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전세사기 특별법 추진 … '보증금 지원' 쟁점
여야 협상 돌입 … 27일 본회의 처리 목표
"보증금 회수 원하는 피해자에게 '그림의 떡'"
피해대책위 "정부·여당 대책 실망스러워"
전세사기 문제가 전국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이 전세사기 특별법을 제정해 피해자를 구제하기로 했다. 피해자들이 경매에 넘어간 피해주택에 대한 우선매수권을 포기하더라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해당 주택을 매수해 피해자들에게 임대하는 등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 골자다. 다만 피해자대책위와 야권이 주장해온 피해보증금 채권의 공공매입 등의 방안이 빠져있다는 점에서 향후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간 협상에서 관련 방안이 추가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피해자들, 집에서 쫓겨나는 일 없도록 … 당정 '급한 불' 끄기 = 정부와 여당은 23일 고위당정협의회를 한 후 국회 소통관에서 브리핑을 열어 한시적 특별법을 제정해 전세사기 대책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특별법을 통해 피해 임차인의 주거권을 보장하겠다"며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임차 주택을 낙찰받기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우선매수권을 부여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임차 주택을 낙찰받을 때는 관련 세금을 감면하고,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피해자에게는 장기 저리의 융자도 지원할 방침이다.
박 의장은 또 "임대로 계속 살기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에서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해당 주택을 매입한 후 공공임대주택으로 제공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피해자들이 퇴거 걱정 없이 장기간 저렴하게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한시적 특별법은 이주 내에 발의될 예정이다.
이날 새롭게 제시된 LH를 통한 피해자 거주권 보장 방안에 대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LH 매입임대주택에 장기간 안정적으로 살게 되면 현재 임대료 시세로 환산해봤을 때 상당한 금액의 사실상 이익을 볼 수 있게 된다"며 "그렇기에 전세사기로 떼인 돈이 실질적 가치로 거의 충당이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매입 가격 등은 국토부가 임의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매 절차에 들어가서 우선매수권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라며 "중단된 경매 절차 재개시 피해자나 LH가 우선 매수하기 때문에 제3자에 넘어가 피해자가 강제로 퇴거되는 일은 원천적으로 방지된다"고 밝혔다.
정부여당이 LH를 통한 피해주택 매입 및 공공임대 방안을 새로 내놨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방안으로 평가된다. 다만 여당은 야권의 주장과는 결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공공에서 피해주택을 매입하는 방식을 같지만 피해자의 보증금을 공공에서 변제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박 의장은 야당의 안에 대해 "국가가 피해 보증금을 혈세로 직접 지원하는 방식은 결국 부담을 모든 국민에게 전가하는 포퓰리즘적인 생각"이라고 또 한번 선을 그었다.
◆야당 "피해자 요구 충족에는 부족" = 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의 특별법 제정 의지를 환영하면서도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좀더 전향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했다.
민주당은 24일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정부 여당이 전세사기 대책 특별법을 발의하기로 했다. 긴급하게 대책을 수립하려는 정부여당의 노력을 평가한다"면서도 "피해자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많이 늦은 대책일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했다기에는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고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당장의 경매 연기와 중단, 임차인 우선 주거권 보장, 임차인 우선매수권 보장, 그리고 임차인 전세보증금 환수를 요구하고 있다"며 "정부 여당은 수 개월이나 법률안 제출을 미루다가 전세보증금 환수 방안을 뺀 채 우선매수권과 세금 감면안을 내놓았다"고 했다. 이어 "이미 전 재산을 잃고 시름에 빠진 피해자들에게 임차주택을 다시 낙찰 받으면 세금을 감면하고, 장기저리로 융자를 해주겠다는 것은 온전한 대책이 될 수 없다"며 "사기 피해 대책의 핵심은 빠졌고, 여전히 정부 여당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경매 금지와 이에 따른 주거지 퇴출을 차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적절하지만 전세보증금 반환 등 피해자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이번주 국회 국토위 논의과정에 관심이 모아진다. 민주당은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변화를 수용하면서도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내용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성주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우리가 요구했던 경매 중단, 주거지 유지, 공공매입 등에 대해 당정이 수용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로 평가할 만하다"면서 "하지만 피해자들을 만나보면 현 주거지를 매입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고 오히려 보증금을 돌려주면 그것을 가지고 다른 데에 가서 매입하거나 전세를 얻으려는 생각도 적지 않아 세밀한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또 "정부에서는 개인의 사기 피해사건을 재정으로 보전해주는 것에 대한 형평성 등의 문제제기가 있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번에는 특별법으로 대응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국토위 고위 관계자는 "서울 강서, 인천 미추홀구, 동탄 등 지역, 주택마다 피해자의 요구가 다르다"며 "상황에 따라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는 어려운 만큼 가장 중요한 것은 극단적 선택을 막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당장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 수 있고 자신의 전재산일 수 있는 사람이 일부라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줘야 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야당의 심상정, 조오섭 의원안과 정부안을 담은 여당안이 들어오는 대로 빨리 상정해서 논의해야 27일 본회의에 올릴 수 있다"면서 "물리적으로 빠른 통과가 가능하기는 한데 실질적으로 이견을 좁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전세보증금 일부라도 지원할까 … 여야 협상 관심 = 전세사기의 심각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여야 모두 국토위 개최에 반대할 이유는 없겠지만 합의점을 신속하게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세보증금 반환'을 놓고 여야간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당 이은주 원내대표는 이날 "보증금반환채권 매입에 대해서도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정부 여당안대로 한다면 당장 살던 집에서 쫓겨나지는 않는 만큼 급한 불은 끌 수 있지만, 보증금 회수를 원하거나 더 이상 빚을 낼 여력도 없는 피해자들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 정부와 국회가 논의하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부동산 전세 대책이 아니라 사회적 재난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라며 "정부는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부 논리라면 기업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도, 코로나19 손실보상도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했다. "정부가 현재 사태를 집 없는 시민들에 대한 사회적 재난이라고 생각한다면 특단의 대책으로서 보증금반환채권 매입을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피해자들은 정부와 여당의 대책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내놨다. 전세사기·깡통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정부가 피해 주택 매입, 우선매수권 부여 방침을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전세사기 피해 유형은 다양하며 그에 따른 해결법도 상이하다"며 "공공의 보증금 채권 매입, 피해 주택 매입, 우선매수권 부여를 모두 제도화한 뒤 피해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정부가 기존 예산으로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매입하면서 매입 임대주택을 이용해야 하는 취약계층과 전세사기 피해자간 싸움을 붙인다는 논란도 있는 만큼 별도의 추경을 통해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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