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의 인도 톺아보기

트럼프와 모디가 펼쳐갈 브로맨스와 거래의 정치

2024-12-26 13:00:01 게재

세계에서 가장 큰 두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과 인도를 이끄는 도널드 트럼프와 나렌드라 모디는 서로에 대한 특별한 신뢰와 깊은 유대를 자랑하며 국제무대의 눈길을 끌고 있다. 두 지도자는 강력한 개인적 유대와 거래 중심의 리더십으로 양국 관계를 새로운 차원에서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이나 의례를 넘어 실리와 갈등이 교차하는 복합적이고도 흥미로운 역학을 펼쳐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최고의 환대 주고받은 교류의 순간들

2019년 9월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린 ‘하우디 모디(Howdy Modi)’ 행사는 두 지도자의 특별한 관계를 전세계에 알린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약 5만명의 인도계 미국인이 몰려든 자리에서 트럼프는 모디를 “위대한 지도자”라고 부르며 경제개혁의 성과와 리더십을 극찬했다.

모디는 이에 화답해 트럼프를 “내 친구 트럼프(my friend Trump)”라 부르며 두 나라의 유대를 “자연스러운 협력”으로 묘사했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 손을 맞잡고 양국의 우의를 과시했다. 특히 미국 대통령이 인도계 커뮤니티 행사에 직접 참석한 것은 역사상 최초였다. 이는 인도계 미국인들이 미국 정치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도계 유권자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트럼프의 전략적 의도를 드러낸 장면이기도 했다.

2020년 2월 트럼프는 모디의 초청으로 인도를 공식 방문했다. 인도 아메다바드에서 열린 ‘나마스테 트럼프(Namaste Trump)’ 행사는 스케일면에서 ‘하우디 모디’를 능가했다. 세계 최대 크리켓 경기장에서 10만명 넘는 인파가 트럼프를 환영하며 “트럼프! 트럼프!”를 연호했다. 모디는 “미국 역사상 가장 특별한 대통령”이라며 트럼프를 추켜세웠고, 트럼프는 “이런 환영은 처음 본다”며 감탄을 표했다.

크리켓 경기장에서 정치적 행사가 열린 것도 이례적이지만 미국 대통령에게 인도가 보여준 극진한 환대는 양국 관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상징했다. 양국 관계가 외교적 의례를 넘어 국민적 지지를 받는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2024년 11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자 모디는 즉각 SNS에 축하 메시지를 올리고 트럼프에게 축하전화를 걸었다. 트럼프가 받은 첫 축하전화 중 하나였다. 모디는 트럼프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은 리더십과 비전에 대한 미국 국민의 깊은 신뢰의 결과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대선 캠페인 중에도 트럼프는 모디와의 관계를 언급했다. 쿼드 정상회의 참석차 모디가 미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그는 “모디가 나를 보러 온다”고 농담하며 두 사람의 관계를 유세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유머를 넘어 트럼프가 모디와의 개인적 관계를 중요한 정치적 자산으로 여기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국가 우선주의와 거래의 정치는 닮은 꼴

트럼프와 모디는 개인적 배경에서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지만 정치적 스타일과 세계관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부유한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의 트럼프와 거리에서 차를 팔며 성장한 모디의 출발점은 분명히 달랐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기존의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아웃사이더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바로 이 기존 정치 엘리트를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하며 대중의 강력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트럼프는 워싱턴 정치권을 “늪(swamp)” “딥스테이트(deep state)”라고 부르며 이를 말끔히 정리하겠다고 선언했고, 모디 역시 “델리의 거실 정치(drawing-room caucus)”를 청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반(反)엘리트적 메시지는 대중의 분노와 불만을 동원해 새로운 정치동력을 창출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두 사람의 국가 우선주의적인 메시지 역시 자국의 국민들에게 강력한 반향을 일으켰다.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는 쇠퇴한 제조업과 이민 문제로 불만을 가진 미국인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모디의 ‘선진 인도(Viksit Bharat)’ 비전 역시 인도의 힌두민족주의적 정체성을 부각시키며 국민적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한편 ‘잘살고 싶은’ 계층의 열망을 에너지로 전환시켜 투표라는 정치행위로 연결시켰다.

국제무대에서 두 지도자의 거래 중심적 외교 스타일도 비슷하다. 트럼프는 동맹국들에게 비용부담을 요구하며 모두가 공정하게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토(NATO) 회원국들이 방위비 분담금을 더 많이 부담하지 않을 경우 ‘탈퇴’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모디는 남아시아 지역협력연합(SAARC)이 중국의 개입과 민주적인 운영 방식으로 인해 인도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판단되자 2014년 집권 첫해 정상회의에 참석한 이후로 10년간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양국 관계에서도 거래적 리더십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트럼프는 인도의 높은 관세가 불공정하다며 모디를 “관세왕(tariff king)”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2018년 3월 인도의 대미수출에서 2.3%를 차지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2019년 6월 1975년부터 인도에 부여해온 일반특혜관세제도(Generalized System of Preferences, GSP) 지위도 박탈했다. 이로써 추가적으로 12%에 달하는 대미 수출품의 관세 혜택이 사라졌다. IT기술자에 대한 전문직 단기취업(H1B)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것도 타격이 컸다. H1B 비자 소지자 72.3%가 인도인이다. 인도는 IT 수출 수익의 80%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인도도 미국산 아몬드 호두 등 28개 품목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세계무역기구(WTO)에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부과의 부당함을 고발했다.

인도의 전략적 중요성 높아질 것

다시 만나는 트럼프와 모디가 미국-인도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갈까? 확실한 것은 중국을 핵심적인 위협으로 규정한 트럼프 2기에서 인도는 보다 중요한 파트너로 부상하고 안보협력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로써 인도는 전략적 중요성을 높이게 되겠지만 한편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데 따른 부담도 커질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인도 국내정치나 외교노선에 관여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은 분명히 호재가 될 것이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분야는 경제다. 트럼프는 선거 캠페인 동안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20%의 보편관세를 부과하고, 중국 제품에는 60~100%에 이르는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미국의 6번째 무역적자 대상국인 인도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의약품, 기계 및 전자제품, 섬유 및 의류, 농산물 및 가공식품 등 주요 인도 수출품은 미국 시장에서 추가적인 무역장벽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인도가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의 중심 국가로 떠오를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모디는 이를 활용해 인도를 글로벌 제조업 허브로 전환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가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생산능력을 확대한다면 글로벌 공급망에서 인도의 비중이 증가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질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와 모디의 강력한 개인적 유대는 향후 양국 관계의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두 지도자는 서로를 강력한 협상 상대로 인정하며 거래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안보 경제 기술 분야에서 협력과 갈등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들은 남다른 신뢰와 치열한 거래를 통해 상호이익을 추구하며 국제질서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두명의 색다른 지도자가 앞으로 국제사회에 미칠 영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