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 전환 위해 미래 함께 책임지는 실천부터
벌써 세 번째 대통령 탄핵 시도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인용입니다. 민주주의의 성장통이라고 말하기엔 우리가 감당해온 시간이 너무 길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상처는 특정 정파의 것이 아닙니다. 정치의 중심에 있었든, 곁에서 바라보았든, 혹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든, 심장은 굳은살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냥 더 아플 뿐입니다.
1980년대 정의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세대가 있습니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뜨거운 심장으로 이 땅의 새벽을 밀어 올렸습니다. 그날의 뜨거움이 이뤄낸 민주주의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자부심이자 뿌리입니다. 그 자부심은 작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그 뜨거움 이후 우리는 무엇을 남겼는가. 우리는 정권을 바꾸었고, 제도를 바꿨으며, 사회를 바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음 세대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건 누구의 잘못인가요?” “이런 세상을 왜 물려주셨나요?” 우리는 이제 자산을 쌓았고, 안정된 자리에서 손주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여전히 20대처럼 세상을 뒤엎으라고 말하는 건 정당할까요?
과거의 투쟁은 아름다웠지만, 지금 아이들이 마주한 현실은 다릅니다.
△인공지능 △자동화 △디지털 경제 △글로벌 경쟁 △기후위기…. 이 변화의 물살 속에서 그들은 방향을 찾지 못합니다. 우리가 해줘야 할 말은 “싸워라”가 아니라 “이렇게 준비해라” “이 방향을 보아라”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40~50대는 중년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설계자입니다. 가장 오랫동안 경제를 떠받치고, 가장 많이 책임을 져온 세대입니다. 그렇기에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사회를 설계하고 있습니까? 더 이상 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한 구조를 만들고, 불신을 넘어서는 언어를 고민하고, 희망을 이어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금은 물러설 때가 아니라, 함께 넘겨줄 준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주해야 합니다. 거울 앞에 선 ‘나’의 모습을. 이마에 주름이 생기고, 눈가엔 잔주름이 늘고, 머리카락은 희어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얼굴은 기쁨과 후회, 희생과 선택의 시간들이 새겨진 진짜 얼굴입니다. 그 얼굴을 감추지 마십시오. 그 얼굴이 곧, 당신이 살아낸 증거입니다.
반성은 자책이 아닙니다. 반성은 품격 있는 정리입니다. 성숙이며, 무언가를 아름답게 마무리짓는 마지막 지혜입니다. 물러날 줄 모르면 우리는 추해집니다. 그러나 자신의 실패담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아름답게 퇴장할 수 있습니다.
이제 20~30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희망’보다는 ‘구조’를 보고 ‘열정’보다는 ‘현실’을 말합니다. 그들에게 분노 대신 품위를 보여줘야 합니다. 정의의 완성이 아니라, 정의의 한계를 성찰하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싸워라”는 말보다 “우리가 이만큼은 바꾸어 놓겠다”는 실천이 그들에게 필요한 신뢰입니다.
우리는 이제, 투쟁이 아니라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말이 아니라 태도로, 분노가 아니라 품위로, 다음 세대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이제는 과거를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미래를 함께 책임질 태도를 말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퇴장이 부끄럽지 않기를. 우리의 다음 세대가 희망을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끝맺음의 철학은 품위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치적 태도는 물러남이 아니라, 함께 물려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