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법무사 서민법률서비스 막아서는 안된다

2018-12-27 08:57:15 게재
윤동호 국민대 교수 공법학 전공

법무사가 개인회생사건 관련서류의 작성·제출·보정·송달 등 업무 일체를 포괄적으로 수임하여 처리하는 것(代行)이 ‘사실상 대리’로서 변호사법 제109조 위반죄라고 본 항소심 판결이 최근 나왔다.이는 죄형법정주의가 금지하는 유추이다. 대행과 사실상 대리의 구별은 모호한데도, 법무사의 386건에 이르는 개인회생사건 처리행위를 개별적으로 특정하지 않고 모두를 포괄하여 사실상 대리로 단정한 것은 무죄추정원칙의 하위원칙인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 원칙에도 반하고,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 의심 없는 정도의 증명이 필요하다’는 형소법 제307조의 증거재판주의에도 반한다.

법무사의 ‘대행’ 업무를 ‘대리’로 판결

그 동안 회생법원은 법무사를 상대로 회생 및 파산사건 업무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것을 권유하면서 개인회생·파산 법무전문가과정을 운영하여 교육도 해왔다. 그런데 위 항소심 판결은 회생법원의 요구에 부응하여 업무를 처리한 법무사를 처벌했다.

위 판결은 법무사를 처벌함으로써 판사가 변호사의 입장에 서서 법무사와 변호사의 업무범위에 관한 갈등을 야기한 것은 아닌지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이라는 변호사의 사명을 저버리고 법률서비스 공급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여 고수익을 보장하는데 변호사의 사명을 두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 된다. 위 판결은 또 ‘법무사제도를 확립하여 국민의 법률생활의 편익을 도모한다’는 법무사법의 목적도 훼손하고, 위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앞으로 소송사건 비송사건에 관계없이 법률사건에 관한 법무사의 업무 처리가 상당히 위축돼 서민의 법률서비스 접근권이 과도하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위 판결은 비록 특별소송절차 하나인 개인회생사건에 관한 것이지만 그 의미가 여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무자격자가 아니라 법률전문가인 법무사이라도 시민 법률생활의 편익을 도모하고자 법률사건에 관한 서류 작성·제출·보정·송달을 원스톱으로 일괄처리해주면 ‘사실상 대리’에 해당해 형사처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생사건의 경우 서류 송달을 받기 어려운 ‘본인’을 위해서 법무사가 송달 영수업무까지 수행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법무사가 사건 당사자 본인을 위해서 주도적으로 업무 수행을 하지 않고 심부름꾼의 역할만 할 수는 없다. 법무사법 제26조 제1항은 법무사가 업무를 수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위임인에게 재산상 손해를 끼쳤을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사는 법률전문가로서 형사처벌의 위험을 무릅쓰고 본인에게 법률서비스를 주도적으로 제공할 것인지, 아니면 민사손해배상책임의 위험을 감수하고 비법률전문가인 위임인의 요구에 충실하기만 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중간 지점을 찾다 보면 소극적인 업무 처리가 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피해는 저렴한 법률서비스를 원하는 서민에게 그대로 돌아간다.

회생사건 현실을 무시한 판결

법무사법에 따른 법무사의 업무범위는 극히 제한되어있지만 대략 7000여명의 법무사가 우리 사회에서 하는 실제 역할과 활동을 보면, 서민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변호사’이다. 민사소액사건의 변호사 선임율은 약 20%에 불과하고 80%는 이른바 나홀로소송으로 진행되는데, 이들 사건의 대부분은 법무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 전국 무료법률상담실이 각급 법원에서 지방법무사회 별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공익법무사단도 운영되고 있다.

변호사법의 변호사에는 ‘사실상 변호사’도 해당한다고 보면 변호사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법무사를 변호사법위반죄로 처벌한 위 항소심 판결은 옳지 않다.. 판례처럼 변호사법의 대리에는 법률상 대리뿐만 아니라 사실상 대리도 포함된다고 보면, 법률상 대리와 사실상 대리를 같게 보는 것이고, 이런 논리라면 법률상 변호사와 사실상 변호사도 같게 봐야 한다.

서민의 법률서비스 접근권을 확실하게 보장하고, 법무사의 업무범위에 관한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비송사건과 소액사건의 대리를 허용하고 개인회생 및 파산사건의 신청 대리를 가능하게 하는 법무사법의 개정이 시급하다.

윤동호 국민대 교수 공법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