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수시 합격생 릴레이 인터뷰
정재형 한양대 반도체공학과
물리학이 이끈 슬기로운 반도체 탐구생활
‘덕후’의 학생부란 이런 것일까? 비교적 남들보다 일찍 ‘반도체’라는 목표를 정한 재형씨의 학생부에선 왠지 모를 여유와 애정이 함께 느껴졌다. 교과서를 넘어 스스로 탐구 주제를 찾아 나선 덕분에 이미 고등학교 때 반도체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 한껏 반도체 세계를 만끽하는 재형씨를 만나 3년의 기록을 되짚어봤다.
<물리 Ⅰ> <화학 Ⅰ>에서 건져낸 반도체 탐구 주제
재형씨를 반도체 세계로 이끈 건 다름 아닌 책 한 권이었다. 고1 때 읽었던 <물리학 클래식>은 머릿속에 ‘반도체’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과학 계열로 진학하겠다는 두루뭉술한 생각만 있었던 재형씨에게 반도체는 신세계였다.
“반도체는 IT 기술의 핵심인데 아직 미개발 분야가 많더라고요. 구체적인 진로를 정하지 못한 차에 그 책을 읽었는데 반도체와 트랜지스터 부분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거다!’ 싶었어요. 반도체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긴 것도 그때예요.”
남들보다 일찍 진로를 정하고 나니 탐구할 주제가 무궁무진했다. 특히 <물리 Ⅰ>과 <화학 Ⅰ>은 반도체를 공부하기에 적격이었다. 먼저 포문을 열 듯이 ‘반도체 8대 공정’에 관한 탐구 보고서를 작성했다.
“반도체 공정 중 EDS 공정은 개별 칩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여러 시험을 거치는 단계예요. 정상 작동하는 칩이 많다면 ‘수율이 높다’고 할 수 있죠. 마지막 단계는 패키지 공정이에요. 반도체를 각 전자 기기에 투입하기 쉬운 형태로 만드는 일이죠. 반도체 공정에 대해 공부할 때마다 국내외 논문도 찾아보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화학 Ⅰ>도 역시 반도체와 연결되는 지점이 많았다. 반도체는 얇은 원판인 웨이퍼에 구현되는데 웨이퍼의 재료는 대부분 모래에서 추출한 규소다. <화학 Ⅰ> 시간에 떠오른 질문은 바로 웨이퍼의 재료였다.
“예전에는 게르마늄으로 웨이퍼를 사용했는데 왜 요즘에는 규소를 쓰는지 궁금했어요. 14족 원소의 특성을 파악해보니 규소가 게르마늄보다 전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약해서 전자를 훨씬 효율적으로 공유하더라고요. 또한 상대적으로 게르마늄보다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성도 뛰어나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었고요.”
<물리 Ⅰ> 토대로 <물리 Ⅱ>에서 모스펫 연구, 부족한 코딩 능력 아쉬워
<물리 Ⅱ>는 포물선 운동, 진자 운동 등 <물리 Ⅰ>보다 구체적인 개념을 다룬 내용이 많아 조금 어려웠지만 막상 공부해보니 재미있었다. 그중 불확정성의 원리가 특히 흥미로웠다. 트랜지스터를 배우는 과정에서는 양방향 접합 트랜지스터(BJT)가 반도체에서 구현되는 방법이 궁금해 스스로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다.
“트랜지스터도 종류가 다양한데 그중에서 모스펫이라 불리는 금속 산화막 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MOS-FET)를 알게 됐어요. 반도체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고요. 열심히 책과 논문을 찾아 조사한 끝에 모스펫은 베이스의 전류량에 따라 컬렉터의 전류량이 제어되는 게 아니라 게이트에 걸리는 전압 때문이라고 발표했어요. 앞으로 모스펫이 어떤 형태로 발전할지 궁금해서 파고들었는데 이 정도로 탐구하는 친구는 없더라고요. (웃음) 아마 누가 시켜서 했다면 이렇게 열심히 하진 못했을 거예요. 지금도 학술 동아리에서 친구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채찍질하고 있어요. 하하.”
<과학과제연구>는 경기도교육청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근처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들었던 수업이다. 자율 주제로 원하는 실험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하고 싶은 실험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주제는 ‘온도에 따른 물의 굴절률 변화’. 관측용 실험관에 빛을 쏜 다음, 온도에 따라 물을 채운 공간과 공기를 채운 공간을 지날 때 굴절률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측했다. ‘광섬유의 코어에 사용되는 물질을 액체로 대체할 수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는데 궁금했던 부분을 해소할 수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고. 이렇게 반도체에 대한 ‘찐사랑’으로 깊이 있는 공부를 즐긴 흔적이 역력한데 아직도 고등학교 때를 생각하면 아쉬운 게 많다.
“시뮬레이션이나 코딩을 잘했다면 다양한 변인에서의 반도체 공정 과정을 더 실험해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대학에서 공부해보니 주도적으로 자료를 해석하고 공부한 친구와 저의 발표는 완성도의 차이가 크더라고요.”
공부의 필요성 고민하는 3년 되길
재형씨는 3년 내내 학급 회장을 맡았고 동아리 회장과 교과 부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두루두루 많은 친구와 교류했던 덕분이다. 활동적인 성격이라 동아리 활동도 놓칠 수 없어서 1~2학년 때는 화학 동아리, 3학년 때는 물리 동아리에 참여했다.
“고3 때 선생님이 수시 지원한 친구들과 함께 그토록 하고 싶었던 물리 동아리를 만들게 해주셔서 첨단 기술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임베디드 시스템과 운영 체제를 공부하면서 직접 키보드를 제작했는데 꽤 재미있었어요.”
반도체에 빠졌던 만큼 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수시 지원은 모두 반도체공학과 혹은 공학 계열로 정했다. 내신이 치열한 학교였기 때문에 암기 과목은 작은 실수에도 상위권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수학, 과학 과목은 꾸준히 1~2등급을 유지해 한양대에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지원했고 추가 합격했다.
그 외에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성균관대 공학 계열,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경희대 기계공학과,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울산과학기술원(UN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 지원했고 한양대 경희대 서울시립대와 광주과학기술원에 합격했다. 아무래도 계약학과이다 보니 취업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점이 한양대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후배에게 남길 한마디를 부탁하자 ‘성실함’을 꼽았다. 흥미를 갖게 된 분야에서 꾸준하게 나만 할 수 있는 탐구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고액 입시 컨설팅에 너무 의존하거나 여러 사람에게 휘둘려서 진로를 결정하기보다 정말 관심 있는 분야를 탐구해보세요. 무엇보다 공부의 필요성을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사실 고등학교 공부에는 큰 재능이 필요하지 않거든요. 열심히 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니까 나의 성실함이 어디까지일지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공부해보면 분명 좋은 결과가 나올 거예요.”
취재 황혜민 기자 hyem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