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장미대선’ 국난극복 출발점 만들자
4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결정하자마자 정치권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너도 나도 “내가 적임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의아한 것은 어제까지만 해도 “탄핵 반대”를 외치던 주요 인사들이 아무런 해명없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선판에 뛰어든 점이다.
게다가 ‘대통령 윤석열’은 탄핵됐지만 ‘정치인 윤석열’은 여전히 건재한 듯하다. 대통령 후보 출마자들이 관저에 찾아가 고개를 조아리고, 전화로 출마신고를 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내란사태를 정당화하고 윤 전 대통령 옹호에 목숨을 걸었다. 대선에서 이겨 탄핵의 부당성을 증명하겠다는 건지, 탄핵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건지 입장이 불분명하다.
내란 사태 반성없는 후보들 ‘득실’
지지층을 향한 정치행보를 뭐라 할 수는 없다. 헌재가 탄핵사유로 밝힌 ‘국민 배신’과 ‘헌정 유린’에 대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게 설득력이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러다 보니 “대선은 어차피 안되니 차기 당권 또는 지방선거 공천을 노린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 혼란은 안중에 없고 ‘정치적 득실 계산’에만 몰두하는 정치 지도자를 누가 원할까. 자당 출신 대통령이 두 번이나 탄핵당한 정당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 긴 호흡이 필요한 듯 하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역시 뇌관을 안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최악 대신 차악을 뽑는다”는 말이 나왔다. “떨어지면 바로 감옥가고 당선되면 5년 후에 간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보수든 진보든 국민들은 ‘불행한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 이재명 전 대표가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이지만 ‘비호감도’ 역시 1위다.
‘권력’에 마취되는 순간 언제 날아갈지 모른다. 헌재도 윤석열 탄핵 결정문에서 ‘국회는 당파의 이익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야 한다’며 일방의 권력독주를 경고했다. 보수진영에서는 ‘이재명 공포’를 거론한다. 이재명이 대통령되면 국회까지 장악한 마당에 ‘독재’를 할 것이란 주장이다.
보복정치 우려도 나온다. 민주당측은 ‘편견과 누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니라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게 정치 지도자가 할 몫이다. 민주당과 후보들은 과거 노무현 문재인정부의 영광과 좌절 속에서 교훈을 찾고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고 대선은 그 정점에 있다. 정쟁과 각축 속에서도 인물과 정책 대결을 벌이고 결과에 승복하는 축제의 장이 돼야 한다. 안타깝게도 6.3 대선은 축제가 아니라 ‘내란의 그늘’ 속에 치러진다.
“박근혜가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문재인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역설은 이제 중단돼야 한다. 후보들은 ‘전임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비전으로 평가받고 선택받아야 한다.
정치권의 원로인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은 ‘대통령의 자격’이란 책에서 지도자가 갖춰야 할 여러가지 능력과 소양을 주문했다. 최근 정국과 관련해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 기본자질이다. 그는 ‘공인의식’과 ‘민주적 가치의 내면화’를 들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공사구분을 하지 못하면 권력을 남용하고 정실 인사를 하고 부정부패가 시작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또 생각뿐 아니라 행동도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대통령들이 국민주권과 권력분립, 민주적 절차를 내면화하고 실천하지 못해 ‘제왕적 대통령’에 빠졌다는 것이다. 두 번의 대통령 파면이 그 결과라고 언급했다.
대통령 최소한의 자격,공인의식과 민주주의 실천
역대 대통령들은 마치 스스로 역사에 길이 남는 영웅이 된 것처럼 처신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현대 사회에서 대통령은 영웅이 아니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같은 위인이 나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정 기간 국정을 책임지는 행정부의 수반일 뿐이다.
내란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영갈등과 ‘정치적 내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권력기관 사이의 충돌, 헌법과 법률의 허점 등에 대한 대대적인 보완이 시급하다. 국내외 정치 경제환경은 IMF외환사태 때보다 심각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국민주권자들의 현명한 판단과 정치 지도자들의 대오각성으로 ‘국난’을 극복할 때다. 6.3 대선이 해결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차염진 정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