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된 근린공원 내집앞 정원으로

2020-06-30 11:24:17 게재

노원구, 110곳 대수선 '휴(休)가든'

마을정원사와 주민 협업, 관리까지

"반찬값 아껴서 옥잠화며 비비추 묘목을 샀어요. 3~4년간 계속했더니 동부간선도로변에 풍성한 꽃밭이 생겼어요."

서울 노원구 상계6·7동에 사는 오선자(73)씨는 "아침에 지하철역까지 아이를 배웅한 뒤 바로 꽃밭으로 향한다"며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유일한 낙이 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최근 또다른 낙이 생겼다. 아파트단지 내 느티울근린공원을 다시 꾸미는 작업에 합류하게 됐다. 오씨는 "요일별로 조를 짜 관리까지 맡기로 했다"며 "그야말로 상계동 주민들의 정원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노원구가 오래된 근린공원을 볼거리가 있는 주민들 정원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한 주민이 아이들과 함께 지난해 새롭게 꾸민 월계동 한내휴가든을 산책하고 있다. 사진 노원구 제공


서울 노원구가 낡은 근린공원을 주민들 집 앞 정원으로 바꿔가고 있다. 2023년까지 총 203억원을 들여 근린공원 27개와 어린이공원 83개까지 총 110개를 대수선하는 동네공원 재탄생 '휴(休)가든' 사업이다.

1980년대 말 노원지역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조성하면서 단지 내에 만든 생활권 공원이 근린공원이다. 평균 1만4000㎡에 달하는 녹지공간에 산책로와 간이 운동기구를 갖췄는데 눈에 띄는 볼거리가 없어 방치돼있었다. 어둠이 내리면 인적마저 끊긴다. '의무시설'처럼 들어선 어린이공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노원구는 2018년 삼육대학교와 연계해 운영하던 마을정원사 양성과정에서 새로운 방향을 착안했다. 이론과 실무를 갖춘 주민 35명을 투입하기로 한 것.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한 수료생들 역시 집 앞 근린공원이 방치되고 있는 점을 안타까워하며 뭉쳤다. 지난해 3월 20명이 단체를 결성, 재능기부를 하기로 했다. 구는 나무와 꽃 등 재료를 지원한다.

지난해 공원실태 전수조사를 진행, 수선이 시급한 정도와 공원 이용률을 따져 우선 사업 대상지를 정했다. 마을정원사들이 아침 점심 저녁 시시때때 달라지는 공원을 적게는 10~20회 많게는 50회까지 방문, 동네와 어우러지는 특징을 찾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주로 이용하는 연령층이나 성별, 눈길을 끌만한 지점 등을 파악한 뒤에는 어울리는 조형물과 꽃·나무를 정하고 서초구 양재동 등 발품을 판다.

지난해 5월 상계동 주공4단지 내 원터근린공원을 시작으로 5곳을 새로 꾸몄다. 농부들이 잠시 쉬어갔다는 '원터'에는 달구지를 놓았고 '삿갓봉'에는 옛 선비들에서 착안, 물레방아를 놓았다. 지난 22~25일 조성한 '느티울'에는 바로 옆에 들어설 물놀이장에 맞춰 호박마차와 함께 나무그네를 설치해 동화 속 분위기를 더했다. 한민순 노원마을정원사 대표는 "100여종에 가까운 꽃·나무는 식물원에서 볼 수 있는 야생종을 택해 아이들 자연학습용으로도 활용한다"며 "주민들이 선호하는 장식물을 더하면 자연스럽게 포토존이 형성되고 주민들 관심도 커진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정원 분야별 전문가가 융·복합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간다"며 "주민들이 역사를 써가는 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작은 놀이동산같은 정원이 눈에 들어오자 '우리동네도 바꿔달라'는 주민들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노원구는 올해는 아예 정원 조성부터 동참해 이후 관리를 맡을 주민들을 공모했다. 시간대가 맞는 정원사들을 1대 1로 짝지어 정원에 대한 조경과 정원 개념을 배우면서 작업을 하도록 했다.

올해 느티울 등 4곳에 이어 2023년까지 남은 22개 근린공원을 연차적으로 손보고 어린이공원도 총 89개 가운데 시설이 양호한 5곳과 재건축 대상지역 1곳을 제외한 83개를 대수선한다. 주민들 정원이 110개 늘어나는 셈이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깊이 패고 흙만 남은 근린공원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며 "공원 재생작업을 통해 공동체를 회복하고 주민들이 꽃을 보면서 마음에 휴식을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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