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기후유권자, 경제 - 환경 두 토끼 잡아야 산다
6.3 대통령 선거 앞두고 탈탄소 정책 제언 봇물 … “성장까지 고려한 제도 설계가 돼야 실제 집행도 가능”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후환경 관련 정책 제언들이 봇물 터졌다. 윤석열정부에서 환경정책들이 맥을 못 추다 보니 다음 정부에서는 정상화를 이뤄야 한다는 바람을 담은 목소리들이 쏟아진다.
10일 임성진 전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 사회 현실화를 이뤄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라며 “기후위기 대응은 물론 우리 사회 성장을 함께 일궈낼 수 있는 체제 전환이 될 수 있도록 정책 재설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국환경연구원의 ‘2024 국민환경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68.2%가 우리나라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로 ‘기후변화’를 꼽았다(복수응답). 기후변화가 가장 중요한 환경 문제로 등장한 건 2023년부터다. 2021년 38.9%에서 매해 5~10%p씩 증가하는 추세다.
연구진은 “기후변화는 매우 긴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명확히 체감이 되지 않는 문제”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가 중요한 환경 문제로 국민 인식 속에 자리 잡은 것은 그만큼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문제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발전을 평가할 때 ‘경제적 기준을 우선 적용해야 한다(19.7%)’는 응답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경제· 환경·사회적’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38.0%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지속적인 세계 경기 침체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반기후정책 행보, 관세 압박 등의 영향으로 이러한 경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현실이다.
국민환경 의식조사는 2024년 9월 9~20일 19~69세 성인남녀 304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2012년부터 매년 실시되는 국민환경 의식조사는 장기간 변화하는 국민의 환경 인식 추이를 살피는 게 목적이다. 웹조사 방식을 활용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8%다.

◆”새로운 개념의 제조업 강국으로 육성” = 환경보호와 경제성장 중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느냐는 하루 이틀 문제는 아니다.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과 경제성장을 함께 가져가는 게 이상적이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탄소배출은 감소하는 탈동조화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더딘 편이다. 한국은행의 ‘국가별 패널 자료를 통한 경제성장과 탄소배출의 탈동조화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 안팎에서 탈동조화가 나타났다. 반면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 등은 평균적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 2만3000달러 안팎에서 탈동조화가 시작됐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관련 대책들도 잇달아 내놨지만 기대만큼 성과는 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이번 대선을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함께 가져가는 변곡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에너지전환 분야 오픈 플랫폼인 에너지전환포럼은 탄소중립 제조업 강국 육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각 정당들에게 전달된 ‘대한민국 산업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2030 에너지대전환 정책제안’에서 탄소중립 산업 생산 비례 지원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재생에너지 설비 △전기차 △배터리 에너지 저장시스템(BESS) △수전해 설비 등 탄소중립 산업의 국내 생산·설치에 세액공제와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이다. 이를 위한 재원은 탄소배출권 유상 할당 수입을 활용해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보조금에는 일몰 기간을 설정해 단계적으로 축소함으로써 기업의 조기 투자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은행은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도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서 녹색기술 개발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녹색 금융 활성화 정책이 중요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한국의 고탄소 제조업 중심 산업적 특성을 고려할 때 전환 금융 도입 확대도 필요하다는 분석도 내놨다. 전환 금융은 탄소다배출 기업의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는 금융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국제 청정에너지 투자액은 2조달러로 화석에너지(1조1000억달러) 대비 90% 이상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중국 유럽 미국 등 주요국들은 탄소중립 산업 선점을 위해 자국 기업 투자유치 정책을 강화하지만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설치량 감소 등 전반적인 탄소중립 산업 분위기가 위축되고 있다”며 “매년 2조~3조원의 생산 보조금을 지급하면 5000명 이상의 신규 일자리 창출(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고용 효과 기준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어 “국내 탄소배출권 거래가격이 유럽연합(EU) 대비 1/11 수준에 불과한 상황에서 2026년부터 본격화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부담 확대를 고려할 때 징수된 탄소배출권 수익을 탄소중립 산업 지원에 활용하면 정부 재정부담을 줄이면서 기업들의 탄소감축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시장경제 원리를 기반으로 기업 등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벌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하지만 초기 제도 정착 등을 이유로 지나치게 많은 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하면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본디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면서 탄소감축이라는 제도 목표 달성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비영리 기후·에너지 정책 싱크탱크인 사단법인 넥스트 역시 이와 비슷한 관점의 정책 제언을 한 바 있다. 넥스트는 ‘2025 대한민국 경제 재도약을 위한 정책 제안서’에서 해상풍력을 재생에너지 확충 수단만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기존 항만과 연계한 산업도시 활성화 방안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상풍력 부품은 거대한 크기와 상당한 무게 때문에 육로 운송이 어렵다.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위한 제조와 설치, 유지보수 모두 항만이 필수적이므로 제조업 생산능력 증대를 위해 연안 산업도시에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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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을 비용이 아닌 성장동력으로= 이번 대선은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유엔에 제출해야 하는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에 더 의미가 깊다. 본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은 2025년 2월까지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제출을 요구했지만 190여개 당사국 중 10여개국만이 이를 준수했다. 우리나라는 9월 중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10일 복수의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늦어도 6~7월에는 감축 목표치를 담은 시나리오 3~4개를 발표하고 공론화 과정 등을 거쳐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확정해야 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 중이었지만 사실상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파리협정에 따라 당사국들은 5년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해야 한다. 새롭게 수립하는 감축목표는 이전보다 더 높은 ‘진전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할 때 마다 정권과 관계없이 산업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논쟁은 반복되어 왔다. 더욱이 이번에는 미국의 상호관세 조치에 따라 수출 기업들의 위기감이 커진 상황이다. 특히 부진한 업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관세 전쟁은 석유화학 및 철강 업계 등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산업계에 강화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들이대기가 쉽지는 않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탄소중립 속도 가속화 논의가 활발하지만 어떤 에너지원을 쓰느냐가 또 다른 문제로 등장했다. 인공지능 연산을 위한 전력 소모는 일반 데이터 전력 소모량의 40~60배에 달한다. 이 대규모 전력을 어떤 에너지원으로 충당하는지가 관건인데, 독과점 형태의 우리나라 전력시장 구조와 계통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로 역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국제 사회는 탄소중립을 비용이 아닌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활용해 또 다른 부를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미래 국가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환경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대한민국이 걱정돼 대선에 출마한다는 문구가 봇물을 이루는 요즘, 기후환경 공약이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할 때다. 기후위기 대응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과제이자, 미래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 온실가스 배출자가 배출량에 비례해 가격을 지불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을 발행하고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량만큼 배출권을 시장에서 사서 정부에 제출한다. 기업(할당업체)마다 감축 목표량이 있고 목표량만큼 감축하지 못하면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하면 과징금을 문다. 반대로 목표량을 초과하면 그만큼 배출권을 내다 팔 수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 = 온실가스 배출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유럽연합(EU)으로 수출할 경우 EU 제품과 동등하게 환경 관련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상품에 내재된 탄소배출량을 보고하고 배출량에 따른 인증서 구매를 의무화했다.
■파리협정 = 2016년 제21차 파리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채택된 신기후체제(post-2020) 합의문이다.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운 ‘교토의정서’와 달리 190여개 당사국 모두에게 감축의무를 규정했다.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2℃ 상승 이내 억제 △온실가스 감축 이행 점검 등의 내용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