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권하는 한국사회

가족 떠나 시설 가는 아이 더 지원

2021-01-26 12:15:54 게재

한부모 양육보다 시설에 10배 이상 … 최저월급 받아도 지원 못받아

#1. 은비(가명)는 2012년 9월 태어났다. 은비 친엄마는 17살의 청소년 미혼모였다. 주변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생계와 양육을 책임지던 은비 엄마는 결국 세살(생후 21개월) 은비를 입양보내기로 결정했다. 은비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은비는 대구의 한 가정으로 입양 전 위탁됐다. 하지만 5개월 만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온 몸에 멍과 상처를 본 의사가 경찰에 신고 했으나 제대로 된 조사와 보호는 이뤄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려보내진 은비는 두번째 응급실행을 했고 의식불명에 빠졌다가 결국 사망했다.

#2. "정인이의 친생모가 자신이 양육할 수 있을 때까지 지원받을 수 있고 그동안 정인이를 맡아서 키워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정인이는 가정위탁 등의 일시보호를 받다가 다시 친생모의 품으로 돌아가서 사랑받는 아이로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른들이 부족해 정인이에게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가슴을 친다." (1월 18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및 14개 단체 기자회견 중)


미혼모 등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한부모가정도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국내 정책은 원가족 보호보다는 보육원, 입양기관 등 시설중심이라 저소득 한부모가정의 경우 입양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입양에 앞서 원가정 양육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는 헤이그 국제아동협약의 최소한의 원칙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25일 관련 단체들에 따르면 누구보다 도움이 절실한 저소득 한부모가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기초생활수급 또는 한부모가족 지원 대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원가정 보호 원칙 촉구 기자회견│아동인권단체와 미혼모·한부모단체, 입양인단체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1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입양 전 친생부모 상담과 아동보호를 입양기관에 맡기는 것을 반대하고 원가정 보호 원칙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안정된 직장 포기해야 = 먼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생계급여를 받으려면 소득이 중위소득(2020년 기준 299만1980원)의 30% 이하여야 한다. 2인가구 기준으로는 월 89만7594원 이하다.

또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한부모가족 양육비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월 소득이 중위소득 52% 이하여야 한다. 2인 가구의 경우 중위소득 52%는 155만5830원이다. 이 기준을 통과한 한부모가족의 만 18세 미만 자녀에 1인당 20만원이 지원된다.

다만 청소년한부모(만 24세 미만)의 경우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 60%(179만5188원)까지가 대상이다. 이들에게는 아이 1명당 양육비 월 35만원과 자립촉진수당 월 10만원이 지급된다.

지원 대상이 모두 모자가족 혹은 부자가족에 해당된다는 점도 문제다. 청소년 부모가 부부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경우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결국 정규직 직장을 구할 수 없는 구조다. 1주 소정근로 40시간 근무 시(유급주휴 포함, 월 209시간 기준) 최저월급이 182만2480원이다. 비정규직이더라도 월급 179만5310원을 넘지 않으려면 아르바이트 수준의 직장만을 전전해야 한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은비 엄마처럼 입양을 선택하는 사례가 많은 이유다.

반면 아이를 보육원 등 요보호아동시설에 보내면 시설에는 인건비, 시설관리운영비, 생활아동 지원비, 식비 등을 포함한 아동 1인당 생계급여비 등의 명목으로 정부와 자치단체로부터 많게는 320만원 가량이 지원된다. 사실상 우리 사회가 입양을 권장하는 사회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회장은 "시설중심 정책으로 부모가 아이를 포기하면 더 지원을 해주는 구조가 됐다"며 "아이들이 가장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은 부모,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거지원 등 아동이 원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보다 촘촘한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소년부모, 양육 관련 정보 부족 = 이런 가운데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국제아동인권센터,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탁틴내일 등 단체들이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입양 전 친부모 상담과 아동보호를 입양기관이 아닌 국가가 해야한다"며 "입양기관은 더 많은 입양을 보내는 게 목적이므로, 친생부모가 키우게 하는 것보단 입양을 권유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현행법(입양특례법 제13조)은 친생부모가 입양을 신청하러 왔을 때, 충분한 상담을 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상담 주체가 입양기관이라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또한 단체들은 입양이 완료될 때까지 아동보호를 입양기관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도 주장했다. 현행 입양특례법은 입양기관이 아동을 인도받은 날부터 입양이 완료될 때까지 후견인이 되며 친권자의 친권행사는 정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체들은 "친생부모는 아동을 만나면서 아이를 양육하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 받아야 한다"며 "또 친생부모가 아동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여건이 마련되기까지 받을 수 있는 지원과 아동의 일시보호체계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동의 일시보호 후에 다시 친생부모가 아동을 양육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숙고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하지만 입양기관이 아동을 보호하고 전권을 행사하면서 친생부모가 아동을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원가정보호의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단체들은 입양기관이 양육 지원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제공해줄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은 "입양하기 전 친생부모 상담에선 직접 아이를 키울 경우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상세히 알려줘야 한다"며 "청소년기에 부모가 된 이들 중 입양을 결정하는 비율이 높은데 이들은 양육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고 밝혔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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