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리시티권, 하급심 판단 '들쑥날쑥'

2022-06-07 11:17:41 게재

존속기간 50년 판시하기도

국내 하급심 판결에서는 퍼블리시티권 침해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례와 부정한 판례가 혼재했다.

신지혜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논문인 '표현의 자유와 퍼블리시티권의 보호범위'에 따르면, '이휘소 사건'에서 퍼블리시티권이라는 용어가 국내에서 최초로 사용됐다.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의 유족은 김진명 작가가 이휘소의 성명과 사진 등을 이용해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발행하자 저작권 침해, 명예훼손, 퍼블리시티권 침해 등을 이유로 출판금지 등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기 아이돌 그룹 'H.O.T. 사건'에서는 피고 출판사가 사전 승낙 없이 H.O.T.를 모델로 한 사진집을 제작·배포한 행위를 불법행위로 판단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메이저리그 야구선수인 '박찬호 사건'에서 저자가 박찬호 선수에 대한 서적을 저술하면서 표지에 박찬호 사진을 게재한 부분에 대해서는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부정하면서도, 특별부록 브로마이드 형태로 첨부된 대형사진에 대해서는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2020년 3월 '방탄소년단(BTS) 사건'에서 소속사의 동의없이 '짝퉁' 화보집을 만든 연예잡지 제작업체의 행위가 방탄소년단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하급심은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해 퍼블리시티권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 자신의 승낙 없이 성명이나 초상 등이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경우 정당한 사용계약을 체결했다면 얻을 수 있었던 경제적 이익의 박탈이라고 하는 재산상 손해를 입게 된다는 점에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하거나 "퍼블리시티권이라는 개념을 인정할 필요성은 있지만, 필요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물권과 유사한 독점·배타적 재산권인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는 등 퍼블리시티권 인정 여부에 관해서도 결론이 달랐다. 만약 퍼블리시티권이 인정될 경우에는 법원은 "퍼블리시티권자의 승낙을 받아서 그의 성명·초상을 사용할 경우에 지급해야 할 대가 상당액"이 재산상 손해액의 산정기준이라고 판단했다. 서울동부지법은 2006년 12월 퍼블리시티권의 상속성을 인정하면서 퍼블리시티권과 가장 유사한 저작권을 참작해 사후 50년간 퍼블리시티권이 존속한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초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한 나라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인 미국이다. 1953년 제2연방항소법원의 제롬 프랭크 판사는 퍼블리시티권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현재 미국은 캘리포니아 등 19개 주에서 주법으로 그 외 주는 관습법으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통한 폭넓은 구제를 인정한다.

일본은 2012년 2월 인기 아이돌 그룹 '핑크레이디 사건'에서 퍼블리시티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했고, 한류스타 '배용준 사건'에서 연예잡지에 배용준의 사진 등을 다수 게재한 경우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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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열 기자/변호사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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