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부정 감시망을 다시 세우자│④ '을'과 '공범' 사이 회계법인

지정감사제 확대 앞서 윤리의식 회복이 먼저다

2016-11-08 11:30:05 게재

"눈앞 이익보다 원칙준수로 신뢰 쌓아야"

기업 '갑'지위 자유수임제 분식고발 한계

'6+3년' 혼합제·간부회계사 처벌강화 검토

감사품질 제고 등 자정, 일방적 매도 불만

"공인회계사들이 한번만 제대로 행동을 했어도 대우조선해양 사태에 따른 피해가 크게 줄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5조원대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한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의 관계자가 한 말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실제 경영현황을 반영한 내부 회계자료와 외부용 회계자료를 수년간 별도 관리해오다 검찰 수사로 들통이 났다. 이 과정에서 제무제표 적정성을 감시해야 할 담당 공인회계사는 문제제기는 커녕 수년간 그냥 모른척 넘어갔다. 문제의 공인회계사는 전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의 B 이사. 결국 B 전 이사는 '공인회계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 3일 구속됐다.

이 회계사는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를 알고도 왜 눈을 감았을까.

회계업계 안팎에선 기업과 회계법인과의 '갑을관계'를 첫번째 이유로 꼽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인회계사는 "외부감사인(회계법인 혹은 회계사)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위해 감사업무를 수행하지만 외부감사인을 뽑는 주체가 기업이기 때문에 기업과 그 의사결정권자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설사, 분식이 의심되는 경우라도 추가적인 절차를 수행하고 더 많은 자료를 요구해야 하는 데 이럴 경우 자칫 수십억원짜리 감사계약을 중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원천적으로 강하게 문제제기를 수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이 회계사는 "의심을 덮고 넘어가면 부실감사라는 불확실한 위험이 도사리긴 하지만 문제 제기 땐 감사계약 포기라는 확실한 위험을 맞닥뜨린다"면서 "대부분의 회계사가 분식회계 의혹이 있어도 그냥 덮고 가려는 유혹에 쉽게 빠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회계사 개인뿐 아니라 회계법인의 속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수임 경쟁이 치열한 탓에 회계법인은 재무제표 작성 등의 기업의 무리한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B 전 이사의 '분식 공모'와 관련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속사정 역시 다르지 않다. 회계법인 차원이 아닌 개인의 비윤리행위로 선을 그을 수도 있지만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 일단 재판결과 등을 더 두고 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갑과 을의 지위가 확연한 한국의 회계풍토에선 감사품질을 떨어 뜨릴 수 밖에 없다는 데는 공감한다는 분위기다.

4대 회계법인 소속 한 공인회계사는 "회사가 외부감사인을 선임하는 현 구조로는 감사인이 독립적으로 회계감사를 수행하기 어렵다"면서 "시장원리에 감사계약을 맡겨두고 회계사에게 도덕성만으로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모순적 태도"라고 지적했다.

회계부정과 관련 대다수 회계사들 정서를 대변하는 말로 해석된다.

회계사 역시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돈을 벌어야 먹고 사는 '생활인'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회계업계 내부에선 회계사 스스로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최근 국내 빅3 회계법인 삼정KPMG에서 감사본부 사상 두번째로 여성 파트너가 된 강인혜 상무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감사보수의 현실화도 중요하지만 감사인들도 당장의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원칙을 준수하는 것을 우선 순위로 하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면서 "회계사들이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신뢰받는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갑을관계를 청산할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공인회계사들의 투철한 윤리의식, 사명의식 재정립이 전제돼야 한다는 뼈아픈 지적인 셈이다. 과정이야 어째됐든 분식회계의 피해자는 기업도 회계법인도 아닌 주주와 투자자들, 선의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회계투명성 확보 방안 쏟아져 =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20대 국회는 회계부정 막을 묘책이라며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올들어 6개월새 발의한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만 7건에 달할 정도다.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개정안은 주로 분식회계 회사의 경영진과 부실감사 회계 법인에 대한 제재강화와 외부감사 대상을 유한회사로 확대하는 등의 지정감사제 확대로 쏠리고 있다.

