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한반도 지정학과 트럼프 관세

2025-04-15 13:00:04 게재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20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관세(25%)를 한국에 부과했다. 이외에도 한국의 대미수출 전초기지에 해당하는 베트남 태국 인도와 같은 국가들에 높은 관세를 부과한 결과 한국경제가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높은 관세 부과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우리보다 많은 대미무역 흑자를 누리고 있는 일본이나 유럽연합(EU)과 비교해도 그 비율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8.15해방 이후 특히 1960년대 중반 이후 한국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이는 강대국 경쟁 측면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중요성과 관련이 있었다. 한국의 지도자들이 이 같은 사실을 적절히 이용한 결과였다.

반대로 생각하면 트럼프가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를 한국에 부과한 것은 미국 입장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한반도는 미국 중국 소련 일본이란 4강의 이익이 교차하는 지구상 유일 지역이다. 이들 국가는 한반도에 대한 모든 영향력이 자국의 적성국으로 넘어가는 경우 자국 안보가 심각한 악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2차세계대전 직후 미군이 한반도로 진입한 것은 물론이고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것은 한반도에 대한 모든 영향력을 자국의 적성국인 소련에 넘겨줄 수 없을 것이란 인식 때문이었다.

한반도 지정학적 중요성이 경제성장에 기여

이 같은 지정학적인 특성으로 한반도가 38선 분단과 6.25전쟁이란 비극을 겪었다. 그러나 70여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한국이 오늘날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강대국 경쟁 측면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이란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보여주는 많은 사례가 있다.

브레즌스키(Gregg Brazinsky)의 책 ‘한국의 국가건설(Nation Building in South Korea)’에 따르면 1960년대 초반 한국의 국민소득은 북한의 1/3수준이었다. 당시 미국은 한국이 소련의 영향권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우려해 한국경제 발전을 염원했다. 미국이 박정희 장군의 군사쿠데타를 지원했던 것은 박정희가 한국경제를 발전시킬 의지와 능력을 구비한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비밀 유출된 위키리크스 자료를 보면 미국은 2000년대 중반 한미 FTA 체결을 염원했다. 당시 미국이 이것의 체결을 한국정부에 강력히 요구했는데, 이는 한국이 중국의 영향권으로 넘어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밀러(Chris Miller)가 저술한 '반도체 전쟁(Chip War)'란 제목의 책을 보면 1980년대 말경부터 미국은 한국의 반도체 개발을 적극 지원했다. 그 이유 또한 미국 안보 측면에서의 한국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한국이 미국의 가상 적국인 중국이 아니고 미국 주도 세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중요성을 고려해 미국은 한국을 배려했으며 이 같은 사실을 역대 정부가 적절히 이용했던 것이다.

오늘날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벌이는 주요 이유는 미국의 산업생산력을 부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미국에 대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지구상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이 같은 측면에서 상당히 많이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가 한국에 그처럼 높은 관세를 부과한 것은 북한 핵무장 등의 이유로 한국의 대미 의존도가 상당히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의 미국이 이처럼 생각하게 된 주요 이유에 한국인 가운데 이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상호협상 통해 적절한 타협점 찾아야

그런데 이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핵위협을 포함한 북한의 모든 위협을 독자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미중경쟁 격화로 과거 어느 때보다도 한국의 도움이 절대적인 것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한국에 비교적 높은 관세를 부과했는데 이는 한국에게는 물론이고 미국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상호협상을 통해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권영근 국방개혁연구소 소장 한국국방연구원 전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