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긴장이 완화되면서 글로벌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미 국채와 인공지능(AI) 관련 주식을 동시에 사들이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쟁 국면에서 이어졌던 ‘달러 강세·위험회피’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블룸버그 8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세계 주요 투자기관들은 최근 글로벌 자산 급락 국면이 지나갔다고 보고 채권과 기술주 비중을 확대하는 대신 달러는 줄이고 있다.
영국 자산운용사 슈로더의 켈리 우드 매니저는 단기 미 국채를 적극 매수하고 있으며, 자산운용사 주피터 역시 달러 매도와 함께 단기 국채 매입을 검토 중이다. 투자회사 프랭클린템플턴의 채권 책임자 앤드루 카노비는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4% 초반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주식 시장에서는 AI와 방위 산업 중심의 매수세가 두드러진다. 프랑스 자산운용사 아문디의 아멜리 데랑뷔르는 최근 미국 주식을 꾸준히 사들였으며, 올스프링 글로벌 인베스트먼트는 에너지 가격 충격에 덜 영향을 받는 기술·방산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데랑뷔르는 “우리는 이미 ‘타코(TACO)’ 상황에 대비해 포지션을 잡고 있었다”며 “특히 지난주 매도 국면에서 점진적으로 주식 비중을 늘렸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과 이란 간 2주간 휴전 합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유가가 급락하면서 에너지 위기 우려가 완화됐고, 이에 따라 미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실제 시장에서는 채권 가격이 오르고 달러는 약세를 보였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약 5bp 하락한 4.23%를 기록했다.
다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주피터자산운용의 투자매니저 마크 내시는 “이란과 미국 휴전이라는 긍정적인 소식이 있지만 아직 완전히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다”라며 “합의가 확정됐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헤지펀드들도 여전히 포지션을 크게 줄인 상태다. 투자은행 JP모건에 따르면 최근 헤지펀드들은 매수 포지션 축소와 공매도 청산을 동시에 진행하는 ‘디그로싱(de-grossing)’ 과정을 거쳤으며, 현재 시장 노출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편 일부 자금은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일본 자산운용사 아셋매니지먼트원의 펀드매니저 다나카 히카루는 변동성 국면에서 중국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처로 부상했다며 중국 채권 보유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시장은 전쟁 중심의 단기 대응에서 벗어나 새로운 투자 전략을 모색하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평가다. 대형 자금이 국채와 AI라는 ‘안정성과 성장’을 동시에 겨냥한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향후 자산시장 흐름의 핵심 축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