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살리는 도서관

180억원 투자한 인제기적의도서관, 인구 늘리는 효과 가져와

2025-01-09 13:00:04 게재

지역 콘텐츠·뉴미디어로 가득한 도서관에서 온가족 시간 보내 … 주민 자부심 느끼고 외지 방문객 찾아와 지역에서 소비

인구 3만2000명의 인제군에 2023년 6월 개관 이래 지난해 12월 31일까지 16만6000여명이 다녀간 문화시설이 있다. 인제기적의도서관이다. 건립부터 개관준비과정까지 180억원을 투자하고 대지면적 포함 3000여평에 달하는 인제기적의도서관은 인제군민들은 물론 외지 방문객들까지 사로잡았다. 6일 인제기적의도서관을 방문해 공간 및 콘텐츠의 매력과 인제군이 도서관에 투자한 이유를 알아봤다.

인제기적의도서관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원형 형태로 벽이 없이 설계된 구조와 3층 높이 층고에 탁 트인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천장 전체적으로 천창을 배치해 햇살이 좋을 때면 자연 채광이 쏟아져 들어온다. 구름이 지나가고 석양이 지는 풍경을 천창으로 만끽할 수 있고 햇빛 각도에 따라 그림자가 달라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이와 함께 천장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친환경적으로 에너지를 활용하고 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니 그늘 효과도 느낄 수 있다.

인제기적의도서관 전경.

◆미래 세대들이 새로운 기술 접하는 공간 = 1층을 중심으로 아래 지하층에 계단식 좌석이 마련된 ‘열린 극장’이, 위 2층에 ‘열린 계단’이 연결돼 있어 누구나 앉아서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지하층 계단식 좌석 앞쪽에는 무대가 마련돼 있어 크고 작은 강연과 공연이 열린다. 인제기적의도서관은 지역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유명 강연자들을 초청해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하고 가족 대상 마술극 인형극 등을 열어 호응이 높은데 이때 열린 극장과 ‘사랑채’ 공간을 주로 활용한다.

2층의 열린 계단에는 콘센트와 함께 보다 개인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좌석들을 배치했다. 이용자들은 개방감을 느끼며 원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1층과 2층에는 벽면을 따라 크고 작은 공간들을 활용해 장서와 뉴미디어콘텐츠들을 배치했다. 이 공간들에서는 도서관이 위치한 인제의 지역적 문화적 특성을 콘텐츠화해 선보인다. 종합자료실 옆 ‘인제니아’에서는 4대의 미디어 기기를 통해 교과서에 실린 인제의 문화 자원과 생태 자원을 주제로 제작된 82종의 영상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 영상에 정보무늬(QR코드)를 제작해 원하는 이용자들은 누구나 전문적인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인제의 자원을 콘텐츠로 제작해 보여주는 ‘인제니아’ 공간.

‘미디어아트’ 공간에서는 ‘설악: 자부심’ ‘자작: 속삭임’ ‘명화: 그리움’을 주제로 한 영상들을 만날 수 있다. 인제를 감싸고 있는 설악산과 자작나무숲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영상들이다. 미디어아트 공간을 나서면 있는 미디어월에서는 이용자가 지나갈 때를 감지해 인제의 자연을 주제로 한 영상을 보여준다.

뉴미디어콘텐츠들은 ‘예술갤러리’에서도 만날 수 있다. 명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영상과 함께 직접 조작하면서 명화들을 만날 수 있는 ‘XR 갤러리’를 선보이고 있다. 또한, 어린이실 앞 미디어월에서도 버튼을 누르면 인제기적의도서관 주제인 ‘시간을 넘어 무한한 상상’을 담은 짧은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심민석 인제기적의도서관 관장은 “인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콘텐츠들을 보면서 주민들은 늘 가까이 있어 오히려 몰랐던 곳들을 다시 알게 되고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면서 “외지 방문객들은 영상들을 보면서 여행할 만한 또 다른 장소들을 알게 되기 때문에 지역 관광을 활성화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정보통신기술들을 활용해 콘텐츠들을 제공하고자 노력했는데 수도권에서는 다양한 기술들을 접할 수 있지만 지역의 경우, 공공기관에서 이런 기술들을 활용해야 미래 세대들이 새로운 기술들을 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제기적의도서관 내 ‘미디어아트’ 공간을 즐기는 가족의 모습.

