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선고에 ‘환호’ ‘한숨’ 희비교차
밤샘 이어 도심 곳곳서 집회 이어가 … ‘갑호비상’ 경찰, 찬반단체 충돌 차단 주력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4일 오전 11시 22분쯤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탄핵심판 선고 주문을 읽자 헌법재판소 주변과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모여있던 시민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졌다.
탄핵심판 선고 직후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내란수괴 윤석열의 파면은 주권자 시민의 승리이자, 수많은 시민들의 희생과 민주항쟁으로 일궈온 헌법과 민주주의의 힘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윤석열의 파면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우선 윤석열과 내란일당에 대한 사법처리가 엄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내란외환특검 도입을 포함해 외환 혐의와 경찰, 검찰의 내란가담 여부에 대한 수사도 강도높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헌정을 유린하는 모든 범죄자들의 말로가 어떠한지 똑똑히 남겨 제2, 제3의 내란을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안국역·관저 주변 집결 =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 하루 전인 3일 저녁부터 찬반 단체들은 도심 곳곳에서 집회를 이어갔다.
비상행동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은 이날 오후 9시 30분부터 안국역 6번 출구 인근에서 ‘탄핵심판 전야제’ 집회를 열었다.
안국동 사거리까지 전 차로를 채운 참석자들은 “8대 0 만장일치” “윤석열 파면하고 사회 대개혁으로 전진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고 노래에 맞춰 응원봉을 흔들었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김혜진 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내일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인용판결 선고를 듣게 될 것”이라며 “일부 재판관이 파면에 반대하더라도 주권자인 우리에게는 윤석열을 퇴진시킬 힘과 의지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함께 밤을 새운 후 이곳에서 4일 오전 11시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를 생중계로 시청했다.
참석자들은 등산용 매트와 돗자리를 깔고 노래에 맞춰 ‘내란세력 완전청산’ ‘민주정부 건설하자’ 등이 적힌 팻말을 흔들었다.
전광훈 목사를 주축으로 한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대국본) 등은 오후 8시 50분쯤 안국역 인근 탄핵 반대 집회를 마무리하고 헌재 앞에서 철수해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으로 이동했다.
이들의 집회에선 사회자가 “내일 윤석열 대통령이 돌아오면 우리 모두 잔치를 벌일 것”이라고 말하자 참석자들이 “탄핵 무효” “윤석열 대통령”을 외치며 탄핵 기각 또는 각하를 촉구했다.
이들은 철야 집회를 한 후 4일 오전 10시쯤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으로 다시 이동해 전날부터 이곳에서 철야집회를 벌이고 있는 이들과 합류해 탄핵심판 선고를 지켜봤다.
탄핵 찬성 단체인 촛불행동도 4일 오전 10시부터 관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앞서 3일 밤 11시부터 같은 장소에서 ‘파면 콘서트’를 개최하고 밤샘 농성을 벌였다.
경찰은 한남동 일대에 5만명 넘게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기동대를 대거 투입해 찬반 진영 간 충돌을 방지할 계획이다.
◆재판관 신변보호 인력 충원 = 경찰은 4일 오전 0시부로 전국에 ‘갑호비상’을 발령했다. 갑호비상은 경찰력을 100% 동원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비상근무 체제다.
경찰은 이날 전국에 기동대 338개 부대 2만여명을 배치했다. 대규모 집회가 예정된 서울 지역에 210개 부대 약 1만4000여명의 경찰력을 집중 배치해 치안 유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탄핵심판 선고가 진행되는 헌법재판소에는 기동대 110여개 부대 약 7000명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는 기동대 30여개 부대 약 2000명이 배치됐다.
‘특별 범죄예방강화구역’으로 설정된 광화문·종로 일대는 일선 경찰서장급인 총경급 지휘관 8명이 구역별로 ‘책임서장’을 맡았고 기동순찰대, 지역경찰, 교통경찰, 형사, 대화경찰 등도 1500여명이 배치됐다.
경찰은 전날부터 헌재 주변 150m 이상을 차벽으로 둘러싸 시위대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진공상태’로 만들었다. 버스 160여대, 차벽트럭 20여대 등 총 200여대의 장비가 투입했다.
재판관 신변 보호를 위한 경호팀도 추가 배치됐으며, 검문검색을 강화해 흉기와 같은 위험 용품 반입도 철저히 막았다. 헌재 인근에는 경찰특공대가 배치돼 청사를 보호하고, 기동대도 캡사이신과 장봉 등을 준비했다.
