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산재전문가 74% “산재보험 선보장 제도 도입해야”

2025-01-10 13:00:47 게재

한국노총 실태조사

산재처리 지연 문제 심각 51.4%

적용 시급한 질병 ‘근골격계질환’

산업재해 처리지연으로 산재노동자의 신속한 치료와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문제에 대해 노동자와 산재 전문가·관계자 10명 중 7명은 ‘산재보험 선보장’ 제도가 필요하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노총은 산재노동자와 노동단체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한국공인노무사회 안전보건단체 등 4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산재보험 선보장 제도 도입 필요성 실태조사’를 7일 발표했다.

실태조사는 지난해 10월 18일부터 11월 4일까지 이뤄졌다. 응답자 분포는 노동자 43.9%, 변호사·공인노무사 18.0%, 산재보험 관련 업무 종사자 13.8%, 기타(산재노동자 단체 등) 7.2%, 의사 5.1% 등이었다.

산재보험 선보장 제도는 재해조사 기간 후에도 산재판정 결론이 나지 않으면 산재보험 보상액을 노동자에게 우선 지급하는 방식이다.

응답자의 51.4%가 ‘업무상 질병에 대한 산재처리 지연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산재보험 관련 업무 종사자는 89.8%, 변호사·공인노무사는 88.3%, 의사는 75.8%가 산재처리 지연 문제를 인식했다.

◆업무상 질병 산재처리기간 7개월 이상 소요 = 한국노총은 “실제로 업무상 질병 산재 처리기간은 매년 증가하고 있고 2023년 평균 214.5일로 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가 산재승인 여부 확인까지 약 7개월 이상 소요됐다”며 “장기간 소요되고 있는 질병 처리기간으로 인해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들은 산재승인 여부 확인까지 제대로 된 치료와 생계 보상 없이 극심한 신체적·정신적·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응답자의 73.6%는 ‘산재보험 선보장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선보장 제도 적용이 시급한 업무상 질병으로는 ‘근골격계 질병’(47.0%)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뇌심혈관계 질병(22.7%), 직업성 암(15.9%) 순이었다.

근골격계 질병 산재신청 건수는 2017년 5128건 대비 2023년 1만4448건으로 282% 급증했다.

업무상 재해는 사고와 질병으로 나뉘고 업무상 질병은 판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한 사람은 일단 건강보험을 적용받는다. 산재 판정을 받아도 보험정산 전까지는 개인이 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선보장의 적절한 시점을 묻는 질문엔 40.2%가 ‘산재 신청과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산재 신청 후 30일 초과한 경우(26.2%), 90일 초과한 경우(12.1%) 순이었다.

◆61.5% ‘전체 업무상 재해에 적용돼야’ = 선보장 적용 범위를 두고는 61.5%가 업무상 사고와 질병, 출퇴근 재해 등 ‘전체 업무상 재해’가 적용돼야 한다고 답했다. 업무상 사고와 업무상 질병에만 적용해야 한다는 답은 각각 16.8%, 11.0%였다. 선보상 제도의 산재보험급여 적용 범위로는 74.1%가 ‘요양급여와 휴업급여에 모두 적용돼야 한다’고 했다.

요양급여는 노동자가 3일 이내에 치유될 수 없는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에 걸렸을 경우 치료될 때까지 산재보험 의료기관에서 요양을 하도록 하는 산재보상 급여다. 휴업급여는 업무상 이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노동자가 요양으로 취업하지 못한 기간에 대해 지급하는 보험급여다.

선보상 신청 주체로는 산재 신청인이 적용을 원할 경우(47.4%), 산재의료기관 주치의가 판단(29%), 근로복지공단(공단) 자문의사가 판단(23.6%) 순으로 꼽았다. 다만 조사에 참여한 의사들 중 51.7%가 제도 적용 여부를 ‘공단 자문의사가 판단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국노총은 “최종적으로 산재가 불승인될 경우 급여를 환수 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의학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산재보험 선보장 후 산재가 최종 불승인됐을 때 보험급여를 환수하는 방안으로는 ‘부분면책모델’이 38.6%로 가장 높았다. 이어 ‘사후정산모델(전액 반환)’ 31.3%, ‘완전면책모델’ 30.1%였다.

한국노총은 “이미 지급된 보험급여를 지급할 경제적 능력이 없거나 국가가 정하는 최저생계 수준에 미달돼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에 한해서는 사회보험 차원에서 기지급된 보험급여에 대한 환수를 면책 또는 일부만 행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라고 분석했다.

◆‘근골격계질병 추정의 원칙’ 개선 시급 = 현행 산재보험 제도에서 가장 개선이 시급한 제도로는 ‘근골격계질병 추정의 원칙’ 제도가 31.3%로 가장 높았다. 이어 업무관련성 특별진찰제도(25.2%), 업무상 질병 역학조사 제도(16.6%) 순이었다.

한국노총은 “근골격계질병 추정의 원칙 적용 건수 저조, 적용 직종 범위 협소, 엄격한 적용기준 등으로 실효성 문제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노총은 산재보험 선보장 제도 도입 방안으로 △업무상 질병에 대해서만 적용 △산재 처리기간이 90일을 초과할 경우에만 △요양급여 및 휴업급여 우선 보장과 휴업급여는 상한액 설정 등을 제시했다.

한국노총은 “산재보험 선보장 제도는 단순한 재정적 지원을 넘어 노동자의 생명과 생계를 지키는 중요한 사회적 안전망”이라며 “정부는 선보장 제도 도입을 통해 산재보험의 본질적 역할을 강화하고 노동자 보호를 위한 신속한 제도 도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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