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투명성 높이는 것이 기업가치 높이는 가장 빠른 길”
김병환 금융위원장 “기업, 인적·물적 투자 확대해야”
외부감사 ‘기업부담’ 이유로 제도완화, 논란 불가피
31일 ‘회계의 날’ … 금융위, 회계정책 추진방향 밝혀
“기업들은 회계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긴 안목에서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임을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7회 회계의 날’ 기념식에서 회계투명성 제고를 위한 기업의 노력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기업 스스로 내부감사기구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회계정보가 정확하게 산출될 수 있는 견고한 내부회계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얻고 계속 성장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위한 인적·물적 투자를 확대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경쟁력을 갖춘 초기 기업들이 일정규모 이상 성장하거나, 기업공개(IPO)를 통해 주식시장에 상장하게 되면 회계투명성 확보에 대한 많은 법적책임이 생긴다”며 “투자자, 소비자, 거래처 등 이해관계자가 많아지고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기 때문이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회계투명성 확보를 소홀히 해 법적 제재를 받고 성장동력을 잃기도 한다”고 우려했다.
김 위원장은 기념식 직후 회계업계 간담회를 열고 정부가 추진 중인 ‘주요 회계정책 추진 방향 및 향후계획’을 밝혔다.
금융위는 회계·감사 관련 지배구조 우수기업에 대해 주기적 지정을 3년간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배구조 우수기업에 한해 주기적 지정 ‘면제’를 추진해왔지만 회계투명성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유예로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회계제도개혁의 핵심 제도 중 하나인 주기적 지정제 적용에 예외를 두게 됨으로써 회계개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와 논란이 일 수 있다. 금융위는 회계업계의 반발 등을 고려해 면제가 아닌 유예로 합의점을 찾았다.
김 위원장은 “주기적 지정유예 평가시 밸류업 우수기업에 가점을 부여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회계업계 우려가 없도록 밸류업 우수기업 선정시부터 지배구조를 충실히 고려하는 한편, 밸류업 우수기업 중에 회계·감사 관련 지배구조가 취약하거나 회계부정 우려가 큰 경우에 대해서는 가점대상에서 제외되도록 세부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회계부정 우려가 없는 회사 중에서 감사위원회의 독립적·전문적 구성과 효과적 운영, 내부회계관리의 효율성 등을 평가해 내년에 유예 대상 기업을 정할 예정이다.
◆표준감사시간제 적용 유예 연장 = 이와함께 금융위는 금감원, 한국공인회계사회 등과 표준감사시간 및 주기적 지정제에 따른 기업부담 완화를 위한 여러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표준감사시간과 관련해 기업의 노력이 표준감사시간 적용시 차감될 수 있도록 기준을 보완하는 한편, 중견·중소기업에 대해서는 부분적용을 내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표준감사시간은 감사인이 기업 감사와 관련해 투입해야 할 평균적 감사시간이다. 부분적용은 자산 2조원 미만 회사는 상장, 자산규모에 따라 산출된 표준감사시간의 일정비율만 적용하고 일정기간 이후부터는 적용률을 단계적으로 상향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당초 올해까지인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부분적용이 내년까지 연장된다. 또 자산 200억 미만 비상장사에 대해 표준감사시간제 적용을 올해까지 유예했던 것을 2027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김 위원장은 “대내외 경제여건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회계개혁으로 도입된 여러 제도들이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는지, 회계업계는 기업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 부담을 이유로 회계제도들을 완화하면서 회계투명성 약화에 대한 우려와 회계개혁 후퇴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제회계기준 IFRS18 도입 초기 ‘제재 감면’ = 국제회계기준인 IFRS18 도입을 앞두고 금융당국의 대응 방안도 밝혔다. 2027년 시행되는 IFRS18은 손익계산서에 손익을 영업, 투자, 재무 등 발생원천별로 분류해 표시하도록 하는 등 기업 재무제표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예정이다. 또 기업은 경영진이 투자자와 공개 소통하는 과정에서 재무제표에 없는 성과측정치를 활용하는 경우 이를 MPM(비회계기준 성과측정치)로 봐서 재무제표 주석에 공시하고 외부감사를 받아야 한다.
김 위원장은 “주석공시 의무화에 따른 기업들의 부담 완화를 위해 시행 초기에는 계도 중심으로 운영해 제도 안착에 주력하는 한편, IFRS18을 계기로 회사·경영진이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회사의 성과를 충실히 알리고 다양한 성과측정치가 개발·활용되는 자본시장 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다양한 인센티브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계도 중심 운영은 고의 중과실이 아닌 경우에는 감리에서 지적되더라도 제재를 감면해주겠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올해 안에 공개초안을 발표한 후 의견수렴을 거쳐 내년에 기준을 제정할 계획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회계업계는 “지속적인 품질관리 개선 노력을 보이는 중소형 회계법인에 대해 더 큰 규모의 지정대상회사를 감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등 회계법인 간 감사품질 경쟁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그간 다소 추상적으로 규정돼 감사인들의 예측가능성을 저해한다는 의견이 제기돼 온 ‘상장사 감사인 등록요건’에 대해서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해달라”고 요청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감사기법 도입 등 회계법인 차원의 감사품질 제고 노력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도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감사품질 경쟁을 촉진하고 회계법인의 감사품질 제고 노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