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상균 전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장
“국민연금 보험료율 세대별 차등화, 공동체정신 손상 우려”
“계속 훼손되면 사회보험이 생명보험처럼 돼”
“대통령이 야당입장 많이 고려하면 합의 가능”
“젊은 세대, 기금 수익률 제고에 민감하게 반응”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장을 맡았던 김상균 서울대 명예교수(사진)는 윤석열 대통령이 제시한 국민연금 보험료의 ‘세대별 차등화’에 대해 “공동체 정신을 손상시킬 수 있다”며 우려했다.
김 교수는 29일 내일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자동안정장치와 세대별 차등화에 대해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은 “다수가 부정적이었다”면서 자동안정장치의 경우엔 우리나라 연금이 아직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설명했다.
또 세대별 차등화 방안에 대해서는 “사회보험의 가장 중요한 정신이 공동체 정신”이라며 “세대별로 차등을 하면 공동체 정신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는 사회보험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민간업체의 생명보험과 같이 전락할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차등은 안 하는 게 좋다”고 했다.
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서는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함께 우수 인력을 채용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21대 국회 연금개혁특위에서 여야 합의에 실패한 것은 포괄적인 개혁을 하려는 대통령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소득대체율을 강조하는 야당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각종 제도의 도입 시기를 조정하는 등 야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동안정장치나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화를 제시했다.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 두 가지 대안에 대해 다수가 긍정적이지 못했다. 자동안정장치는 외국의 경험도 많다. 가장 중요한 게 도입하는 시기다. 연금제도가 성숙이 됐느냐가 중요한 거다. 제도가 성숙하기 전에 도입되면 부작용이 나타나고 또 미숙한 상태에서 오히려 제도를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 연금이 성숙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판단에 따라 찬성과 반대가 갈린 것이다.
■젊은 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세대별 차등화 방안은 어떠한가.
국민연금의 재정 방식은 사회보험 방식이다. 사회보험 방식이란 민간 생명보험회사가 운영하는 생명보험 원리와 국가가 조세로 연금을 주는 조세 방식, 둘 중에 중간을 택한 것이다.
그 중간을 택할 때 가장 중요한 정신이 공동체 정신이다. 소득이 많은 사람이 소득이 적은 사람을 도와주고 나이가 적은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을 도와주는 공동체 정신 말이다.
만약에 이번 같이 세대별로 차등을 하게 되면 그와 같은 공동체 정신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 그러면 국민연금이 기초하고 있는 사회보험 원리가 훼손된다는 얘기다.
■한 가정으로 따지면 여러 세대가 같이 있어서 계층별 차등화가 실제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가족 단위도 마찬가지고 개인 단위도 마찬가지다. 개인으로 보면 국민연금 제도라는 것은 일생 주기를 전부 다 커버하는 것이다. 젊을 때도 있고 중년 때도 있고 노년 때도 있다. 다들 경험을 하게 된다. 어느 한 시기에만 자기 것을 주장하면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어떻게 보면 침해하는 것이다. 이런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공동체 정신, 세대 간에 돕고 소득차이에도 돕고, 여성 남성간에도 도와야 하는 거다. 우리가 차별을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요소들을 두리뭉실하게 묶어서 하는 게 사회보험이다.
■가장 중요한 원칙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건가.
이번에 ‘세대간 차이’에 밀리면 다음엔 소득간 차이로 밀리게 되고 그러면서 국민연금은 생명보험과 다른 게 없게 된다. 현재는 소득간 차이가 있다. 소득이 높은 사람이 많이 내고 덜 받게 돼 있다. 그런 정신이 앞으로 없어지게 된다는 거다. 이런 식으로 자꾸 조금씩 훼손되면 계속 훼손되면서 사회보험이 아닌 생명보험같이 돼 버린다. 그런 우려 때문에 가능하면 차등을 안 하는 게 좋다는 얘기다.
■기금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는데.
이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상당히 높았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거기에 민감했다. 그렇기 때문에 수익률을 높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강조를 많이 해야 되고 또 체크를 자주 해야 된다. 그걸 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몇 개 있다. 독립성이 있어야 되고 기금운용본부의 기금을 운영하는 인력인 펀드매니저가 세계적인 일류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봉급도 높여야 된다. 하지만 봉급을 높이는데 현재는 여러 가지 제한이 있다. 국가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일정 한도 이상은 줘서는 안 된다고 돼 있는 조항들, 기금운용본부가 지금보다도 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자율권 행사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빨리 제거 시켜줘야 된다. 기금수익률을 1%p만 늘려도 2~3년 고갈시점이 늦어진다.
■정부가 다음 달에 의견을 내면 국회가 논의해야 할 텐데 합의가 가능할까.
21대 국회에서 한번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대통령이 야당의 입장을 많이 고려하는 쪽으로 문을 열어주면 합의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막상 여야간 협상에 들어가게 되면 구체적인 수치도 나오고 그럴 것이다. 논란이 많은 자동조절장치나 세대간 차등화 조치 등도 도입하는 시기가 중요하다. 시기를 조정하는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10년 뒤에 한다든지 아니면 지금부터 언제까지는 어떻게 한다든지 (조건부로) 시기 조정을 하면 된다. 합의점에 도달하기 위한 협상의 가능성은 많이 열려 있다.
■야당 입장은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 아닌가.
야당하고 시민단체들의 가장 큰 우려는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의 현재 소득 대체율인데 이를 고려해 어떤 조치들의 시행 시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1대 국회에서는 왜 연금개혁에 합의하는 데 실패했나.
대통령 생각에 모수, 숫자만 얘기하는 게 너무 단순하다고 본 것 같다. 소득대체율(이나 보험료율)하고 그 숫자 몇 개만 가지고 하지 말고 국민연금이라는 게 이게 100년 대계인데 좀 깊은 사고를 해서 법 개정할 때 조금 더 깊숙한 면을 좀 다루었으면 좋지 않겠는가하는 그런 뜻이었던 것 같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