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에 데인 여권, 잇단 군 사망사고에 긴장
한 총리, 국방장관에 재발방지대책 지시
추경호, 국방차관에 현안보고 요구 ‘질책’
채 상병 특검법안을 폐기시킨 여권이 최근 잇따른 군 사망사고 대처에 전전승승하고 있다. 사망사고가 가질 수 있는 폭발력도 문제지만 간신히 시간을 벌어놓은 채 상병 사건과 연계돼 민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긴장하는 모습이다.
29일 정부여당은 일련의 훈련병 사망사건과 관련해 소관 부처인 국방부를 단속하고 나섰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임시국무회의에 참석한 신원식 국방부장관을 따로 만나 훈련병 사망사건과 관련된 보고를 받고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당부했다. 한 총리는 “군 장병들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분들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국민들이 열심히 살며 고생스럽게 키워낸 자식들”이라며 “이분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동안 불필요한 희생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앞서 23일 강원도의 육군부대 신병교육대에서 입대 9일차 훈련병이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 쓰러져 이틀 만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훈련병은 완전군장을 한 채 연병장을 도는 등 가혹행위에 가까운 훈련을 강요당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의혹이 제기돼 부정적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21일에는 신병훈련 중 터진 수류탄에 훈련병 1명이 사망하고 소대장 1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여당도 나섰다. 같은 날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김선호 국방부 차관을 불러 최근 군 사망사고와 관련한 현안보고를 받았다. 이날 보고는 추 원내대표가 설명을 요구해 이뤄진 것이다.
이날 현안 보고에서 추 원내대표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질책성 호출이었다는 관측이다.
김 차관은 보고 후 기자들과 만나 “최근 2명의 우리 병사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의문점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수사해 필요한 부분은 국민께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이 각각 국방부를 질타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제2, 제3의 채 상병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얼차려 사망사건’과 관련해 각종 의혹이 속속 제기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군 사망사고가 역시 군 사망사고였던 채 상병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점도 부담이다.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도 국민의힘은 법안 폐기에 앞장섰고 이는 민심에 반한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채 상병 특검법안에 대한 찬성 의견이 많다. 뉴스토마토의 의뢰로 미디어토마토가 조사한 여론조사(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17명 대상, 무선ARS, 5월 15~26일 조사)에선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국회가 찬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63.7%였다. 정치 성향으로 분류해 보면 보수 성향이라고 답한 사람의 39.1%가 찬성 의견을 밝혔다.
야권 일각에서도 최근 군 사망사고와 채 상병 사건을 연결선상에서 보고 있다. 추미애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채 상병 사건과 얼차려 사건을 묶어 “윤석열 정권의 병리적 풍토가 야기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에 찬성 입장을 밝히는 등 부결 당론을 따르지 않았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30일 얼차려 사망사건과 관련해 “믿기지 않는 군기훈련 정황에 대한 증언이 이어지며, 청년들의 분노와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국민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며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잔재인 규정 위반, 건강 이상징후 무시, 어설픈 대응 등은 이제라도 혁파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진상을 신속히 밝히고, 책임자를 엄중 처벌하기 바린다”며 “안보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장병들이 존중받고, 자부심을 가지는 데서 시작한다”고 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