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몬드라곤 그룹을 꿈꾼다

2020-11-13 11:21:08 게재

모범업체정신 잇는 '해피브릿지협동조합'

"잘되는 주식회사가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이탈리아에서도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바뀌는 일은 있지만 다들 망해가는 기업이거나 망한 기업이었다." 협동조합의 권위자인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쟈마니 스테파노 교수가 '해피브릿지협동조합'(해피브릿지)에 대한 평가다. 해피브릿지는 15년간 탄탄하게 성장하며 평가가치가 장부가격의 20배에 달하던 주식회사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해피브릿지의 역사는 199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노동운동 농민운동 카톨릭청년운동을 하며 사회변화를 꿈꾸던 사람들이 '사람중심의 기업'을 만들기 위해 뭉친 것이다.

이구승(51) 해피브릿지 이사장은 대학시절 전태일평전을 읽고 한국의 노동현실에 관심을 가지며 카톨릭청년운동에 참여한 인물이다. 이후 식품유통사업을 했다.

해피브릿지 계열사인 해피브릿지로지스 양수일(51) 대표도 14살부터 봉제일을 시작해 청계피복노조에서 일한 전태일의 후신이다. 1997년 노조위원장의 모범업체 필요성 제안으로 동료 6명과 봉제공장 '까치밥'을 설립해 노조 재정을 후원했다.

이들은 보리식품영농조합·공장을 설립하고 전국 식품유통망을 구축해나갔다. 하지만 2003년 광우병사태가 발생하면서 유통매출이 반토막났다. 제품생산도 심각해졌다.

위기를 외식사업으로 돌파했다. 인천의 명물 '화평동세수대야'를 '화평동왕냉면'으로 브랜드화해 프랜차이즈사업에 뛰어들었다. 100여개 매장으로 확대됐다. 기업의 미션도 건강한 제품을 만드는 '참식'과 직원과 사람을 중심에 놓는 '대안기업'으로 모아졌다. 자신감이 생기자 2006년 '국수나무'를 런칭했다. 대성공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국적으로 매장이 연 80~100개씩 늘었다.

하지만 사업이 성장하고 직원수가 늘어나면서 문제점도 나타났다. 이 이사장은 "사람보다는 돈과 경영을 중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고민이 깊어졌다"면서 "설립이념인 '사람중심의 기업'과 형식을 일치시킬 필요성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해외연수단을 조직해 유럽지역의 노동자협동조합을 탐방했다. 사람중심의 기업을 하려면 주식회사보다 협동조합이 적합한 조직형식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마침 2011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됐다. 2012년 12월 26일, 14명의 주주들은 만장일치로 노동자협동조합인 해피브릿지로 전환을 결의했다. 노동자협동조합은 조합원이 공동으로 수유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한다. 소유권이 민주적인 방식(1인1표)으로 조합원에게 배분된다. 소유권이 자본이나 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주식회사나 공기업과 다르다.

해피브릿지는 자주적·자립적·자치적인 조합활동을 통해 조합원들을 위한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리고 조합원들의 경제적 부의 확대 및 노동조건을 증진하며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때문에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행복', 자본과 대비되는 '사람'. 경쟁이 아닌 '협동', 독점보다는 '상생'을 핵심가치로 내걸었다.

해피브릿지의 주요사업은 외식·식품제조·물류유통·협동조합네트워크 분야다. 현재 5개 계열사, 4개 물류센터에서 200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소유와 노동을 함께하는 조합원은 94명이다. 3년 이상 근속, 교육과정 수료, 1000만원 출자금 등을 납부하면 계열사 직원도 조합원이 된다. 매장 537곳을 가진 국수나무 등 외식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연 5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2015년엔 중국 7개 지역에 과수면이라는 브랜드로 진출했다.

최근 해피브릿지는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지난해 구매물류사업을 독자화해 해피브릿지로지스를 설립했다. 식품종합기업을 지향하며 집단급식, 가정식 등의 분야로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현재 행복중심생활협동조합과 동대문구 공공급식센터를 공동운영 중이다.

2014년 해피브릿지는 세계 최대 노동자협동조합인 스페인 몬드라곤그룹의 몬드라곤대학과 함께 HBM협동조합연구소(소장 송인창, 초대 이사장)를 설립했다.

몬드라곤 연수, MTA(Mondragon Team Academy)·TFI(Team Food Incubating) 과정 등을 대학 등과 협업해 협동조합형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 협동조합 비즈니스 개발을 위한 컨설팅, 연구 및 출판사업도 진행한다.

양 대표는 “대안기업으로 협동조합이 성공적으로 확대된다면 노동자의 삶이 나아지고 노동의 가치를 중심에 둔 기업도 늘어날 것”이라며 “전태일 모범업체정신에 대한 실험과 도전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피브리지 내부에는 다양한 견해 차이가 있다. 조합원의 참여를 강조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의사결정의 질과 속도를 담보하기 위해 위임체계에 방점을 두는 간접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견해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해피브릿지를 발전시키는 불쏘시개다.

이 이사장은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협동조합이 위기에 강하고 환경변화에 보다 안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해피브릿지 구성원들은 2025년 매출 100억원 이상하는 10개 협동조합으로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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