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보다 돌봄 강화

"돌봄 어렵다고 안락사 허용은 주객전도"

2022-08-26 10:54:17 게재

입원-가정 호스피스 확대 등 돌봄환경 우선 … "가족·지인과 함께 하는 웰다잉문화 확산도"

코로나19는 임종을 앞둔 사람들과 가족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 재난을 겪으면서 말기 환자의 돌봄 현장은 매우 상황이 나빠졌다. 말기 암환자를 돌보는 입원형 호스피스기관 88곳 가운데 21곳이 코로나19전담병원으로 지정돼 휴업했다. 나머지 기관들도 방역을 이유로 가족들의 면회가 금지되어 환자들은 외롭고 힘들게 생을 마감했다.
아직 이런 상황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의사조력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조력 자살을 허용하자는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발의돼 논란이다. 당연 발의한 측에서는 그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노인 자살율 독보적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 처지에서 우려스럽다는 지적들이 쏟아진다.
부족한 생애말기 돌봄 상황을 살펴보고 전문가들이 밝힌 대안들을 소개한다.



지난 6월 15일 안규백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동대문구갑)이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발의안은 현행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경우 치료 효과 없이 임종과정만을 연장하는 목적의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임종과정은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고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로 국한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안 의원은 발의안에서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80% 가량의 성인들이 안락사에 찬성한다는 응답을 하는 등 '존엄한 죽음'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고, 임종과정에 있지 않은 환자라 하더라도 근원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는 경우 본인의 의사로 자신의 삶을 종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며 "말기환자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담당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신이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를 도입함으로써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증진하려는 것임"을 밝혔다.

하지만 우려와 이견이 많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25일 "입법을 통해 사회적 논의을 진행하는 것도 의미있지만, 너무 성급한 입법을 통해 사회적 논쟁을 붙이는 것은 자칫 노인자살율 세계 1위인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할 때 역효과를 불러 일으킬 우려도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질 높은 생애 말기 돌봄 등 양질의 호스피스와 연명의료 관련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의사조력자살 남용이나 악용 우려가 큰 점을 고려하면 의사조력자살 입법화보다는 안정적이고 양질의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환경을 갖춰 나가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강정훈 국립경상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24일 "말기환자에게 여러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생애말기를 소중히 다뤄야 한다. 노력을 다하지 않고 의사조력사 등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가족에게 부담주지 않는 죽음 선호 = 우리 한국인의 '좋은 죽음'에 대한 인식에는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90.6%) '신체적 정신적 고통 없는 죽음'(90.5%) '스스로 정리하는 임종'(89.0%) '가족과 함께 임종을 맞이하는 것'(86.9%) 등으로 나타났다.(노인실태조사, 보건복지부, 2020년)

24일 김대균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기획이사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을 △집에서 가족과 함께 맞는 죽음 △고통없는 편안한 죽음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 △의미 있는 행복한 삶 이후 죽음 등으로 설명했다.

김 이사에 따르면 현재 '집에서 가족과 함께 맞는 죽음'은 적게 이뤄지고 있다. 2019년 기준 의료기관에서 77.1%가 사망했다. 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 가운데 1위다. 집에서 13.8% 사망했다.

의료기관에서의 임종 현실은 질 높은 돌봄과 배려가 결여됐다고 평가된다. 호스피스 병동이 설치된 의료기관 외에는 임종실 운영 사례가 거의 없다. 별도의 임종돌봄 수가도 없어 인력투입도 곤란하다. 의료진들도 임종환자 돌봄에 대한 교육이나 수련의 경험이 부족해 힘들어 한다. 한 개인의 인생이 마무리되는 중요한 순간이지만 개개인의 상황을 구분하지 못하고 패턴화된 의료서비스만 있다.

이런 상황에도 가정에서 임종을 맞지 못하는 이유로 재택의료의 부재, 임종돌봄에 불편한 주거환경, 간병부담, 임종 돌봄에 대한 불안감, 환자는 병원에서 돌보는 것이 옳다는 사회적 인식 등이 거론된다. 해결방안으로는 간병부담을 사회적으로 나누는 것, 가정방문진료 활성화, 생애 마지막시기까지 돌볼 수 있는 지역사회주치의제도 실시 등이 강조된다.

◆의료기관에서 가장 많이 사망 = 우리나라는 말기환자의 생애말기를 위한 서비스로 '호스피스·완화의료제도'를 운영한다. 입원형-가정형-자문형이 있다. 입원형은 말기암환자 대상으로 병원 내 호스피스병동에서 호스피스 전담인력과 조직을 두고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정형은 말기질환자를 대상으로 호스피스전문기관 전문인력이 말기환자와 가족의 가정에서 통증관리와 전문 상담 등을 제공한다. 자문형은 말기질환자를 대상으로 자문형 호스피스팀이 일반병동이나 외래에서 담당의사 자문이나 환자와 가족에게 호스피스 상담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 88곳 중 21곳이 휴업했다. 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질적인 인력 및 재정문제로 기관폐쇄를 하는 곳이 생기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서울지역은 3∼4주, 인천 경기지역은 1∼3주 대기해야 한다. 대기 중에 임종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서울의 경우 입원이 가능한 호스피스전문기관은 15개 260병상에 불과하다. 2020년 서울 지역에서 호스피스 대상질환의 사망자 1만4377명 가운데 3186명(22%)만이 호스피스 돌봄을 받았다. 2022년 1월 7개 기관 105개 병상만 운영됐으며 그 중 간병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50병상뿐이었다. 입원형호스피스 운영 실태를 보여준다.

김 이사는 "정부는 가정형 자문형 등으로 다양화할 계획이다. 의료기관에서 가장 많이 사망하고 있고 핵가족사회로 가족이 돌봄에 참여하기 어려운 면을 고려해 입원형도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생애말기 돌봄 진지한 정책적 고려 필요 = 안 대표는 "비록 우리나라 법령과 제도와 인프라가 말기 환자가 원하는 만큼의 질 높은 생애 말기 돌봄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질 높은 생애말기 돌봄이 제공되면 대다수의 말기 환자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으며 비참하게 최후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려줘야 한다"며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법을 만들어 말기 환자가 생을 일찍 마감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입법"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은 24일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웰에이징, 웰다잉을 포함한 생애말기 의료·돌봄체계를 먼저 정비할 필요가 있다. 안락사에 대한 성급한 논의보다는 호스피스 제도의 발전과지역사회 중심의 돌봄체계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며 "어르신들이 어떻게 존엄있는 생애말기를 보낼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체계를 갖추도록 국가가 지원해야한다"고 말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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