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3천명 증원 첨단학과 선택 가이드

2025-01-08 13:00:02 게재

선배들이 말하는 첨단학과 … 대학마다 교육과정·혜택 달라 사전 확인 필수

2025학년 대입에서도 첨단학과 모집 인원이 늘었다. 첨단학과란 반도체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SW) 빅데이터 등 첨단 산업과 관련한 전공을 뜻한다. 코로나19를 전후해 관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인력 수요가 급증했다. 기업은 대학과 협의해 계약학과를 신설하고 정부도 관련 학과 모집 정원을 늘리도록 주문했다. 이에 따라 2024학년 대입에서 전년 대비 1829명을 증원한 데 이어 올해 수도권 12개 대학, 비수도권 10개 대학에서 총 1145명을 증원했다. 유망 분야인 만큼 선호도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신설 학과가 많고 학생 입장에선 일반 공학계열이나 컴퓨터 분야 모집 단위와의 차이를 파악하기 어려워 전공 탐색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가 적지 않다. 첨단학과 현황을 짚어보고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선배들에게 각양각색의 첨단학과 이야기를 들어봤다.

첨단학과는 2021학년부터 신·증설됐다. 특히 수도권 대학의 첨단학과 모집 인원 증가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다른 학과와 무관하게 순증할 수 있다 보니 선호도 높은 수도권 대학 인원이 늘어 자연계열 성향 대입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4년 새 첨단학과 신·증설 잇달아 = 특히 이번에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3개 대학의 선발인원이 184명 늘어 관심이 쏠린다. 서울대는 2024학년 첨단융합학부를 신설하며 218명을 증원한 데이어 올해 스마트팜 분야의 전문 인력 양성을 목표로 농업생명과학대학에 25명 정원의 스마트시스템과학과를 신설했다. 연세대는 종전의 인공지능학과와 컴퓨터과학과를 통합한 첨단컴퓨팅학부 정원을 전년(124명) 대비 25명 늘려 149명 모집한다. 35명 정원의 지능형반도체전공도 신설했다. 첨단학과 증원 인원만 60명이다.

고려대 역시 기존 전기전자공학부 정원을 26명 줄였지만 105명 정원의 인공지능학과를 신설했고 스마트보안학과 정원을 32명에서 52명으로 20명 증원, 총 99명을 더 뽑는다.

교육부는 2027년까지 대학의 첨단학과 순증 신청을 열어놓은 만큼 내년에도 선발 인원은 늘 수 있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 소장은 “첨단학과 지원 시 혜택은 물론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자신의 적성에 잘 맞는지 깊이 고민하라”고 강조했다.

첨단학과는 계약학과가 적지 않고 계약학과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장학 지원을 제공한다. 최근 졸업 후 취업 기준이 까다로워지거나 혜택을 줄이는 사례도 확인되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비슷해 보이지만 대학마다 주력 분야가 다르고 교육과정 또한 차이가 나는 만큼 홈페이지에서 학과 소개, 교육과정, 소개 영상 등을 확인한 후 지원해야 한다.

정제원 서울 숭의여고 교사는 “화학·물리·컴퓨터에 관심이 많은 이공계 학생의 선택지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첨단학과 교육 환경이나 사회적 수요가 충분히 확보되었는지는 확인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규모 커졌지만 상위권 합격선 높아 = 2024학년 첨단학과 경쟁률은 지역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수도권은 14.78:1로 전년(14.2:1)보다 소폭 상승했다. 반면 비수도권은 6.68:1로 2023학년보다 하락했다. 수도권은 학령인구 감소와 모집 인원 확대를 고려하면 실질적으론 상승 폭이 크다는 평가다.

특히 이번 정시에서 건국대를 비롯해 동국대 서강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수도권 주요 대학은 첨단학과 일부를 다군에 배치한 점이 눈에 띈다. 서울 주요 대학은 정시에서 주로 가·나군에서 학생을 선발해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다군에서 지원할 대학이 많지 않았다. 최근 선호도 높은 첨단학과 계약학과 자유전공학부 등을 다군으로 이동해 선발하면서 학생들의 선택지가 넓어진 상황이다.

정 교사는 “올해처럼 수능 난도가 낮아져 상위권과 중상위권의 점수 차가 적을 경우 합격선 변동을 크게 체감하지 못할 것”이라며 “다만 상위권 대학의 모집인원이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중위권 대학의 합격선이 낮아지는 효과는 일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첨단학과 재학생의 의견을 들어봤다.

●첨단학과에 지원한 이유는?

이민석 성균관대 지능형소프트웨어학과 1학년 : 초등학생 때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바둑 천재 이세돌을 4승 1패로 꺾는 모습을 지켜봤다. ‘컴퓨터가 사람을 이긴다고?’ 그날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뒤로 첨단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 성균관대 지능형소프트웨어학과는 교과전형에선 모집하지 않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지원했다. 종합전형은 과학인재전형과 학과모집전형이 있는데 일반고에서 높은 내신 등급을 확보해 학과모집전형으로 지원했다. 한양대 기계공학부도 합격했지만 삼성DX와 연계된 계약학과라는 점에 끌려 최종 선택했다. 관심이 있는 학과의 홍보 영상이나 홈페이지를 보면 선택에 도움이 된다.

