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 칼럼

부끄러움 모르는 파면 대통령과의 절연

2025-04-14 13:00:01 게재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 박완서의 단편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는 수치심을 궁구한다. 주인공은 학생 시절 6·25 전쟁을 겪는다. 피난 간 마을에 미군 부대가 생기자 많은 사람이 미군과 가까이 하고 싶어한다. 주인공의 어머니도 딸에게 양갈보짓이라도 하라고 들볶는다. 주인공은 이를 피해 이른 결혼을 선택한다.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다 세번 결혼하게 된다. 어릴 때 유난히 부끄러움이 많았던 주인공은 그러는 사이에 부끄러움을 잊어버린다.

그는 고위층 부인이 된 친구를 만나 서울 종로의 일본어 학원에 다니게 된다. “여러분, 이 부근부터 소매치기를 조심하십시오.” 일본어로 안내하는 가이드의 말을 알아듣곤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그는 문득 학원 간판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휘날리고 싶어 한다.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부끄러움이 인간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감정이라는 걸 보여준다.

‘부끄러움’은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인간의 중요한 덕목으로 꼽힌다. 일찍이 맹자는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가르쳤다. 공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면 덕을 배울 수 없다”고 했다. 고대 로마 정치가 키케로는 “부끄러움이 없는 곳에 명예도 없다”고 일갈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곳에 명예도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파면 이후 일주일만인 지난 주말에야 사저로 떠나면서 끝내 뻔뻔한 행태만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의무는 탄핵심판에 깨끗이 승복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개선장군이나 명예로이 임기를 마친 대통령처럼 굴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그가 지지자들을 끊임없이 선동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가려는 계교다. 위헌·불법 비상계엄이 그랬듯이 이 또한 미망(迷妄)이다. 그는 “국민 한 사람으로 돌아가 새로운 길 찾겠다”고 선언했다. 앞서 파면 직후에는 “대통령직에서는 내려왔지만 늘 여러분 곁을 지키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함께 투쟁하겠다는 다짐이나 다름없다.

최소한의 염치조차 보이지 않는다. 내란 우두머리로 재판을 받는 윤석열은 사실상 사형이나 무기징역이라는 중형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다른 혐의에 관한 수사도 여럿 남았다.

비상계엄 지지자들에게 “자유와 주권 수호를 위해 싸운 여러분의 여정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호도하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최소한의 품격이라도 지키기는커녕 끝까지 갈라치기와 갈등을 부추기면서 정치 동아줄을 붙잡으려는 모습이 외려 안쓰러울 정도다.

파면 후 이어진 관저 정치를 사저정치로 이어가려는 심사가 여실히 드러난다. 국민의힘 차기 대선 후보 결정에도 입김을 키우려는 흉중이 엿보인다. 실제로 윤 전 대통령은 나경원 의원, 이철우 경북지사 같은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을 관저에서 잇따라 만나 메시지를 내놓았다. “당을 중심으로 대선 준비를 잘해 꼭 승리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당을 망가뜨려 놓고도 그렇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으로 윤석열의 40년 절친인 이완규 법제처장을 지명한 것도 불순하기 그지없다. 사실상 윤석열의 선택이어서다.

국민이 오판으로 뽑은 최고지도자는 무능·무지·무도의 대명사 같다. 비상계엄이 아니라도 국정 혼란과 민생 파탄은 끊일 줄 몰랐다. 한 보수 언론인의 지적처럼 ‘(윤석열은) 어리석어서, 몰라서, 서툴러서, 잘못 알아서, 소견이 좁아서, 착각해서, 오만해서’ 수없이 실책을 범했다. 능력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최악의 대통령을 경험한 다수 국민의 심정은 처연하다.

윤석열은 심리학에서 걸러야 할 인간 유형으로 꼽는 ‘어둠의 3요소’를 모두 갖췄다. 나르시시즘, 사이코패스(또는 소시오패스), 마키아벨리즘이 그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조카이자 임상 심리학자인 메리 트럼프가 삼촌을 예리하게 평가했던 그대로다.

독단적 정치인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소시오패스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소시오패스는 자기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소시오패스는 매력을 이용해 남을 조종하는 데 능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쓰이지 않고 오직 자기를 위해서만 쓴다. 소시오패스는 타인을 속이고 멋대로 움직이는 데 능해 성격 장애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이런 모습이 윤석열이 대통령일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자기반성이 없는 사람은 결국 스스로 파멸하고 만다.

막후 정치라는 헛된 꿈 접어야

윤석열은 권력 미련 때문에 막후 정치라는 헛된 꿈을 접어야 한다. 파면된 대통령 윤석열의 악행을 더 보지 않으려면 사회적 격리가 긴요하다. 남은 일은 재판에 성실히 임하고 법의 준엄한 심판에 따라 죗값을 받는 일뿐이다. 이런 걸 미리 깨달았다면 나라의 미래를 망쳐 놓고 비상계엄도 하지 않았겠지만.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