◆헌재 주변은 휴교·휴관·재택근무 = 탄핵심판 선고 하루 전인 3일부터 서울 종로구 일대는 한산해졌다.
탄핵 찬반 시위 간 충돌 우려에 헌법재판소와 광화문 인근 상점과 학교, 어린이집 등은 문을 닫았다. 기업들도 잇따라 재택근무에 나서면서 직장인들 발길도 끊겼다.
이날 헌재 인근 카페, 식당 등 상점 일부는 문을 닫았다. 10곳 이상은 4일 안전사고를 우려해 임시 휴업을 택했다. 일부는 온라인을 통해 사전에 휴무일을 공지했다. 지난 2일부터 이미 매장 영업을 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종로구에 위치한 기업들도 직원들 안전에 대비했다.
헌재 인근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은 비상 상황에 대비한 최소 필수 인원을 제외하고 전 직원이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HD현대는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하거나 판교 사옥으로 출근할 것을 권고했다. SK에코플랜트와 SK에코엔지니어링은 선고일과 관계없이 공동연차일로 지정돼 있어 하루 문을 닫았다.
광화문에 사옥을 둔 KT는 3일 오후부터 재택근무를 권고했다. LX인터내셔널은 전 직원이, GS건설은 광화문 본사 근무자에 한해 재택근무 중이다. 광화문과 시청역 인근에 위치한 LG생활건강과 대한항공은 직원들에게 휴무나 휴가 사용을 권장했다.
종로구 일대 어린이집도 안전사고 우려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했다. 종로구는 영유아들의 안전을 위해 어린이집이 휴원을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시위 현장과 다소 거리가 있는 일부 어린이집은 정상 운영할 예정이지만 보호자의 판단에 따라 가정보육을 원할 경우 결석하더라도 출석을 인정하기로 했다.
재동초와 운현초, 덕성여중·고 등 헌재 인근 학교 11곳 등은 3~4일 단축 수업과 임시 휴교를 실시했다.
이와 별도로 별도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인근 배화여중 배화여고 경기상고도 휴교를 결정했으며 청운중은 단축수업을 했다.
또 헌재와 멀지 않은 정독도서관도 4일 휴관했다.
헌재 인근 궁궐, 박물관, 미술관들도 문을 닫았다.
이날 문을 닫은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은 상황을 봐서 휴궁일을 연장할 가능성도 있다.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 경복궁 인근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도 휴관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과 청와대, 운현궁, 서울공예박물관도 마찬가지다.
광화문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은 3호선 안국역 인근 헌재로부터 거리가 있지만, 선고 당일 안국역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몰릴 수 있어 일부 휴관했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세종미술관)과 ‘세종이야기·충무공이야기’ 등 상설전시관이 문을 닫았다.
◆지하철·버스 헌재·관저 무정차 = 종로구 헌재와 가까운 지하철 3호선 안국역은 이날 첫차부터,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의 6호선 한강진역은 오전 9시부로 무정차 통과 중이다.
낙원상가로 향할 수 있는 종로3가역 4·5번 출구도 폐쇄됐다.
헌재 방면으로 향하는 차도들이 통제되면서 출근길 곳곳에서 교통 체증도 빚어졌다.
낙원상가~종로2가, 재동초~안국역, 경복궁 교차로~창덕궁 교차로, 안국동 사거리~조계사 앞 양방향 전 차로는 통제되고 있다.
이에 따라 광화문, 종로, 안국역 일대를 지나는 시내버스는 우회하거나 일부 버스 정류장에 서지 않고 있다.
한남동 관저 인근도 일부 시내버스가 무정차하거나 우회하고 있다. 서울교통정보센터 토피스(TOPIS)에 따르면 북한남삼거리~한남오거리, 서울역~삼각지역 사거리 양방향도 이날 집회가 종료될 때까지 시내버스가 정차하지 않는다.
지하철 광화문 경복궁 종로3가 종각 시청 등도 이날 집회 상황에 따라 무정차 통과를 하기로 했다.
한편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 곳곳에 현장진료소도 세워졌다.
서울시는 환자 발생에 대비해 안국·청계광장·한남동·여의대로에 각 1개소씩 총 4개의 현장진료소를 설치하고 의사를 포함한 의료진과 구급차를 배치해 응급상황에 대비했다.
소방재난본부와 관할 소방서에는 특별상황실이 설치됐다. 소방력 배치 및 지원 현황, 구조·구급 출동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각종 구조·구급 상황 등 안전사고 발생 시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대비했다.
장세풍·박광철·이재걸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