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토닌 놀라운 치유력
나이 들면 잠 못 자는 이유…근심 아닌 멜라토닌 때문
중년 이후 수면 호르몬 크게 감소 … 수면 촉진은 물론 비타민C보다 강한 항산화 물질로 평가 받아
멜라토닌 분비가 감소하면 잠이 줄고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수면장애가 나타난다. 면역력도 떨어진다. 노년층일수록 바이러스나 세균과 맞서 싸울 힘이 부족해져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쉽다. 또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능력이 떨어져 노화 속도가 빨라진다. 멜라토닌은 우리 몸에 생긴 활성산소를 해독하며 암세포에 대항하는 항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멜라토닌의 치유 기능은 과학적, 의학적 연구결과를 통해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다. 구글 학술검색에 멜라토닌을 검색하면 멜라토닌과 암 치료 관련 논문이 20만9000건이나 검색된다. 치매 관련 연구 자료는 6만4900건, 심장 관련 학술연구는 15만8000건에 달한다. 그 밖에 피부, 폐, 간, 신장 등에 작용하는 멜라토닌의 효과까지 합치면 논문 건수는 수없이 많다.
멜라토닌은 해외 기능성 식품 시장에서도 급성장하며 수요가 늘고 있다. 글로벌시장조사기관 ‘베리파이드 마켓 리서치’는 전 세계 멜라토닌 시장이 연평균 14.3%씩 성장해 2030년 4조7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도 수면과 멜라토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잠은 보약과도 같다. 우리 몸은 깊은 잠을 자는 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컨디션을 회복한다. 수많은 병균과 싸울 수 있는 것도 숙면의 힘이다. 잠이 부족하면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위험이 커지고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이어진다.
정석훈 서울아산병원 교수팀은 19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통계를 분석한 결과 인구 10만 명당 불면증 진료 환자는 80세 이상에서 가장 많았고, 70대 60대 50대 순으로 이어져 고령일수록 불면증 진료를 많이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노화가 시작되면 호르몬과 생체 리듬의 변화로 잠자는 시간이 줄어들고 자다 깨기를 반복하는 등 수면의 질도 떨어진다.
◆멜라토닌 줄어들면 중·노년 불면증 위험 = 나이 들수록 잠의 밀도가 낮아지는 것은 수면호르몬인 멜라토닌의 양과 많은 관계가 있다. 멜라토닌(Melatonin)은 뇌의 송과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빛이 사라지면 그 정보가 뇌의 송과선에 전달되고 멜라토닌을 생산한다. 멜라토닌은 해가 지는 저녁 7~8시에 올라가기 시작해 새벽 2~4시경 가장 높은 농도를 유지하며 숙면을 돕는다. 멜라토닌의 양은 낮에 시간당 500ng(나노그램)에 불과하지만 밤이 되면 5~6배로 분비량이 증가한다.
나이가 들수록 멜라토닌의 양은 줄어든다. 15세 전후에 최고조로 분비되며 20세 이후부터 줄기 시작해 중년이후 대폭 감소한다. 청년기에는 멜라토닌의 밤 시간 분비량이 최대 3000ng에 이르지만 나이 들수록 최대 분비량이 줄어든다. 멜라토닌이 줄어드니 잠이 줄어들고 잠을 못 자니 멜라토닌 생성이 안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최강의 항산화제 멜라토닌, 비타민C보다 탁월 = 수면 호르몬 멜라토닌은 세포의 산화를 막는 역할도 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멜라토닌을 공식적으로 항노화 물질로 인정하고 있다.
송과선에서 분비된 멜라토닌은 혈액을 통해 몸 전체로 퍼져 500개 이상의 유전자를 제어해 심장 혈관 간 피부 등 대부분의 기관을 회복·재생시킨다. 특히 그중에서도 노화의 주범인 활성산소 제거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활성산소는 다른 물질을 공격해 세포막 구조를 파괴하고 세포 내 DNA를 산화시켜 돌연변이 세포를 만드는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멜라토닌은 이러한 활성산소를 제거한 후에도 항산화력을 잃지 않고 그 대사산물 또한 강력한 항산화력을 만들어내 항산화제 중에서도 최강의 항산화제라고 불린다. 대부분의 항산화 물질은 1분자의 활성산소를 없애는 반면 멜라토닌 1분자는 대사과정을 거치면서 최대 10개의 산화물을 제거하는 강력한 항산화 효과를 낸다. 멜라토닌의 항산화력은 글루타치온, 비타민E, 비타민C보다 우수하며 비타민C, E 보다 60~70배 더 효과적으로 DNA 손상을 막아내는 것으로 밝혀졌다(Org. Biomol. Chem., 2014).
