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
“미국 제조업 재건엔 한국이 최적의 파트너”
미중 패권경쟁속 한국 지정학적 역할 중요 … 트럼프의 한미 조선산업 협력 언급도 연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함에 따라 글로벌 통상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트럼트는 무역적자 해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어 우리나라에도 강한 통상 압력을 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은 미국의 8대 무역 적자국이다.
내일신문은 12일 여한구(사진) 전 통상교섭본부장과 전화통화를 통해 향후 전망과 대안을 모색해봤다.
여 전 본부장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과 철강 232조 협상에 참여했으며, 현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으로 미국 워싱턴DC에서 활동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60%까지 높이고, 다른 나라 상품에도 10~20%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약했다. 현실화 가능성은
관세 정책은 트럼프 2기 통상정책의 상징이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한다면 한다’를 보여줄 수 있는 정책일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 무역적자가 큰 국가들을 대상으로 (보편관세라는) 그물망을 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보편적 관세대상의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어떤 논리로 협상에 임해야할까.
한국은 안보동맹국이고, ‘트럼프의 딜’인 한미FTA협정국이며, 무역흑자는 최근 급격한 대미 투자 증가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수출증가로 인한 것임을 설명해야 한다.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지정학적 역할도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워싱턴에서 트럼프 전직 관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서로 다른 세계관과 논리를 가지고 있지만, 지정학적 관점은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또 중국에 과다 의존했던 한국의 무역 투자 공급망이 지난 2~3년간 급속히 디리스킹(de-risking)하는 과정에서 대미 투자·수출이 증가한 것인데, 일반관세로 충격을 주면 어렵게 형성된 모멘텀이 상실될 수 있다. 이는 미국의 국익에도 반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미 제조업 재건은 혼자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기에, 예외 인정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한미 정상간 첫 통화에서 트럼프 당선자는 한국과 조선분야 협력을 언급했다. 배경은 무엇이고, 우리의 협상전략은
트럼프 신정부가 자국이 당면한 제조업 역량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참조할 부문이 있다.
워싱턴에서는 지난해 겨울부터 유난히 미국의 해군력이 중국에 뒤진다는 점이 언론·싱크탱크 등에서 많이 부각돼 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의 1개 조선소에서 1년에 건조할 수 있는 선박의 수가, 미국의 모든 조선소에서 2014년 이후 건조해 온 모든 선박 수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올 초 미 해군성 장관이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따라서 한국은 이런 기회를 빨리 잡아야 한다. 기시다 일본 총리가 4월 방미 중 일본이 AUKUS(미국 영국 호주 3개국이 결성한 안보 파트너십)의 기술협력 분야에 참가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참고할 만하다.
미국 조선분야엔 100여년전 만들어진 ‘존스액트법’이 있다. 미국 항구를 운항하는 선박은 미국내에서 미국부품을 사용해 미국기업이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폐지는 못 하더라도 ‘바이 아메리카’ 조항을 완화해야 한국기업이 미국에 투자하더라도 채산성을 맞출 수 있다.
●트럼프 2기는 바이든정부에서 추진한 최대 7500달러 규모의 전기차 보조금 혜택 폐지를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차 관련산업의 급격한 위축이 우려되는데
7500달러 소비자 세액공제 폐지는 어느정도 예견됐던 사안이지만 이것이 트럼프 2기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나 전기차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미 의원들과 산업계에서 IRA 폐지에 반대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지 않나.
사실 미국내에서도 소비자 세액공제 제도 효용 논란이 제기돼 왔다. 스탠포드에서 나온 연구결과 중 하나는 전기차를 구매한 고객 중 3분의 2는 7500달러 없이도 구매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기차에 관심없는 사람을 사도록 해야 세제 혜택 의미가 있는 것인데, 어짜피 살 부자들에게 지원하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다.
이 논의는 2025년 세제 감면 연장건과 연결돼 있다. 트럼프 공약이자 공화당 의원들의 최우선 정책과제인 세제 혜택 연장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세제혜택을 없애고 새로운 세원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 “취임 첫날부터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석유를 시추하자)을 시행해 에너지 가격을 절반으로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에너지산업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데 우리나라의 대응전략은
트럼프가 주말에 기후변화 회의론자이자 셰일가스 회사 경영자인 크리스 라이트를 에너지 장관으로 임명한 데서 이러한 공약이 추진될 것임을 짐작케 한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석유,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LNG운송 선박 △천연가스를 포함한 에너지 개발탐사 프로젝트 등 전 에너지 서플라이체인에서 협력 기회가 있을 것이다. 미국의 원전 분야 원천기술과 우리나라의 제조 능력을 결합해 제3국의 원전시장으로 진출하면서 미국의 제조업, 수출 확대 및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것도 유망하다. 웨스팅하우스는 이번 미 대선에서 격전지로 꼽혔던 펜실베니아를 기반으로 하는 회사다.
또 한가지 대비해야 할 것은 라이트하이저도 찬성한 바 있는 미국판 탄소국경제도의 도입 가능성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산업은 탄소배출이 적은 ‘깨끗한’ 산업들인데, 중국 등 해외 수입품들은 탄소 규제도 약하고 탄소배출이 높은 ‘더러운’ 산업이라는 인식이 짙다. 따라서 공정경쟁을 위해서는 미국보다 탄소배출이 높은 수입품들에 대해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니고 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