 헬레나 클로닌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인 이 책을 통해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반열에 이름을 올린다.
'개미와 공작'은 단순한 과학책이 아니다. 이 책은 개미의 이타성과 협동, 공작의 깃털과 짝짓기가 진화하는 과정을 각각 인간의 도덕성과 미적 감각의 발달에 대한 논의로 확장시킴으로써, 진화생물학과 과학철학을 하나로 엮어낸다.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장점이기도 하다. 저자가 서문에서 "…전문지식을 가진 독자들도 이 책에서 역사와 과학, 철학이 서로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들을 자신들의 지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발견하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