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근로감독 수준미달, 불법경영 면죄부”

2025-01-15 13:00:01 게재

산안법 위반 41곳 적발, 9200만원 과태료 등 부과 … 고용부 “배송기사 근로자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잇단 과로사로 물의를 빚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에 대한 근로감독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이에 대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는 “수준 미달의 근로감독”이라며 “고용부가 쿠팡에 면죄부를 준 결과”라고 비판했다.

고용부는 지난해 쿠팡의 물류배송 자회사 CLS에 대해 실시한 △산업안전보건 △일용근로자에 대한 ‘가짜 3.3계약’ 등 기초노동질서 △배송기사 불법파견 감독 등 3개 분야의 종합 근로감독 결과를 이날 발표했다. 가짜 3.3계약은 4대 보험료 부담 및 퇴직금 지급 등을 피하기 위해 근로자를 3.3% 사업소득세를 내는 개인사업자로 위장 등록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해 5월 “개처럼 뛰고 있다”는 말을 남기고 숨진 고 정슬기씨의 사망으로 촉발된 특수고용직 쿠팡 배송기사(퀵플렉서)들의 불법파견 논란에 대해 고용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CLS 대리점과 위·수탁계약을 맺고 일하는 배송기사에 대해 고용부가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씨와 CLS 직원 간 SNS(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공개돼 CLS측이 배송기사들에게 직접적 지휘·명령을 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배송기사들이 사실상 근로자임에도 사업자로 위장됐다는 불법파견 의혹이 제기됐다.

고용부는 지난해 10월 21일부터 11월 27일까지 CLS 본사, 11개 배송캠프 및 34개 택배 영업점을 대상으로 배송기사들의 근로자성 여부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83회 현장조사와 137명의 대면조사를 진행했고 배송기사 1245명의 지난 1년간 카카오톡을 분석했다.

고용부는 배송기사들이 △화물차량을 소유하고 관리하며 차량유지비를 스스로 부담하는 점 △아르바이트 혹은 가족 등과 함께 배송이 가능한 점 △본인 재량으로 입차시간을 조정할 수 있고 배송을 완료하면 회사 복귀 등 없이 바로 업무가 종료되는 점 △고정된 기본급이 없고 배송 건당 수수료를 지급받는 점 등을 근거로 근기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카카오톡 분석에서 배송확인이 90%, 배송독려가 9.6%, 기타가 0.4%였다”며 “배송독려나 지원요청 등이 일부 업무지시의 성격을 띨 수 있으나 화물배송 준수 독려는 화물운송 계약을 고지하는 것이라 근로자성 인정 기준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씨의 카톡 또한 1년 치를 봤는데 옆 구역 지원요청에 관해 대화하면서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는 표현이 나온 것”이라며 “옆 구역 지원요청은 당연히 거절할 수 있고 정씨도 거절한 적이 있다”고 했다.

CLS 본사, 서브허브, 배송캠프, 택배영업점 등 총 82개소를 대상으로 시행된 산업안전보건 분야 기획감독에서는 절반인 41개소에서 산업안전보건법령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53건에 대해서는 9200만원 상당의 과태료 부과 처분을 내렸다. 4건에 대해서는 사법처리, 34건에 대해서는 시정조치했다. 기간 내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보고하지 않아 2100만원, 배송기사에 대해 최초 노무 제공 시 교육하지 않아 1514만원, 야간작업 종사자들에게 특수건강진단을 하지 않아 540만원의 과태료가 각각 부과됐다.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의 CLS 택배영업점 및 물류센터 위탁업체 사회보험 미가입 여부 전수조사에 대한 후속조치로 진행된 CLS 및 기타 택배 물류센터에 대한 기초노동질서 감독도 발표했다. 가짜 3.3계약과 관련해서는 CLS 위탁업체 3개소에서 근로계약 미체결 사실이 적발됐고 위탁업체 4곳과 다른 택배사 물류업체 2개소에서 일용근로자 360여명에 대해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3.3%)를 납부하고 있는 실태를 확인했다. 1억5000만원의 임금체불과 근로조건 서면 명시 의무 위반 등 총 136건의 근로기준법 위반도 적발됐다.

최태호 고용부 산재예방감독정책관은 “CLS가 법 위반사항 해소 및 요구사항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도록 지도하고 이행 상황을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쿠팡에서 장시간 노동과 정신적 긴장의 원인은 고용불안을 일으켜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강요하는 쿠팡의 시스템 때문인데 고용부는 이번 감독에서 과로와 고용불안을 유발하는 클렌징(배송구역 회수제도)이나 대리점 재계약 기준인 서비스수준협약(SLA) 평가지표에 대해 감독하지 않았다”며 “과로사 산재 기준인 주 60시간(야간 30% 시간 할증)을 준용해 노동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단에 대해서도 “과로사 원인규명과 해법 마련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과 다름없다”며 “택배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들보다 법·제도적 보장이 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점을 분명히 해 고용부가 자신의 책임을 덜어내는 꼴이 됐다”고 강조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성명에서 “고용부의 근로감독 결과 어디에서도 배송기사들의 야간노동 시간과 강도를 조사했다는 내용이 없다”며 “미흡한 수준을 넘어 사실상 불법 경영에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도 “고용부가 택배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 했다면 간접고용과 특수고용이라는 고용형태의 한계와 별개로 최대한 실효적인 근로감독을 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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