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꺼짐 막으려면 굴토기준 낮춰야

2024-09-27 13:00:14 게재

현행 지하 10m 이상 공사만 사전 심의

공사장 주변 도로함몰은 ‘인재’ 가능성

갈수록 늘어나는 땅꺼짐 사고를 예방하려면 지하 공사 관련 규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5년 용산역 앞 신축공사장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두남녀가 땅밑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유투브 조선일보 채널 화면 갈무리

27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서울시는 2016년부터 ‘건축공사장 굴토심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하 2층 또는 지하 10m 이상 공사를 실시할 경우 안전성에 대한 심의를 사전에 받아야 한다는 규정으로 해당 조례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하는 땅꺼짐 사고는 지표면에서 깊지 않은 곳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잦다. 현 제도로는 지하로 10m 이상 들어가지 않는 공사는 사전 심의 없이 착공이 가능한데 이것만 가지고선 향후 예상되는 땅꺼짐 사고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게다가 굴착심의제도는 서울시와 일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안전 대책이다. 지하안전법에 따르면 지하 10m 이상 공사일 경우 안전평가를 거치도록 되어 있지만 공사 전 심의까지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서울시 굴토심의 제도는 대형 사고를 거치면서 부활했다. 2015년 설 연휴 때 용산역 앞 아파트 공사장에 인접한 보행도로가 꺼지면서 버스에서 막 내린 두사람이 갑자기 땅속으로 사라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사고 장면을 본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서울시 조사 결과 두가지 결함이 확인됐다. 하나는 흙막이시설에 사고 전부터 결함이 발생해 지하수와 함께 흙 입자들이 계속 빠져 나가고 있음에도 제대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다른 하나는 건축허가나 공사 착공 전에 서울시와 자치구에서 전문가들이 지하 굴착공사의 안전성을 심의하던 굴토심의 제도가 조례에서 삭제돼 있었다. 2005년 12월 규제개혁 차원에서 은근슬쩍 조례가 개정된 것이다.

당시 사고 조사에 참여했던 감리업계 관계자는 “해당 공사는 대로변에서 지하 9층 깊이까지 땅을 파는 공사였는데 사전에 안전을 살필 장치도 없이 허가가 나고 공사 중엔 토질을 관리할 기술자가 현장에 한사람도 없었다”며 “도로를 오가는 시민의 안전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시는 사고 직후 바로 굴토심의를 되살려 우선 시행하고 서둘러 조례를 개정해 깊이 10m 이상, 지하 2층 이상 굴착 공사는 착공 전 굴토심의를 받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도시안전 분야 전문가는 “당시 굴토심의를 복구한 서울시 조치는 합당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도시의 노후화가 한참 더 진행됨에 따라 새로운 안전 기준이 필요해졌다”면서 “굴토심의 대상을 10m 이내로 강화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전대책, 규제완화 우선해야 = 굴토심의 기준 강화에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공사비 급등 등으로 수익성 악화 위기에 직면한 건설업계의 반발이 적지 않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안전평가에 굴토심의까지 받으려면 최소 3개월, 6개월 시간이 소요된다”면서 “가뜩이나 인건비 자재비 등 총 공사비가 오른 상황에서 심의로 인한 공사기간 연장은 건축업계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땅꺼짐 사고 발생 가능성이 해마다 커지는 상황을 감안하면 안전대책을 우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다. 땅꺼짐 사고는 절반 가까이 노후 하수관에서 발생한다. 해마다 약 2500억~3000억원을 들여 하수관 교체에 나서지만 개보수 총량은 노후화 속도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의 지하에는 30년 넘은 노후 하수관이 약 6017㎞에 달하며 이를 교체하는 것은 물론 기타 시설물 때문에 각종 공사가 끊임없이 벌어진다. 재난안전 분야 관계자는 “노후 하수관이 땅꺼짐 주원인으로 분석된 만큼 하수관 교체 및 하수관에 영향을 끼치는 공사 전체에 대한 세심한 관리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이제형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