◆불면증 방치하면 뇌에 치매 단백질 쌓여 = 수면장애는 각종 질환의 위험을 높일 수 있어 미리 관리해야 한다. 수면장애가 지속되면 뇌의 크기가 해마다 줄어들어 노인성 치매 위험도 높인다. 신승건 부산시연제구보건소장은 “확실한 치매 예방법은 충분한 수면”이라고 강조한다. 뇌는 활동하는 동안 활성산소와 노폐물들을 뇌에 쌓아두고 잠이 들면 송과선에서 분비된 멜라토닌이 뇌척수액으로 유입되어 뇌혈관을 따라 돌아다니며 노폐물을 청소한다. 이것이 잠을 자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는 이유이다. 그런데 노화, 야간근무, 불면증 등으로 수면 중 멜라토닌이 잘 분비되지 못하면 뇌에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 찌꺼기가 쌓여 신경전달물질의 이동을 막고 그 독성으로 인해 신경세포가 파괴되면서 치매가 발병하게 된다. 멜라토닌 섭취가 베타아밀로이드 생성 억제 및 분해, 배출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파폴라 미국 사우스 앨라배마 의과대학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베타아밀로이드에 멜라토닌을 투여한 결과 멜라토닌이 베타아밀로이드의 결합을 방해해 그물 같은 응집 구조의 형성을 해체 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멜라토닌은 잠을 부르는 호르몬인 동시에 잠자는 동안 뇌를 청소하는 기능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수면이 부족하게 되거나 신체가 노화되어 멜라토닌이 부족하게 되면 체내 항암 시스템이 저하되고 암세포 생산이 늘어나 암 위험이 높아진다. 멜라토닌이 충분히 생성되기 어려운 교대근무 직업군인 간호사, 스튜디어스 등이 유방암 발병률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멜라토닌의 항암 효과는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는데 특히 종양억제, 전이 억제 등의 직접적인 기전은 물론 항암제와의 시너지 및 독성제거 등 다양한 기전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방암 세포를 이식한 쥐를 대상으로 멜라토닌 섭취군과 비섭취군을 연구한 결과 멜라토닌 섭취군에서 대조군 대비 폐조직으로 전이된 종양이 50%나 줄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Mol Cancer Res, 2016).
◆수명 연장물질 시르투인 활성화 = 멜라토닌과 텔로미어와의 관계를 통해서도 멜라토닌의 효과를 엿볼 수 있다.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잭 소스택 하버드 의대 교수 등이 연구한 텔로미어는 노화와 수명을 결정짓는 유전물질로 알려져 있다.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시켜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물질이 시르투인이라는 성분인데 멜라토닌이 이 시르투인을 활성화시키는 주요 인자임이 확인되고 있다. 외부에서 추가로 멜라토닌을 지속적으로 투여하면 실험용 쥐의 수명 연장 효과는 최대 5개월에 이르기도 했다. 이는 실험용 쥐 평균수명의 20%에 이르는 시간으로 사람이라면 수명이 약 20년은 길어진다. 또한 나이 든 쥐에게 젊은 쥐에게서 추출한 멜라토닌 분비기관인 송과선을 이식하자 쥐의 수명이 늘어났지만 반대로 어린 쥐에게 나이 든 쥐의 송과선을 이식하자 오히려 수명이 줄었다는 연구도 있었다.
◆식물성 멜라토닌으로 수면의 질 개선 = 멜라토닌 분비 저하가 수면장애와 연관 있다면 외부에서 멜라토닌을 공급하면 수면장애가 개선될까? 실제 수면 유도 실험에서 멜라토닌이 수면 촉진 효과가 있고 복용 시간을 맞춰 조절하면 수면 행태를 전반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음이 보고됐다. 다만 멜라토닌이 모든 이에게 잠을 부르는 기적의 물질은 아니다. 멜라토닌 분비량 저하가 아닌 다른 이유로 생긴 수면장애에는 멜라토닌이 별 효과가 없다는 보고도 있고 사람에 따라 필요한 양도 달라 복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멜라토닌이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처방전이 있어야만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식물에서 추출한 식물성 멜라토닌이 개발돼 건강식품으로 허가가 나면서 국내에서도 온라인 등을 통해 일반 식품 형태의 식물성 멜라토닌 영양제를 접할 수 있게 됐다.
시중에서 주목 받고 있는 식물성 멜라토닌의 경우 쌀겨, 클로렐라, 자주개나리 등 천연 원료를 기반으로 한 것이 강점이다. 합성 멜라토닌 대비 내성 및 잔류 화합물 우려가 적고 부작용이 덜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멜라토닌의 역할은 수면주기를 규칙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최소 1~4주간, 잠들기 2시간 전에 규칙적으로 복용하길 권한다. 특히 하루 8시간의 적정 수면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 수면주기가 일정치 않은 교대근무자 등은 멜라토닌이 부족해질 수 있으므로 적절히 보충해야 한다. 멜라토닌의 1일 적정 섭취량은 2~5mg으로 1정당 함량을 확인한 뒤 복용해야 한다. 고령층이 섭취한다면 이산화규소, 스테아린마그네슘을 비롯해 합성향료와 감미료가 안 들어간 제품인지도 살펴보는 것이 좋다.
다만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 중에는 체내 멜라토닌 생성에 관여하는 가바, 타트체리, 트립토판 같은 성분을 소량만 넣고 멜라토닌이 들어있는 것처럼 광고하는 제품도 있다. 따라서 제품을 구매할 때는 원재료와 함량을 확인해 진짜 식물성 멜라토닌이 함유됐는지 살펴봐야 한다.
김기수 김규철 기자 k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