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중한데 시간만 끄는 정치권, ‘국가신용도’ 장담 못한다
내란 와중에 미 연준 속도조절 발표에 환율 금융위기 수준 급등
경제는 하루가 급한데 대통령은 지연작전·여당은 당권대권 싸움
환율이 2009년 금융위기 수준인 1450원대를 돌파했다. 내란사태 와중에 미국 연준(FED) 발 금리충격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조만간 외환보유고 4000억달러선이 깨지고 국가신용등급 강등 위기까지 초래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발 빠른 계엄해제와 탄핵소추안 가결로 정치불확실성이 일단 걷히며 안도하던 우리 경제가 ‘환율 급습’을 받은 모양새다. 특히 탄핵안 가결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여권이 지연작전을 펴면서 불확실성을 벗어나던 경제가 다시 안갯속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 위급해진 경제상황 = 20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50원으로 출발했다. 이른바 ‘파월 쇼크’ 당일인 19일에는 장중 한때 1455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3월 이후 15년7개월 만에 최고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하 지연 전망과 글로벌 달러 강세가 겹치면서 원화 급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달러인덱스는 0.04% 상승한 108.17을 나타냈다. 이는 2022년 11월 10일 110.99를 기록한 이후 약 2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가 지속 상승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를 넘어 추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넘어설 수 있다고 예측했다.
주식시장에서도 해외투자자와 기관이 빠지면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일 코스피 지수는 전일보다 1.1% 내린 2409.17으로 출발했다. 지수는 이날 0.26% 하락으로 출발한 뒤 장 초반부터 낙폭을 키우고 있다.
코스닥 지수도 이틀째 하락세다. 9시 현재 코스닥 지수는 0.5% 내린 680.97을 기록하고 있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360억원과 300억원 순매도다.
비상계엄 발령 직후 투자자들이 대거 한국시장에서 빠져나간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환율급등, 경제피해 심각 = 환율 급등을 막지 못하면 경제와 서민이 감당해야 피해는 막대하다. 전문가들은 경제위기 수준으로 급등한 환율이 대내 최대 위험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환율이 급등하면 원화 약세로 소비와 투자, 고용이 쪼그라들어 내수부진을 심화시킨다.
전날 대한상의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서 8대 기업연구소장도 고환율을 당면한 최대 경제리스크로 꼽았다.
연구소장들은 “원화 약세는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민간소비 냉각, 기업 생산 비용 증가에 따른 투자와 고용 위축 등 내수 경제 부진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짚었다. 원화 약세로 수출 개선 효과가 있겠지만 이 역시 제한적이라고 내다봤다. 나라 밖 상황이 우호적이지 않아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관세 부과를 예고하고 미중 사이의 갈등의 골도 깊어져 한국 경제가 감당해야 할 대외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연구소장들은 “한국 경제 시스템이 정상 작동 중이라는 신뢰를 주지 못한다면 금융·외환시장 안정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정부·국회가 국정 운영 안정, 거시 지표 관리, 대외 신인도 회복에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또 “예정된 경제 정책을 흔들림 없이 진행하고 재정 조기 집행 등을 통한 경기 부양에 적극 나서며 당분간은 기업에 부담을 주는 규제의 신설·강화는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외환·재정 정책 더 선제적으로 = 일각에선 대외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용등급이 하락할 경우 국채 및 기업채의 발행 금리가 올라 이자비용 부담이 가중된다고 지적한다. 가령 국채 금리가 0.5%p 상승하면 연간 5조~10조원의 추가적인 이자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재부 2차관 출신 안도걸(광주 동남을)의원은 “환율급등으로 수입물가 상승과 함께 수출 제조기업의 원자재 원가 부담이 가중되면서 수익성 저하가 우려된다”며 “외화 채무가 많은 금융기관들은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부에 더 과감한 환율 안정 조치를 요구했다. 안 의원은 “국민연금이 해외자산을 매각하고 국내 자산을 매입하는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며 “국민연금과 한국은행 간 외환스와프 기한을 늘리고 발행한도를 현재 500억달러에서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동연 경기지사는 “특단의 비상한 조치가 필요하다. 재정, 금융, 통화, 산업, 기후위기 대응 등 모든 면에서 완전한 대반전을 이룰 것”을 제안했다. 그는 “최소 30조원 이상 재정을 미래 먹거리와 민생 경제에 투자해야 할 시기”라며 AI와 반도체, 바이오 헬스 등 미래 먹거리에 10조 원, 소상공인과 청년 일자리 등 민생 경제에 10조 원을 투입해야 하며, 별도로 ‘민생회복지원금’을 즉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가계·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내수진작을 위해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빅컷’ 수준인 0.5%p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