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시간 늘리기 개혁' 기업반발에 막혀
표준감사시간제 적용 방안
공인회계사회 후퇴 거듭
시간 줄이고, 단계적 유예
한국공인회계사회는 현재보다 최대 2배까지 감사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다가 기업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원안에서 후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한국공인회계사회(회장 최중경, 한공회)는 "표준감사시간제 제정안 마련을 위해 내달 11일 공청회를 열겠다"며 "기업을 규모(자산)와 상장여부, 업종 등의 특성을 고려해 6개 그룹으로 구별하고 표준감사시간의 산정방법과 시행방안을 그룹별로 달리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표준감사시간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현재보다 감사기간이 40~60% 가량 증가하는 내용의 초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50~100% 가량의 증가를 검토했던 원안보다 시간이 줄었다. 한공회는 "표준감사시간을 적용해도 선진국의 1/2 수준에 못 미쳐 감사시간이 아직은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자산규모 200억원 미만의 비상장회사들이 속한 6그룹(기업 규모 등에 따라 1~6그룹으로 구분)은 3년간 적용을 유예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표준감사시간제는 3년마다 감사환경 변화 등을 고려해 타당성 여부를 검토해야하기 때문에 3년 유예는 사실상 면제나 다름없다. 자산규모 500억원 이상 1000억원 미만 비상장회사(4그룹)와 자산규모 200억원 이상 500억원 미만의 비상장회사(5그룹)은 각각 1·2년간 적용 유예가 검토되고 있다.
박종성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감사시간은 다른 국가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며 "감사시간을 고려해 감사비용을 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감사비용을 정하고 감사를 하기 때문에 저가 수임을 하는 회계법인들은 감사시간을 늘릴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표준감사시간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인데 당초 취지에서 후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개정 외부감사법은 '한공회가 감사업무의 품질을 제고하고 투자자 등 이해관계인의 보호를 위해 감사인이 투입해야할 표준 감사시간을 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공회는 위원회를 구성해 논의를 벌였지만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기업들이 부담 증가를 이유로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한공회는 금융위원회와 검토를 끝내고 이번주 표준감사시간제 초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재계 단체들의 반발에 개혁안은 후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산업생태계가 이대로 가다가는 무너지겠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정부는 산업계의 애로사항을 제대로 경청했는지, 소통이 충분했는지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고 발언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경영이 어려워질수록 기업들이 재무제표를 왜곡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기 침체기로 들어서는 시기에 회계개혁의 후퇴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지난해 회계저널에 실린 '유가증권시장 부실기업의 발생액 이익조정 재고찰'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418개 상장기업 분석결과, 부실기업은 부실발생 2년 전과 1년 전에 이익을 상향 조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부실기업 지정을 피하기 위해 '재량적 발생액'을 이용해 이익을 상향 조정한다는 것이다. 회계에서 '발생액'은 당장 현금 입출이 없어도 거래 발생으로 앞으로 생길 이익과 손실을 당기에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표준감사시간심의위원회는 지난 10월부터 5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표준감사시간의 적용대상과 그룹별 표준감사시간 산정방법 등을 논의해 초안을 마련했다.
한공회는 내달 11일 오후 3시 서울 충정로 한공회 건물 5층에서 공청회를 열고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 사업년도의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부터 적용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