정원석 서울대 첨단융합학부 1학년 : 종합전형인 일반전형으로 지원했다. 어릴 적부터 수·과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어서 자연스럽게 공대를 염두에 두고 공부했다. 화학을 깊이 공부하면서 약학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서울대 첨단융합학부 외에는 카이스트와 성균관대 약학과에 합격했다. 최종 선택까지 고민은 있었다. 주위 얘기보다는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생각했다. 4차 산업혁명의 중심이고 진출 분야가 넓다는 생각에 첨단융합학부를 최종 선택했다. 서울대 이공 계열 변화의 시작점이라는 점도 선택에 영향을 줬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우고 있나?

송지아 서강대 인공지능학과 2학년 : 1, 2학년 때는 기초적인 프로그래밍 언어와 수학, 여러 이론 및 알고리즘을 배운다. 3학년부터는 조금 더 심화해 딥러닝 머신러닝 등을 배우며 인공지능 기술을 여러 분야와 접목해 접해볼 수 있다. 서강대 인공지능학과는 계약학과는 아니지만 학·석사 연계 제도를 통해 계약학과의 일부 장점을 접목했다. 학사 3.5년, 석사 1.5년 과정으로 일부는 채용 연계형으로 LG전자 스마일게이트 틸론 등 세 곳의 회사와 대학원이 연계돼 있다. 2022년에 신설된 학과지만 기존 대학원에서 파생해 생겼기 때문에 선배가 없다는 신생학과의 단점도 딱히 없다.

홍규리 동국대 물리반도체과학부 3학년 : 1학년 땐 전공 교양, 미적분, 일반물리학, 실험 과목을 충실히 공부한다. 2학년부터는 전공 기초 과목을 듣는데 반도체전공을 선택했다. 반도체·기초전자회로·디지털 수업이 주가 되고 3학년부터는 더욱 심화해 소자, 공정·아날로그회로 수업을 이수한다. 동국대는 복수전공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지만 반도체 단일 전공을 택했다. 3년 동안 공부하다 보니 반도체 회로설계 분야가 가장 재밌고 반도체 관련해서 공부하고 알아가야 할 부분이 무궁무진해서 한 우물만 깊게 파는 중이다. 참고로 물리반도체과학부로 입학했지만 2024학년부터는 물리학과와 시스템반도체학부로 각각 선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기억에 남는 수업이나 학교생활과 앞으로의 진로 계획은?

정원석 서울대 첨단융합학부 1학년 : ‘인간관계의 심리학’ 수업과 프로게이머 구마유시(이민혁) 선수의 서울대 초청 강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삶의 질을 높이는 학문이라 첨단과학 분야에 흥미를 가진 만큼 단순히 첨단 기술을 넘어 인간 내면과 윤리적인 면도 고려할 수 있는 수업과 강의였다.

앞으로의 진로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지금은 반도체 관련 분야를 생각하고 있지만 최첨단 공학 기술을 난치병·불치병 치료와 접목한 디지털헬스케어전공이나 기후변화 문제를 다양한 접근으로 연구하는 지속가능에너지전공에도 관심이 있다.

이주학 국민대 인공지능학부 1학년 : 1학년 때는 기초적이고 다양한 코딩 언어와 기초 수학을 배우며 인공지능학의 기반을 다졌다. 그중 자연어 처리 공부가 가장 재밌다. 챗GPT만 보더라도 우리 일상생활과 가장 밀접한 인공지능 분야라고 생각한다. 아직 1학년이라서 명확하진 않지만 2학년 때 배울 딥러닝, AIX 등의 심화 과목에 대한 기대도 크다. 일단 대학원에 진학해 자연어 처리 기술을 더 깊이 연구·개발하고 싶다.

●첨단학과에 관심 있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홍규리 동국대 물리반도체과학부 3학년 : 흥미를 갖고 시작했지만 전공 공부가 힘들어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맞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정말 세상은 과학으로 이루어졌구나’라고 실감했다. ‘아날로그 신호를 분석하기 위해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고 디지털신호를 원하는 목적에 맞게 처리한 뒤 다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게끔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해준다.’ 이 한 문장을 이해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적성에 맞는다면 다른 전공에 비해 진출 분야가 많고 장학금과 지원이 많은 첨단학과는 블루오션이라고 확신한다.

송지아 서강대 인공지능학과 2학년 : 첨단과학 분야는 계속 발전하고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는 만큼 개인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그만큼 공부량이 많다. 여유로운 대학 생활을 기대했다면 입학 후 고될 것이다. 특히 서강대 인공지능학과는 정원도 적어 고등학교 생활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상대를 이겨야만 하는 경쟁과는 결이 다르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동기들이 모여 같이 성장하는 색다른 기쁨을 알게 될 것이다.

김기수 기자·이도연 내일교육 리포터 ldy@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