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리시티권' 포함된 개정 부정경쟁방지법 8일 시행

유명인 이름·사진 함부로 쓰다간 돈 물어낸다

2022-06-07 11:17:41 게재

연예인 권리보호, 명시적 법적근거 마련

경제적 피해 해당하면 손해배상 청구 가능

유명 연예인의 이름이나 사진 등을 동의 없이 사용해 수익을 거둘 경우 돈을 물어낼 수도 있게 됐다. 그동안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유명인의 이름이나 초상에 대한 보호 법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종전 부정경쟁방지법에 '퍼블리시티권(the right of publicity)'을 내용으로 한 조항이 신설됨에 따라 8일부터 시행된다. 이번에 신설된 조항은 '국내에 널리 인식되고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성명, 초상, 음성, 서명 등 그 타인을 식별할 수 있는 표지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다. 쉽게 이야기해 유명 연예인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이름이나 사진 등을 가지고 수익활동을 했다면 그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 다만 형사처벌 조항은 제외됐다.

도심 번화가에 자리잡고 있는 연예인 기념품 '굿즈' 판매대. 업계에서는 이렇게 판매되는 사진첩이나 브로마이드, 포토카드, 스티커, 열쇠고리 등 굿즈 대부분이 당사자 동의 없이 제작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진 오승완 기자

◆10여년 전부터 논의돼 = K-팝과 K-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유명인의 퍼블리시티권을 규정해야 할 필요성이 10여년 전부터 논의됐다.

국내외에서 아이돌그룹 가수들의 얼굴 사진이나 이름, 명성을 이용해 무단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끊이지 않았다. 'A와 같은 꿀벅지' 'B 귀걸이' 'C 선글라스' 'D와 같은 코' 등 패션업계와 성형외과의원이 대표적이었다. 피해를 호소하는 연예인들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판결의 오락가락 하면서 쉽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결국 '유명인이라면 공인으로서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와 '연예인 육성에 많은 자본이 들어가는 만큼 보호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대립해 왔다.

그러던 중 잡지 발간이라는 외형으로 방탄소년단(BTS)의 화보집을 제작·판매한 업자에 대해 대법원이 책임을 물으면서 퍼블리시티권 도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유명인 연상된다면 침해 = 이번에 개정된 부정경쟁방지법은 퍼블리시티권 보호를 위한 국내 최초 명문 규정이다.

퍼블리시티권이 국내법에 처음으로 도입된 것은 한류 영향이 급속도로 확대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이른바 K-팝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 가수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후 오징어게임 등 K-드라마 역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유명 아이돌 가수나 배우의 초상과 서명을 사용한 기획상품이나 광고가 매일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반면 이들의 초상이나 이름 등을 무단으로 사용한 불법 제품과 서비스도 많이 나타나는 상황이다. 국내 중소업자들이 사진첩이나 포토카드, 굿즈 시장을 장악한 데 이어 아예 해외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국내로 역수입 되는 상황이다. 개정 부정경쟁방지법이 시행됨에 따라 앞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수익활동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다.

소관부처인 특허청은 퍼블리시티권 무단 사용으로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행정조사에 따라 시정권고 및 부정경쟁행위에 대한 공표 등 행정적 구제조치를 할 수 있다. 무단 사용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경우 침해금지 청구는 물론 손해배상 청구까지 법적 조치도 가능해졌다.

문삼섭 특허청 산업재산보호협력국장은 "그동안 국내에서 이러한 불법 행위를 적절하게 규율할 수 있는 규정이 미흡했다"면서 "이번 부정경쟁방지법 시행을 통해 유명인의 퍼블리시티권 경제적 침해를 막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류산업 무임승차' 법적 제지 = 그동안 연예계에서는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해왔다. 대표적인 게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연예계 표준전속계약서다.

공정위는 연기자와 가수 등의 표준전속계약서를 공시했고, 대부분의 연예기획사와 연예인 사이에서는 이 계약서를 토대로 상호 계약을 맺고 있다. 표준전속계약서에는 일부 법원 판례를 토대로 연예기획사가 계약을 맺은 연예인의 저작권과 초상권 퍼블리시티권을 보호하도록 되어 있다. 연예계에서는 '공정위 계약서에는 기획사가 퍼블리시티권을 보호하도록 되어 있는데, 왜 법에는 퍼블리시티권 보호 조항이 없느냐'고 볼멘소리가 수시로 나왔다.

송철민 연예제작자협회 본부장은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을 시작점으로 인식하고 기획사 관점에서 대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조악한 기념품 제작으로 유명인 이미지가 훼손되고 사익을 추구하는 악순환에 제동이 걸릴 것"이리고 기대했다.

최유나 변호사(법률사무소 가까이)는 "연예인에게 비용과 시간을 투자한 엔터테인먼트사 노력에 무임승차 하는 사례가 생기더라도 이를 제지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연예인들의 인격권과 인격권에서 파생된 재산적 가치가 침해된 경우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부정경쟁방지법상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이유로 법적 제지를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원 판결 통해 추가 보완돼야" = 유명인의 퍼블리시티권 보호를 위한 법안이 시행되면서 유명성의 모호함도 논란이 일고 있다.

10대 등 젊은 층이 좋아하는 아이돌그룹에 대해서는 중장년층은 알지 못할 수 있다. 반대로 과거에 유명한 가수나 배우에 대해서 청년층이 알지 못한다. 이른바 유명의 '세대간 차이'다.

시기에 대한 문제도 있다. 한번 유명해진 이의 유명세가 언제까지 지속되느냐다. 반짝 인기가 있고 지속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상속과 양도에 대한 논쟁도 이어질 수 있다. 퍼블리시티권에 대해서는 상속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우세하지만 국내외에서는 사후에 더 유명해진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민인기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이번 개정 규정만으로 퍼블리시티권의 보호기간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해당 퍼블리시티권이 양도 혹은 담보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 혹은 해당 권리가 어떠한 경우에 제한될 수 있는지 등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법 시행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이 법원의 판결 및 관련 법규의 추가적인 보완 등을 통해 정리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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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완 안성열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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