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시대 함께 살아가기
세계에서 가장 급격한 인구 변화…“복지 환경 전환”
노후소득 보장, 돌봄 활성화, 1인가구 지원에 유연한 대응 … “사회 지속가능성 높여야”
앞으로 반세기동안 우리나라의 대표적 사회현상 중 하나가 인구감소다. 인구감소시대는 노후빈곤-돌봄-1인가구 등 다양한 문제를 낳는다. 세계 최저의 출생률는 생산인구 감소를 낳는다. 이는 납세자-사회보험료 납부자 감소로 이어지고 사회보장제도 지탱할 재정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전망이다. 때문에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주요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사회적 논의와 개선 노력이 활발히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지난 정부와 국회에서 진행된 국민연금 개혁 추진이 좌초됐다. 여야의 보험료율 인상폭에 대한 합의가 야당 대표의 여당안 수용으로 성사 직전에 이르렀으나 결국 무산됐다. 정부가 의료개혁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개선작업은 미미하다. 인구고령화로 인한 노인돌봄도 전사회적 과제다. 정부와 지자체는 의료돌봄통합지원 시범사업 확대를 힘쓰고 있다. 여기에 기업의 적극적인 돌봄 참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생 관련 일가정양립을 위한 참여가 중요하다고 인식되고 있지만 노인돌봄에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은 아직 부족하다. 더욱이 증가하는 1인가구는 기존의 사회공동체 생활양식을 벗어나 비대면-고립-느슨한 만남 등 새로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인구감소(저출생 심화, 노인인구 급증)로 인한 사회공동체의 대응방식이 변해야 함을 전문가들은 공감한다. 앞으로 반세기동안 닥칠 인구문제에 대해 열린 논의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관련해서 지난 20일 아산정책연구원이 연 ‘인구감소시대의 사회복지와 공동체’ 주제 심포지엄에서 제기된 사회보장제도, 노인돌봄, 1인가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공유한다.
세계 최저 출생률 0.72,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 2050년 노인인구 1900만명, 생산인구 감소와 2070년 생산-노인 인구역전(1674만명, 1747만명), 2022년 1인가구 34.5% 등 우리나라 인구지표는 이전과 확연히 다른 메시지를 준다.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 문제 제기다.
인구형태가 급격히 변한다고해서 한국사회가 당장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소득-건강보장-돌봄 등 사회제도가 합리적으로 변화할 필요성은 높아진다. 전문가들은 적절한 대응으로 국민이 보다 행복하고 안정적인 사회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앞으로 인구 변화에서 조세부담층인 경제활동 인구가 줄고 복지수혜층인 노인 인구의 급격히 증가는 분명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연금제도의 지속을 위해 보험료 인상에 몰입돼 있는 연금개혁 논의와 관련 “연금제도의 신뢰가 낮은 상태에서 보험료를 대폭 인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국고 지원을 통해 기금고갈을 늦추고 노후소득이 보다 안정적으로 보장되고 연금 신뢰도가 높아지면 그때 조세 지원을 줄이거나 중지하면 된다”고 밝혔다.
김수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치매와 만성질환 유병률도 증가하고 있으나 기업과 정부의 복지정책은 주로 출산 육아에 지원에 집중되고 고령자 돌봄에 대한 지원은 부족하다”며 “특히 기업의 가족친화적 돌봄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보장에 보험료 인상 외 지원방식도 다뤄야 = 고령화 심화로 인한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 재정 부담을 보험료 인상 외 다른 방안으로 제도 지속가능성을 높이자는 제안이 나왔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사회보장 재정 논의는 보험료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서구 복지국가에서는 이미 보험료 이외 조세 등 다른 재원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보수적 복지국가 유형인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를 보자. 우선 프랑스는 1991년 일반사회보장기여세(CSG)를 도입해 기존의 사회보험료를 부분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해 그 비중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1991년 1.1%에서 2018년 9.2%까지 늘었다. 2018년 건강보험과 실업보험에 대한 근로자 부담분을 폐지하고 CSG를 목적세로 대체했다. 이 제도 도입 이유는 사회보험 재원 확보, 고용비용 축소, 부담대상 확대였다.
CSG는 사회보험료와 다른 점은 근로소득뿐 아니라 여러 소득범위를 포괄해 부과한다. 이는 사용자의 비임금노동비용을 줄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91년 사회보험의 재정 분담에서 보험료가 96.3%였다면 최근에는 60%로 낮아졌다.
독일의 공적연금은 오래전부터 국고 지원이 이뤄졌다. 1957년 연금개혁에서 연금급여를 획기적으로 올리면서 국고지원이 이뤄졌다. 당시 조세 비중이 31.8%였다. 지금도 전체 급여 지출의 4분의 1을 국고가 맡고 있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은 상대적으로 늦은 2004년부터 시작됐다. 최근 약 10%정도 차지한다.
