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해프닝’ 부른 저성장…정책변화 고민 깊어지는 경제팀

2024-11-26 13:00:04 게재

후반기 국정기조 ‘양극화 타개’ 내세웠지만

부자감세 정책 철회 없이는 국민설득 어려워

여권·경제부처 일각에서도 재정역할론 대두

윤석열정부의 긴축재정 기조에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내년 성장률이 기대치를 밑돌 것으로 예상되면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론도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대통령실 일각에선 내년 추가경정(추경) 예산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하루 만에 추경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며 경제부처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내년 초 양극화 타개를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한다. 양극화 타개는 윤석열정부 집권 후반기의 국정기조로 사실상 확정됐다.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양극화를 극복하고 중산층을 키운다는 것이 정부가 내세운 정책 방향이다. 하지만 정부가 기존 부자감세 정책을 유지하면서 ‘양극화 타개’를 강조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양극화 해소’의 궁극적 의미가 고액자산층과 취약계층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추경 언급 왜 나왔나 = 지난 22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추경 편성을 포함해 재정을 확대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발언이 나온 배경도 양극화 타개다. 추경은 양극화 타개를 위해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까지 고려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일반론적인 언급’이었다는 게 대통령실과 기재부 설명이다.

문제는 시기였다. 국회는 현재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 중이다. 법정 처리 기한은 12월2일이다. 내년도 예산안 심의가 한창인 가운데 추경 가능성이 언급되자 ‘의도’에 관심이 쏠렸다. 내년 초에 추경을 편성하자는 건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이 부실했다는 걸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실이 “추경에 대해선 논의한 바도, 검토한 바도, 결정한 바도 없다”고 밝히면서 추경설은 일단락됐다. 기재부도 대통령실보다 앞서 “내년 추경 예산 편성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신속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추경 해프닝 과정에서 ‘정부가 건전재정 획일기조에 벗어나 재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쪽으로 정책변화를 추진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날 확대간부회의에서 “국민 입장에서 볼 때 체감경기가 지표와 괴리될 수 있는 만큼 숫자나 통계에 매몰돼 민생현장을 이해하는 데 소홀한 건 아닌지 다시 점검해 달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발 추경 편성론이 불거질 정도로 경제정책 변화 필요성에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건전재정 도그마’ 걷어낼까 = 윤석열정부는 출범 이후 최근까지도 ‘건전재정’ 일변도였다. 하지만 경제상황의 대내외 불확실성이 동시에 커지면서 정책기조 변화를 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올 3분기 성장률은 한국은행의 전망치(0.5%)에 크게 못 미치는 0.1%다. 더딘 내수 회복세에 순수출 기여도까지 떨어졌다. 각 기관들은 잇따라 성장률 전망치를 내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내년이다. 내년에는 국내 경제를 지탱하던 수출의 증가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 출범이라는 불확실성까지 생겼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각각 0.2%p, 0.1%p 하향 조정한 2.0%로 제시했다.

결국 윤석열정부가 임기 후반기를 맞아 양극화 해소와 민생 활력 제고를 강조한 만큼 향후 재정 기조는 일정 부분 적극 재정으로 선회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감세정책 철회해야 설득력” = 최상목 부총리가 전날 소집한 간부회의에서 ‘민생현장 행보’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간부회의에 참석했던 기재부 관계자는 “설사 경제지표가 양호하더라도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한다면, 경제팀은 정책을 바꿔서라도 민생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는 취지로 들었다”고 전했다.

최 부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국민이 기재부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현장과 정책이 괴리돼서는 안 되므로 민생현장이 정책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곧바로 26일 서울 용산구 ‘다시서기지원센터’를 찾아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기조를 재점검했다.

하지만 정부의 ‘양극화 해소’ 카드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기존 감세정책을 철회하고 정책기조 전반에 칼을 대는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 출신의 조인철 의원(광주 서갑·더불어민주당)은 “양극화 해소정책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부자와 대기업에 편중된 감세정책부터 바꿔야 한다”면서 “부자감세 정책을 유지하면서 민생현장 방문 같은 이벤트만 한다면 어떤 국민이 정부 정책기조 변화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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