그만큼 회계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깨야 회계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 역시 기업과 외부 감사인의 '갑을관계'를 회계부정의 한 축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회계제도 개선 태크스포스(TF)를 꾸렸다. 기업이 외부 감사인을 선임하는 '자유 수임제' 구조에선 회계법인이 기업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는 문제 의식에서 TF는 출발하고 있다. 현재의 자유수임제론 분식회계를 고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데 금융당국 역시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제3의 기관이 기업을 감사할 기관을 지정하는 '지정감사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정 감사제는 현재 금융당국이 부실기업 등에 한해 적용하고 있다. 일반 기업으로 확대할 경우 최소한 감사인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데 효과적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지정감사가 특정 회계법인으로만 몰리는 등 대형사 독식이라는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당사자인 기업들 반발도 크다. 감사비용도 크게 늘어나 당장 재정적으로 부담스런데다 시장원리에 어긋나고 해외엔 사례가 없는 제도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또 입찰경쟁 방식의 자유수임제와 달리 감독당국이 지정할 경우 회계사들이 경쟁을 게을리해 감사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국처럼 감사위원회를 통한 감사인 선임이 바람직하다며 대안까지 제시할 정도로 거부감은 크다.

금융당국이 전면적인 지정감사제도입 대신 '6+3년' '9+1년' 같은 절충안들을 놓고 고민하는 이유다. 그러나 절충안마저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6년은 기업이 자유수임 방식으로 선임하고 이후 3년은 지정감사제를 받는 방식'은 회계법인들이 선호하고 있는 반면 기업들의 경우 지정감사제 자체를 거부하거나 최대 1년 정도만 지정감사를 받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부실감사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회계법인 대표이사는 물론 중간 간부까지 직무정지 조치와 검찰고발까지 가능한 징계 강화 방안은 좌고우면없이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자정 노력은 하지만 … 불만의 목소리도 = 회계업계는 제도개선과 함께 내부 자정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분식사태뿐아니라 앞서 지난해 8월 일부 회계사들이 감사대상 기업정보를 이용해 주식투자를 하고 차익을 챙긴 사실이 적발되면서 회계법인에 대한 불신의 골은 이미 깊어진 상태. 공인회계사들에겐 어느때보다 강한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한국공인회계사회가 나섰다. '회계 바로세우기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회장 직속 기구로 설립된 회계 바로세우기 특별위원회는 업계 차원의 자정 노력을 주도하는 동시 정부의 회계제도 개혁 방안을 적극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최중경 공인회계사회 회장을 비롯 회계법인 대표, 지방공인회계사회, 청년공인회계사회 구성원 등 20여명으로 꾸려졌다. 특별위원회는 정기·수시 회의를 열어 대우조선해양의 회계부정 사태 등을 계기로 드러난 회계업계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최 회장은 "올바른 회계제도의 정립과 공인회계사의 역할 및 역량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진딜로이트 등 회계법인들은 감사품질을 높이기 위한  교육과 지침을 마련하는 등 내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회계정책에 전반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당장 감독당국의 회계사 주식투자 금지 확대 지침부터 시비거리다.

청년공인계사회는 이 문제와 관련 "미공개정보 이용이라는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않고 일부 회계사의 일탈행위를 근거로 회계사집단 전체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본질은 놔둔채 애먼 회계사들만 잡고 있다는 불만이다.

같은 맥락에서 회계부정 대책도 기업은 느슨하게 감독하면서 회계법인만 잡도리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회계사들은 "기업이 조직적으로 감사인을 속이려 들면 감사인은 속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애초 기업이 썩어있으면 회계법인에게 아무리 책임을 지우려고 해도 제대로 된 감사가 불가능한데 회계사들에게 자꾸 썩은 물을 주면서 왜 못 걸러내냐며 능력 밖의 일을 요구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원칙대로라면 기업 책임부터 강하게 물어야 한다는 논리다. 구의청 공인회계사회 연구위원은 "기업은 단기 업적 중심의 실적 부풀리기에 빠져있고 내부감사인은 회사로부터 독립성이 결여됐으며 외부감사인인 회계법인은 전문가로서 윤리의식이 부족하다"면서 "현재는 회계시장 신뢰의 위기"라고  규정했다.

지정감사제(외부감사인 지정) = 공정한 감사가 필요한 기업의 감사인을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해 주는 제도. 감사인의 독립성과 외부감사의 신뢰성을 높여 이해관계자를 보호하기 위해 1989년 12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개정으로 제도화됐다. 감사인 지정대상회사는 감사인 미선임법인, 감사인 부당교체법인, 회계기준위반으로 감사인 지정조치를 받은 법인,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상장법인, 기업공개예정법인, 기타 공정한 감사가 필요하다고 증권선물위원회가 인정한 법인 등이다. 지정대상 외부감사인은 회계법인으로 한정하고 있다. 감사인별 지정점수에 의해 지정순서를 정한 후 자산규모가 큰 지정대상회사부터 순차적으로 외부감사인을 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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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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