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세=굴복’ 트럼프 공식 깨졌다
준비된 중국, 과거에 머문 미국 … 패색 짙어지는 낡은 전략 지적도

◆1차 무역전쟁이 중국에 준 교훈 = 2018년 1차 무역전쟁은 중국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5년 동안 중국은 공급망 독립, 기술 자립, 내수 확대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했다. 중국 전문 컨설팅 기업인 가베칼 드래고노믹스의 아서 크로버는 1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중국은 미국 기술 없이도 제품을 만드는 데 매우 능숙해졌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은 반도체, 배터리, 통신 장비 등의 분야에서 국산화를 추진하며 기술 자립도를 크게 높였다. 희토류와 핵심 소재에서는 글로벌 정제 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내수 중심의 경제 전략 또한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대미 수출 의존도는 2018년 19.8%에서 2023년 12.8%로 낮아졌고, 중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미 수출 비중도 3%대에서 2%대로 하락했다. 트럼프식 관세 압박이 중국에 미치는 영향이 현저히 줄었다는 의미다.
미국에 대한 중국의 반격도 달라졌다. 희토류 수출 통제,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고율 관세, 애플·테슬라 규제, 미국 문화 콘텐츠 수입 제한 등 정치·경제적으로 정밀하게 타격한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의 일부 관세 유예 조치에 대해 “잘못을 고치는 작은 발걸음”이라며 말했다. 환율, 미국 국채, 글로벌 우군확보 등 중국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더 있음을 시사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4일 동남아 순방 전 베트남 인민보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무역전쟁과 관세전쟁에는 승자가 없다”고 미국을 공개 비판했다. 이어 베트남·말레이시아·캄보디아 순방을 통해 아세안 국가들과 공급망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국제사회 내 연대를 강화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 “관세전략은 권력과시일 뿐” =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는 “중국이 수출하는 것의 5분의 1만 우리가 수출하기 때문에 미국이 더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경제적 사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아담 S. 포센(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은 외교전문채널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을 통해 “흑자국인 중국은 단순히 판매를 포기하면 되지만 적자국인 미국은 전혀 생산하지 않거나 대체 불가능한 필수재를 포기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무역전쟁을 “경제적 베트남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커트 M. 캠벨(전 백악관 인도-태평양 조정관, Asia Group 회장)과 러시 도시(조지타운대 조교수, 전 백악관 중국 담당 부수석보좌관)도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트럼프의 관세 전략은 권력 과시를 위한 수단일 뿐, 중국을 실질적으로 흔들 수 없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은 특히 “중국은 규모, 산업 능력, 기술 자립도 면에서 이미 미국을 넘어서고 있으며, 미국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동맹국과의 공조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90일 협상론’도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십 개국과의 관세 협상을 90일 내에 마무리하겠다고 밝혔지만 로이터통신은 “현실과 동떨어진 선언”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실제로 한미 FTA 개정에도 8개월 이상이 걸렸고, 현재 미국무역대표부(USTR)와 재무부는 인사 공백과 협상 인력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평가다. 유럽연합(EU)의 무역 고위 인사가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미국 재무장관은 남미 출장을 떠나 있던 상황이 이를 방증한다.
◆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 재편 = 중국은 단순한 대응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아세안, EU, 아프리카, 남미 등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면서 미국의 고립주의가 낳은 공백을 메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시 주석은 “공급망 안정성과 다자무역 협력이 핵심”이라며 미국과는 정반대의 외교·경제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13일자 더컨버세이션은 “미국은 2000년 대비 2022년 중국산 제품 의존도가 4배 이상 증가했지만, 중국의 미국 제품 의존도는 절반으로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구조적으로 미국이 더 큰 약점을 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트럼프가 시작한 2차 무역전쟁은 단순한 관세 싸움이 아니다. 외교 역량, 공급망 전략, 기술 자립, 국제 공조력까지 동원되는 총체적 경쟁이다. 중국은 이에 맞춰 준비해 왔고, 흔들림 없이 대응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는 여전히 2018년식 전략을 반복하고 있다. 고율 관세는 단기적 충격을 줄 수는 있지만, 지속 가능한 해법이 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진정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동맹과의 협력 강화, 산업 재편, 공급망 복원 등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2차 관세전쟁은 이제 막 시작했지만 트럼프식 낡은 전략으로 이미 미국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