◆‘청소년 준비단’과 함께 만든 동아리방 = 2층에는 6개의 동아리방이 있다. 각 방마다 음악 미술 등 주제가 있고 짙은 녹색 혹은 빨간색 파란색 등 그 방만의 주제 색깔로 내부를 조성했다. 또한 각 방의 한 면을 불투명한 유리벽으로 조성해 개방감을 더했다. 이곳은 예약제로 운영하지만 예약 여부를 방마다 문 앞에 표시해 놓아 예약이 돼 있지 않을 때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동아리방을 조성하기 위해 인제기적의도서관은 개관준비과정에서 ‘청소년 준비단’을 꾸려 의견을 들었다. 인제군 내 중학교 2학년 학생 10명으로 구성된 청소년 준비단은 1달에 2번씩 곧 문을 열 도서관에 모여 자신들이 원하는 공간은 무엇인지 토론했다. 인제기적의도서관은 이들의 의견에 따라 ‘백담’ ‘설악’ 등 동아리방의 이름을 지었고 그림을 그리기에 좋은 커다란 탁자를 둔 ‘미술 스튜디오’와 디지털 피아노가 설치된 ‘음악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청소년 준비단은 원하는 문구를 도서관 내 자신들이 원하는 공간에 새기는 작업도 진행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창작 문구나 책에서 읽은 인상적인 문구들을 자신의 이름, 날짜와 함께 도서관 곳곳에 남겼다. 예컨대, 종합자료실 앞에선 지수민 학생의 ‘학교에선 마음의 그릇을 빚고 도서관에선 그 그릇을 채운다’는 문구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인연이 된 학생들은 고등학교 1학년이 됐고 여전히 인제기적의도서관의 든든한 이용자로 남아 있다.

심 관장은 “청소년 시기는 학업에 바빠 도서관을 방문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도서관을 좀 더 방문할 수 있도록 의견을 반영한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고 효과가 있었는지 다행히 청소년들이 도서관을 많이 방문한다”면서 “나중에 학생들이 성장해 부모가 돼 도서관을 방문해 자신이 남긴 문구를 자녀와 함께 읽을 수도 있고 타지에서 생활하다가 고향을 찾아왔을 때 그 문구를 보면서 성장기를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자녀 2명과 함께 어린이실과 예술갤러리를 이용하는 추현욱씨를 만났다. 추씨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기 때문에 이곳을 학교처럼 생각하고 자주 온다”면서 “어린이 책들이 눈높이에 맞고 어린이실에 미끄럼틀이 있어 놀면서 책을 볼 수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골 마을에 살아서 이곳까지 오는 버스가 하루에 2대 있고 20여분 걸리지만 이곳만한 도서관이 없다”고 덧붙였다.

◆“주말에 공동화 현상 사라져” = 사실 인제기적의도서관은 인제군 인구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편이다. 인제군은 인구감소지역 89곳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관심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관심지역은 인구감소지역 전 단계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인제군은 수도권과 지역 간 불균형 심화와 인구감소로 인한 어려움을 타개하고 정주인구와 생활인구(일정 시간 및 일정 빈도로 해당 지역을 방문하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문화시설 건립을 고민했다. 이는 상당한 예산을 투자한 인제기적의도서관 건립으로 이어졌다.

인제기적의도서관에 따르면 이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다. 인제기적의도서관 건립 이후 이곳은 지역 주민들의 소통과 교류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시간이 나면 온 가족이 이곳을 방문해 저마다 원하는 대로 소설 만화책 등 책을 읽고 다양한 콘텐츠를 즐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다른 사람들과도 얘기를 나누고 모르는 내용을 서로 알려주기도 한다.

또한 외지에서 다양한 방문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전국사립학교행정실장협의회 150여명이 5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방문하는 등 전국에서 발걸음이 이어진다. 이들은 도서관만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인근 관광지를 둘러보고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며 소비한다. 인근 식당 ‘인제막국수’를 찾는 사람이 늘었을 정도다.

심 관장은 “주말이면 가족들이 인근 춘천 등으로 놀러가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곤 했는데 인제기적의도서관은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고 어우러질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면서 “아직까지 수치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인제기적의도서관이 위치한 인제읍의 인구는 증가하는 것으로 체감하고 있고 수도권에서 유학을 오는 산촌 유학 인구, 군인 가족이 함께 이사를 오는 사례 등이 늘어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제=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사진 이의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