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부정 감시망을 다시 세우자│⑥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잘못 베낀 자유수임제, 회계감사 본질 무너져"
회계사들 기업 감사과정서 모욕감 느껴 … "분식회계는 사실상 살인행위"
"기업이 감사인을 정하는 자유수임제는 분명히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와 있습니다. 우리 현실과는 달리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선진국의 제도를 잘못 베끼다 보니 회계감사의 본질이 무너졌습니다."
21일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분식회계를 막기 위한 제도개선의 중대과제로 지정감사제 확대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자유수임제는 기업이 외부감사를 담당할 회계법인을 자의적으로 선택하는 것이고 지정감사제는 금융감독당국이 지정하는 감사인을 의무적으로 선임하는 것을 말한다. 자유수임제는 기업과 회계법인의 '갑을 관계'를 형성해 감사인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주된 원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소유와 경영이 일치하는데 이런 구조에서는 어떤 형태의 기구를 외부감사인으로 선임해도 이해상충 문제를 풀 수가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지정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정감사제도 확대를 통해 자유수임제도의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말이다.
경영자는 재무제표의 문제점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는데 이를 밝혀내야 하는 감사인은 경영자가 선임하고 감사보수를 지급하는 구조다.
최 회장은 "회계사가 기업 감사를 벌일 때 자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는 '당신이 여기 왜 왔느냐'고 하면서 모욕을 당하는 경우들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최근 대우건설에게서 자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감사인이 3분기 재무제표에 대해 '검토 의견거절'을 표명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달라진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지만 대형 회계법인이라서 가능했다는 말도 있다.
그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전면 지정감사제를 하는 것이 국가적 수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권위 있는 제3자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것은 오히려 평가받을 일"이라며 "지정감사제를 반대하는 기업은 뭔가 숨기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회계법인 대표가 수금하러 다니는 게 현실" = 최 회장은 완전 자유수임제와 전면 지정감사제의 중간 정도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혼합수임제의 형태다. 채이배 의원은 '자유수임제 6년과 지정감사제 3년'의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 최 회장은 혼합수임제의 구체적인 모습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될 문제라고 했다.
혼합수임제의 기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자유수임제에 지정감사제적 요소를 넣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유수임제를 할 때에도 회계법인에 지급할 최소한의 보수를 정해야 한다"며 "감사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인적 자원과 시간이 필요한데 회계법인들 간 과당경쟁으로 수임료가 하락하면 결국 회계사가 적게 투입되고 시간도 줄어서 감사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감사계약시기도 앞당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본격적인 감사가 시작되기 전에 감사계약을 끝내야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감사를 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감사를 끝낼 때까지 계약이 되는지 안되는 지를 모르는 일이 벌어지는데 그러면 정말 싱숭생숭하고 고약하다"며 "감사가 시작되기 전에 감사계약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수금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형 회계법인들을 위해서는 '감사보수 공탁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감사 착수금을 주고는 나중에 잔금을 안주는 경우가 벌어지는데 회계법인 대표가 수금하러 다니는 게 현실"이라며 "감사 연장이 걸려있어서 법적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회사에 끌려 다닌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보수를 공적인 제3의 기관에 공탁을 한 뒤 감사보고서 제출이 끝나면 자동으로 회계법인에 지급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러한 문제는 재계를 대변하는 전경련과 대한상공회의소 경총 등 7개 기관의 반대에 부딪혀 실현되기 어려웠다. 최 회장은 "7개 기관이 공인회계사회의 반대편에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국 모두 한편이 되는 것이 기업의 회계투명성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기업을 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감사소홀, 비정할 정도로 책임묻겠다" = 회계사들은 기업을 감사하면서 의견을 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 회사에 중요한 소송이 걸려있어서 소송 결과에 따라 회사의 존속 여부가 결정되거나 거액의 공사미수금 중 과연 얼마를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경우 등이다.
최 회장은 "어떤 결론이 나오느냐에 따라 회사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서 감사의견을 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며 "예외적으로 감사의견을 유예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사보고서를 무조건 3월말까지 제출해야 하는 규정도 연장이 가능하도록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간에 쫓겨서 제대로 된 감사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지정감사제 확대와 함께 이처럼 자유수임제에 지정감사제적 요소가 들어가는 형태로 제도개선이 이뤄지면 공인회계사회가 자율규제기구(Self-Regulatory Organization, SRO)로서의 역할을 강하게 추진할 계획이다.
그는 "감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제도가 갖춰진 이후에도 회계부정 등에 대한 회계사들의 감사 소홀이 벌어지면 공인회계사회가 비정할 정도로 회원들에게 무겁게 책임을 물리겠다"며 "다수의 선량한 회원을 보호하기 위해 적발된 회원의 퇴출과 직무정지 등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회계사는 불특정 다수인 국민(정보이용자)을 위한 공익적인 업무를 맡고 있다"며 "업무 소홀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분식회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분식회계는 살인행위나 마찬가지"라며 "잘못된 회계정보에 속아 투자를 했는데 상장폐지로 주식이 휴짓조각이 된 투자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며 "회계사들이 기업과 경제의 위기 상황에서 조기 경보를 울릴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회계교육 필요 = 대우조선해양은 분식회계로 인해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쳤다. 그 대가는 수조원의 혈세가 지원되는 등 혹독했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선진국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회계정보가 왜곡돼 자원배분이 잘못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투자의 기본이 투명한 회계인데 모뉴엘 같은 분식회계 기업에 수천억원이 지원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흥망을 결정하는 데 회계정보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회계가 바로서야 경제가 바로 선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대우조선해양이고 회계제도 개선은 회계사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회계제도 개선 문제가 해결되면 공인회계사회의 다음 과제는 '국민에게 다가가는 회계'다.
국민들이 회계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편하게 여길 수 있도록 '알기 쉬운 회계'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최 회장은 어릴 적부터 회계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네덜란드처럼 작은 국가가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회계교육을 조기에 실시했기 때문"이라며 "회계교육은 논리적 사고를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국민들이 기업의 감사보고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회계사들이 주요 내용을 요약해 작성하는 방안도 추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최 회장은 "회계사들이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기"라며 "국민에게 다가가고 친근한 회계사가 되기 위한 '마을 회계사'와 같은 개념의 접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계부정 감시망을 다시 세우자' 연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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