독일의 사회보장 재정 분담은 2022년 사용자가 33.8%, 피보험자 30.4%, 국가 34.1%를 차지한다. 프랑스와 달리 일반조세를 통해 사회보험재정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다만 정 교수는 “공적연금 개혁과 관련 기초연금에 대한 국고지원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이라면 국민연금에 대한 국고지원은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득기준 70% 이하에게 매달 33만원 지원하는 방식은 경제적 여유가 상대적으로 있는 베이비부머세대들이 노인층으로 진입한 상황에서도 그 기준을 유지하는게 합리적일지 의문이 제기된다. 정 교수는 “기초연금 선정 방식이 변경된다면 기초연금에 대한 국고지원이 상당히 감소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감소한 재원을 국민연금에 투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준영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제활동 인구 감소와 사회보험납입자 감소로 사회보험 재정 부족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시의적절한 문제 제기”라면서 “보험료 감소분을 사용자와 근로자에 균등하게 할 것인지, 프랑스의 목적세, 독일의 일반조세로 할 것인지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은 현재 법으로 20%를 지원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정부는 늘 적게 지원했다. 당연히 이를 먼저 개선해야 한다. 이외 건강보험부과체계에서 직장가입자의 보수외 소득에 대한 소득월액보험료의 역할을 높여 왔다.
정 교수는 “소득월액보험료는 사실상 프랑스의 CSG와 유사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돌봄에 기업도 책임감 갖고 참여 높여야 = 김수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내년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2035년에는 노인인구가 전체의 30%, 2050년에는 40%로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율이 세계최고 수준이 될 것”이라며 노인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노인돌봄의 주체로 국가와 지자체를 다루는 관점과 달리 기업의 참여를 강조했다.
김 교수는 기업이 노인 돌봄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기업의 주축인 45세~65세 인력이 대부분 고령자가족 돌봄을 맡고 있으며 △돌봄 필요성으로 결근 증가 △일과 돌봄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는 환경에서 이직률 상승 △일상적 업무 집중도 저하로 인한 생산성 감소 등을 들었다.
해외의 경우 기업의 고령가족 돌봄 지원이 활성돼 있다. 일본의 경우 에디온(Edion)은 재택근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최소 근무시간 제한을 철폐했다. 후지전기(Fuji Electric)는 가족돌봄 원격근무를 확대했다. 월 10일에서 무제한으로 바꿨다. 다이세이건설(Taisei Corportation)은 유급 돌봄휴가를 10일에서 15일 혹은 20일(2명 돌봄)으로 늘렸다.
미국 기업의 경우 고령자 돌봄 프로그램이 보편화됐다. 상업적 노인돌봄 제공기관과 계약을 맺거나 내부적으로 전문인력을 고용해 돌봄서비스를 직접 제공한다. 2009년 조사에서 11% 미국 고용주가 고령자 돌봄서비스를 제공했다. 500명 이상 기업에서는 21%가 제공했고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의 86%가 관련 서비스를 제공했다.
김 교수가 국내 200개 상장기업을 조사한 결과 △고충처리 제도가 있는 기업 △남성의 육아휴직제도가 있는 기업 △한부모 가정을 포함한 다양한 가족형태를 지원하는 기업 △여성휴게 공간 및 수유실에 갖춰진 기업 등에서 고령가족 돌봄정책을 도입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지속가능한 기업과 일터를 위해 기업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며 “기업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대하는 전략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남재욱 한국교원대 교육정책학과 교수는 “고령가족 돌봄과 관련된 기업의 지원문제는 상대적으로 간과돼 온 것이 사실”이라며 “돌봄 문제는 가족-기업-국가-시장이 모두 관련된 것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문제 제기”라고 지적했다.
◆느슨한 이웃관계, 사회적 가족에 대한 인식 변화 = 1인가구의 증가에는 복합적인 사회적 요인이 작용한다. 빠른 고령화와 비혼 및 이혼의 증가, 늦어지는 결혼에 따른 출산율 감소, 교육환경과 관련한 기러기 가족 증가, 경제적 빈곤 등이다.
이전에는 1인가구의 고립과 건강이나 관계망 형성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지역공동체활동이 활발했지만 코로나19 전후 주춤해져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상황이다.
유승현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서울 및 6개 광역시 거주 742명 1인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대부분은 지역공동체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한번도 하지 않은 경우가 67.8%, 과거에는 참여했지만 현재 참여하지 않은 경우는 22.9%였다. 현재도 참여하는 경우는 9.3%에 불과했다.
이는 지역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답한 경우 79.6%인 점을 고려하면 필요성과 참여 의향 사이에 간격이 컸다. 필요하지도 참여할 생각도 없다는 경우도 20%나 됐다.
연령대에 따라 지역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지역공동체 활동의 의의나 효과에 대해 신뢰하기 어렵거나 확신이 없어서’가 55%인데 2030대 청년은 ‘지역공동체활동보다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활동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30.6%로 나타났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가 지역공동체를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68%가 대체 가능하다고 답했다. 지역공동체 사례로 언급된 ‘낙성여대’는 익명의 자유 속 타인과의 연결을 바라는 젊은 세대의 특성이 반영됐고 ‘지구별시민’은 1인가구가 모여 사회적 가족을 형성한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런 분석은 일정 공간 안에서 대면 만남을 이루고 진행됐던 전통적인 지역공동체 활동 양상과 다른 면들을 보여준다.
정소연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인가구가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한 지역공동체 활동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며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과 틀이 확장되고 새로운 유형의 공동체 활동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