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거부’ 의대생, 집단유급 기로
24·25학번 유급시 내년 ‘트리플링’ 우려 … 의료계·정부간 물밑 접촉 움직임
의협, 20일 최대 1만명 참가 의사총궐기대회 … “출구 전략 필요” 목소리도
제적 위기에 의대생 전원이 복학했지만 집단 수업거부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대학은 수업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을 유급 처분하겠다는 입장이라 학생들과 갈등이 다시 격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의대생·전공의와 정부가 빠른 시간 내에 접점을 찾아 내년도 의대 정원(모집인원)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며 사실상 중재에 나서 그 결과에 관심이 모인다.
14일 각 대학에 따르면 연세·성균관·가톨릭·울산·고려·경희대 의대생과 아주대 의대 신입생은 수업거부 방식을 통해 ‘등록(복학) 후 투쟁’하기로 입장을 정했다.
특히 연세·성균관·가톨릭·울산·고려대 의대 학생대표는 지난 9일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아직 책임있는 답변을 듣지 못했고 답변하겠다는 약속조차 듣지 못했다”며 “투쟁을 지속한다”고 밝혔다.
경희대 의대 학생회는 최근 투쟁지속의사 투표를 거쳐 투쟁 방향을 ‘수강신청 보류’에서 ‘수업거부’로 전환했다. 아주대 25학번은 9일 ‘수강신청을 포기하고 수업 일체를 거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신입생들도 수업거부 움직임 = 의대생들의 집단 수업거부 움직임에 학교측은 학칙대로 엄정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교육부도 지난해와 같은 학사유연화는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고려대는 지난 10일 본과 3·4학년 110여명에 대한 유급 처분을 결정했다. 연세대도 오는 15일 유급예정통보를 받은 본과 4학년생 일부를 최종 유급 처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대학들도 수업 불참자에 대한 유급 처분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특히 순천향대는 무단결석이 1개월을 초과하는 경우 학칙에 의해 제적된다고 안내했다.
학교마다 학칙이 다소 다르긴 하나 수업일수의 1/4 이상 결석하면 F학점 처리하고 유급 처분한다. 유급이 최소 2회에서 많게는 4회 누적되면 제적될 수 있다.
지난해 휴학을 미승인하고 이미 유급 처리한 학교도 있어 이번에 또다시 유급되면 2회 누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상당수 학교는 계절학기를 통한 학점 이수 기회를 열어놓고 있지만 학생들이 투쟁 차원에서 수업거부에 참여 중이라면 이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자칫 전원 복귀로 기대가 커졌던 교육 정상화가 다시 물거품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우려스런 부분은 24·25학번이 대거 유급될 경우 새로 들어올 26학번까지 3개 학년이 겹치는 ‘트리플링’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교육계와 의료계 모두 이 경우 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르면 이번주 중 모집정원 결정 = 수업거부가 계속되면서 아직까지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도 오리무중이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달 말까지 의대생 ‘전원 복귀’ 시 모집인원을 증원 전인 3058명으로 되돌린다고 발표했다. 이때 전원의 의미는 정상적인 수업이 가능한 수준이며 복귀는 단순한 등록·복학 신청이 아니라 수업 참여를 포괄한다.
의료계는 정부가 조속히 내년 의대 모집인원을 3058명으로 확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총장은 학생들이 전원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3058명으로 확정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교육부에 전달했다.
정부는 4월 첫째 주 내년 의대 모집인원을 결정할 계획이었으나 아직 구체적인 일정을 잡지 않았다.
교육부 안팎에서는 이번 주 초까지 수업 참여율을 지켜본 뒤 이르면 주말 전 내년 의대 모집인원 조정안을 발표할 것으로 전망한다.
◆‘의협 중재자 역할’ 기대 커져 = 이런 가운데 교육계와 의료계에서는 의협의 사실상 중재자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앞서 의협은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정부와 정치권에 논의의 장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면서 대화를 공식 요청한 바 있다.
지난 10일에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김택우 의협 회장이 만나 의정 갈등 해소를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해 2월 의대 정원 확대로 의정 갈등이 불거진 후 처음으로 3자 회동이 이뤄지면서 의정 대화의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이들은 배석자 없이 2시간가량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회동 후 정부 관계자가 “의대 모집인원이나 전공의 복귀 대책 등 세부 사항을 논의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지만 물밑 접촉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의협은 13일 대선기획본부를 출범했다.
이날 정경호 전라북도의사회 회장과 함께 공동 본부장에 선임된 민복기 대구광역시의사회 회장은 “의정 갈등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에서 4월 중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특히 “의대생·전공의와 정부가 빠른 시간 내에 접점을 찾아 내년도 의대 정원(모집인원)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내후년 의대 정원에 대해서는 “우리(의료계)가 교육 가능한 숫자의 범위를 정해놓고 국회에서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의대생·사직 전공의는 강경 = 의협은 대선기획본부 출범과 동시에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열어 의개특위 해체와 의대 정원 조정 등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일선 의료현장은 일방적·비상식적 정책 추진의 결과로 황폐해졌으며 의학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은 학습권을 침해받고 있다”며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 추진 방식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의개특위 해체 △의대생·전공의에 대한 정부의 공식 사과 △교육 불가능 의대의 입학정원 조정 △정부·국회·의료계 논의 테이블 마련 등 의협의 기존 주장을 재차 요구했다.
의협은 오는 20일 약 5000~1만명이 참가하는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어진 비공개 회의에서는 궐기대회와 이후 투쟁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의대생·사직 전공의 대표들은 선배 의사들에게 강경 투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의대생 복귀와 함께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정부의 빠른 자세 변화를 요청하기 위해 휴진, 파업 등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여러 의견을 듣는 자리였고 결의한 것은 없다”면서 “20일 집회 참여에는 뜻을 같이했고, 집회 전이라도 정부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면 반응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