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1945년 여름' 무대에 서다

"위안부 공부하면서 강사와 학생 모두 울었죠"

2015-08-25 17:19:55 게재

서울창의센터 뮤지컬

초·중·고생 77명 참가

광복 70주년 기념행사

교사: " 나미꼬상! 나미꼬상! 성현이와 효정이가 방금 조선말로 대화하는 걸 들었죠?"

효정: "대한민국 사람이 조선말 쓰는 게 뭐가 잘못됐다고...."

성현: "죄송합니다. 효정이는 잘못한 게 없어요.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군인: "지금부터 너희는 서로 뺨을 때리며 '다시는 조선말을 쓰지 않겠습니다' 라고 큰소리로 외친다 알겠나?"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창작 뮤지컬 '그날, 1945 여름'이 22일 서울창의인성교육센터(창의센터) 하늘공연장에서 열렸다.

이날 공연에는 초중고학생 20개교 77명이 출연하고, 각 분야 전문가 10여명이 연출과 음악, 대본, 타악, 분장을 맡아 지도했다. 뮤지컬은 총 5막으로 구성했다.

일제시대 초등학생이던 효정이가 세월이 흐른 뒤 손주에게 광복절 태극기 계양을 시키면서 뮤지컬은 1910년 상황으로 돌아간다.

1막은 1910년 여름, 평화로운 가족과 시골마을 풍경에서 시작한다. 효정이를 좋아하는 성현이가 붉은 댕기 끈을 건네주자 수줍게 받는 효정이. 두 사람은 시골에서 알콩달콩 우정과 사랑의 싹을 틔워간다. 천둥소리와 함께 무대에 일본군이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긴장과 불안감에 휩싸인다. "일본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네?" "우리나라가 없어진다는데…맞아?"

2막 시작은 1919년. 효정이 부모님과 언니가 일본군의 삼엄한 감시속에서 일을 한다. 효정이 동생은 배가 고프다며 칭얼댄다. 성현이가 효정이에게 다가가 옥수수 한 개를 불쑥 건네고 자리를 뜬다.

이때 출연진 전원이 "해도해도 끝도 없는 일들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하나/ 우리 나라를 다시 찾아야 해/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라며 노래를 부른다.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순 없을까, 우리나라, 우리조국 다시 찾을 순 없나"

2막 2장은 만세운동을 준비하는 사람들 이야기로 꾸몄다. 일본군 눈을 피해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행진을 한다. 선두에 선 효정이 언니는 목이 터져라 '일제는 물러가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효정이 언니는 일본군에 붙잡혀 감옥에 갇힌다. 고문으로 인해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언니를 면회하는 효정이와 부모님이 흐느껴 운다.

3막1장은 1930년대 일장기가 걸린 교실에서 수업하는 장면.

"미나리는 마시따데, 고사리는 더마시시따데, 다마네기와 스메끼리데스까?" 깔깔대는 아이들과 "일본말 지겹다. 집에서도 일본말 쓰라는데 싫다" 는 학생들이 뒤엉킨 교실.

한국말로 주고받는 대화를 엿들은 '나미꼬'가 선생한테 일러바친다. 군인들이 등장하고 서로 뺨을 후려치라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성현이와 효정이는 서로 때리다가 울면서 지쳐 쓰러진다.

3막 2장은 성현이가 효정에게 작별인사를 건넨다. "우리말도 못 쓰는 학교를 다니느니 일본으로 돈 벌러 가겠다"며 눈물을 훔치며 돌아선다.

4막은 1940년 일본의 만행이 절정에 다다른 상황. 동네 주민들이 모여 흉흉한 소문에 대해 쑤군댄다. 심 씨네 둘째 딸이 간밤에 사라졌다는 것. 일본군이 전쟁터로 내몰린 일본군인들 성 노리개로 우리나라 어린 소녀들을 잡아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일본군에 쫓기는 효정이와 순애. 순애는 일본군에 잡혀 끌려가고 효정이는 담 뒤에 숨어서 울다 퇴장한다. 이어 효정이는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나이 많은 아저씨와 결혼한다. 하늘에서 요란한 천둥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일본이 전쟁에서 졌답니다. 우리는 자유가 됐습니다."

5막은 광복 후 상황이 펼쳐진다. 할머니가 된 효정이 군중 속을 걸어가며 평범한 일상의 모습들을 바라본다. 효정이 희망가를 부르자 아이들이 몰려나와 함께 따라 부른다. 이어 광복 이후 한국현대사를 샌드아트로 표현한다. 한국전쟁, 5.18민주화운동, 서울올림픽, 2002년 월드컵 등을 샌드아트 배경으로 나오며 판소리가 울려 퍼진다.

전 출연진이 무대 앞으로 나와 '행복의 나라로'를 부르자 250여명의 관객들이 함께 따라 부르며 뮤지컬은 막을 내린다.

뮤지컬 '그날, 1945년 여름'은 서울교육청 서울창의인성교육센터가 두 달여에 걸쳐 만든 작품이다. 방학특화 프로그램인 뮤지컬, 비보이댄스, 타악, 샌드아트에 참여한 학생들이 융합한 작품이어서 더 큰 의미를 담았다. 1945년 광복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하고 국가에 대한 사랑과 소중함을 더했다. 뮤지컬을 준비하는 동안 학생들은 우리 역사에 대해 고민하고 미래역사를 설계해, 작품에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학부모와 교사, 동네 주민들이 뮤지컬 공연을 보고 아낌없는 성원과 박수를 보냈다.

뮤지컬을 지도한 강사들의 이력도 화려했다. 안무를 맡은 이엘리 강사는 실제 위안부 공연을 한 배우 겸 전문 강사다. 연출을 맡은 이정선 강사는 영화 유신의 추억, 나의 독재자, 연평해전 등과 연극 알리바이 등 10여편에 출연한 베테랑이다. 대본을 쓴 오재석 강사는 독립영화 감독과 방송작가활동을 하고 있다.

이정선 서울창의인성센터 전임강사는 "아이들의 열정에 감동을 받았다. 아이들의 맑은 영혼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았다고 생각한다. 연습시간이 하루 2시간 정도로 부족했지만 최선을 다했다"며 "연습하면서 역사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위안부가 뭐죠?'라는 질문과 답을 하면서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연습이 끝난 후에도 소품을 만들거나 자신들의 생각을 대본에 넣어보기도 했다. 효정이 역을 맡은 김민지(6학년)양은 "연극을 하면서 나라의 소중함을 알게돼 기쁘다"며 "연극활동과 역사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학예수준을 넘은 수준급 뮤지컬 공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교육청 교육혁신과 최재광 장학관은 "아이들의 생각과 노래, 이야기를 고스란히 뮤지컬 대본에 담아 설계한 작품"이라며 "창의센터에서 진행하는 우수한 컨텐츠와 수준 높은 작품을 일선학교에 보급하고 이를 수업에 녹아들게 해 문화예술 창작 활동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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