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의 인도 톺아보기

트럼프와 관세전쟁에서도 윈-윈할 방법은 있다

2025-03-27 13:00:02 게재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정신은 나의 ‘인디아 퍼스트(India First)’ 신념과 일치하고 그렇기에 우리는 잘 통한다.” 이달 16일 렉스 프리드먼(Lex Fridman) 팟캐스트에 출연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이 발언은 양국 정상 간의 독특한 캐릭터와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리더 간의 친밀함이 국가 간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법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방의 날(Liberation Day)’로 명명한 상호관세의 날, 4월 2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미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들도 동일한 관세를 지불해야 하며, 이는 매우 큰 규모가 될 것”이라는 트럼프의 선언이 시행되는 날이다. 미국의 6번째 무역흑자국인 인도 역시 주요 타깃으로 지목됐다. 모디 총리가 2월 백악관을 찾고 양국 간 각별한 관계가 재확인되었지만 미국의 관세 압박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관세전쟁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의 수입관세가 미국 기업에 불공정하다고 수차례 비판해왔고 최근에도 인도가 보복관세 대상에서 면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인도는 미국과의 무역에서 456억달러에 달하는 흑자를 기록 중이다. 특히 100%를 넘는 자동차 수입관세는 트럼프가 결코 묵과하지 않을 사안이다. 따라서 4월 2일부터 인도가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사실상 확정적이다.

미국의 조치가 발효되면 인도의 대미 수출 660억달러 중 약 87%가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인도정부는 상호관세로 진주 광물성연료 기계류 보일러 전기장비 등 주요 대미 수출 품목에 대해 6%에서 10% 수준의 관세 인상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품목들은 인도의 대미 수출 중 절반을 차지한다. 특히 110억달러 규모의 제약 및 자동차 수출은 미국시장 의존도가 각각 31%와 18%로 높기 때문에 상호관세로 인해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농업과 섬유산업 자동차부품 IT서비스 부문 역시 협상테이블 위에 올려질 가능성이 높다. 연간 70억에서 최대 89억달러의 수출 손실과 함께, 인도 GDP가 최대 0.5%p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인도는 세부 품목별로 미국과 협상안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 5~30%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 미국산 수입품 중 최대 55%까지 관세인하를 검토 중이며 이 가운데 230억달러 이상 규모의 제품에 대해선 무관세 또는 최저세율 적용도 논의되고 있다. 자동차 관세도 점진적으로 인하할 전망이다.

식품 부문은 가장 민감하다. 현재 30%에서 60% 수준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 육류 옥수수 밀 유제품 등은 협상대상에서 제외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몬드 피스타치오 오트밀 퀴노아 등에 대해서는 관세를 인하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관세전쟁을 계기로 두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기회를 잡고 있다.

첫째, 미국과의 거래 방식을 ‘무역협정’이라는 제도화된 틀로 전환시켰다는 점이다. 지난 2월 백악관 회담에서 모디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까지 양자 무역협정(BTA)을 체결하기로 합의했고 2030년까지 양국 간 무역 규모를 5000억달러로 확대하는 ‘미션 500(Mission 500)’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이와 동시에 인도는 무역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에도 나섰다. 할리데이비슨 등 고급 오토바이의 관세를 50%에서 30%로, 버번 위스키의 관세를 150%에서 100%로 낮췄고 미국산 에너지 수입과 방위 장비 구매도 확대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대응이며 인도는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국의 자국 내 투자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 카드는 트럼프에게도 불리하지 않은 거래다. 무역협정은 트럼프가 2020년 인도 방문 당시 원했던 것이다. 트럼프는 “모디가 나보다 강한 협상가”라는 말을 남기고 빈손으로 인도를 떠났었다. 이번에 트럼프는 관세 협박으로 인도가 버티던 무역협정 협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을 광고할 것이다. 관세 압박 전략이 인도를 협상 테이블에 앉히고 미국에 유리한 협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홍보를 할 수 있으니 트럼프식 관세 협상술의 성공 사례로 포장되기에 충분하다.

관세전쟁, 인도내 개혁 촉매제 될 수도

둘째, 관세전쟁이 인도 내 개혁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인도의 무역가중 평균 수입 관세율은 12%로, 미국(2.2%), 중국(3%), 일본(1.7%)보다 훨씬 높다. 높은 관세는 글로벌 가치사슬에 의존하는 기업들의 비용을 높이고 소비자에게는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보호무역의 대표적인 옹호자였던 피유시 고얄 상공부장관조차 지난주 “보호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갖고 용기있게 세계와 경쟁할 준비를 하라”고 인도 수출업자들에게 당부했다.

이미 인도 국내에서도 보호무역의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돼왔다. 모디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난 10년간 보호주의 정책이 강화되었지만 인도의 경제성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14년 출범한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은 제조업 비중을 GDP의 25%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15~17%에 머무르고 있다. 고용창출 효과도 미미했고, 외국인 투자는 제조업보다는 서비스 산업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인도 언론은 이제 이 정책의 실적을 재점검하고, 정책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관세 부과가 인도 개혁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친분은 친분이고 협상은 협상일 뿐

트럼프의 관세 공세와 이에 대한 인도의 대응은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무역 전쟁이라 해도 외교적 해법은 가능하다. 인도가 일부 품목에 대한 관세를 자발적으로 인하하고 협상장을 무역협정이라는 제도적 틀로 옮긴 것은 미국의 압박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었다.

이는 트럼프가 2020년 인도 방문 당시 원했던 무역협정 실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게다가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의도치 않게 인도에 구조 개혁의 동인을 제공할 수도 있다. 외환보유고가 바닥나 인도가 대대적인 개혁·개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1991년과 같은 전기로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트럼프와의 개인적 친분이 있다 해도 그것이 양국간 경제 협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사실이다. 친분은 친분이고협상은 협상이다. 트럼프의 계속되는 관세 공세 속에서 모디 총리가 한 말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

그간 트럼프의 협상방식을 관찰해 보면 국가 지도자에 대한 호감이 곧 정책적 특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본과 인도 모두 이를 체감했다. 이는 트럼프의 외교 스타일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다. 러시아 북한 정상에 대한 트럼프의 긍정적 수사가 양보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암시한다.

셋째, 인도가 관세를 낮추고 보다 투명한 경영환경을 구축할 경우 인도 시장의 매력은 한층 높아질 것이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흐름 속에서 중국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유력 후보로 자리잡을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의 상호관세 압박은 인도에게 오히려 기회의 문을 열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인도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게는 경계와 준비가 필요하다. 관세인하의 반대 급부로 미국의 투자가 인도에서 확대되고 나아가 인도의 경영환경이 개선된다면 이는 한국 기업에게는 한층 치열한 경쟁 환경이 열릴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역시 지켜야 할 것은 단호히 지키되 양보할 수 있는 사안은 전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기준과 원칙을 세워야 한다. 더 이상 WTO 체제가 우리를 보호하는 우산이 되지 못하는 시대다. 관세 전쟁의 시대 결국 살아남는 국가는 거센 외풍 속에서도 중심을 지킬 수 있는 나라일 것이다.

세종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