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한국 정당정치, 길을 잃었다
22대 국회가 개원했다. 사사건건 첨예한 대립으로 파행의 연속이다. 정부와 여당은 국회의원 총선 결과가 보여준 민심을 외면하고 있다. 야당은 승리에 빠진 듯 불안하다. 모두 권력에 도취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현재 여와 야, 정부는 각자 따로다. 국회가 입법한 쟁점 법안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사문화된다. 민생문제 해결이 시급하지만 되는 일이 없다.
정부는 국정 운영에 중심을 잡고 나아가기보다 갈팡질팡이다. 여당은 대표직을 두고 권력투쟁에 몰두하며 좌충우돌이다. 야당은 정부의 실정과 불법을 심판하는데 전력 질주다. 정치는 없고 서로를 해치는 적치(敵治)의 칼춤뿐이다. 이 퇴행의 정치를 언제쯤 멈춰 세울 수 있을까. 그 근원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상생과 공존 대신 상극과 적치만 남은 정치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의 중심은 정당이다. 한국의 정당정치는 실종되었고 리더십은 부재 상황이다. 정치 난장(亂場)이 정당의 존재가치를 삼켰다. 정당은 정치적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권 획득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조직체다. 각 정파와 정당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동선을 찾으며 경쟁의 토대를 만든다. 이것이 상생의 정당정치다.
정당정치의 주체로서 우선순위는 집권 여당이다. 여당은 정부를 통해 그 이념과 가치를 주도적으로 국정에 반영한다. 정부는 예산과 정책 집행에서 정치철학과 비전을 수행한다. 대신 국정에 대한 1차 책임을 진다. 야당은 시민의 여론을 수렴해 정부와 여당을 견제하고 비판한다. 정책 집행의 균형자역할 수행이다. 이것이 공존의 정치생태다.
현재 한국 정당정치는 상생이 없다.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적치뿐이다. 정부의 정책 집행부터 난맥이다. 국정 목표와 비전, 통치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목표로 어디로 나아가는지 가늠할 수 없다. 검찰을 앞세워 야당을 적대하고, 추종뿐이다. 소통과 협치가 사라졌다. 상극의 정치뿐이다.
정당정치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대의제에 충실해야 한다. 사회계층과 집단, 지역의 공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특정 세력과 계층에 국가 자산을 불공정하게 배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득권 집단에 포획되거나 소수 지지에 의존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결과 사회공동체는 심각한 쏠림현상으로 몰린다. 이것이 정치왜곡이다.
배경은 정당이 지역을 중심으로 생존 토대를 구축하고 그 위에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가설무대를 설치한 데 있다. 가설정당, 지금 한국 정당의 모습이다. 물론 정당 간에 차이는 있지만 큰 맥락으로 보면 그렇다. 오로지 정치적 이익을 목적으로 이념을 동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이 책임회피의 정치구조다.
한국 정당사는 책임회피의 역사였다. 정당의 명칭 변천사가 증명한다. 이름을 바꾸는 ‘간판갈이’로 살아남았다. 정당이 선거를 앞두고 이름을 세탁하는 것은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다. 실패를 은폐하고 새로운 정당인 것처럼 포장만 바꾸어 집권하는 방식이다. 시민사회를 적과 아군으로 갈라치기해 책임을 피했다. 이것이 기망정치다.
정당의 일관된 정체성과 진정성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조건이다. 이것을 갖추지 못하면 시한부 정당이다. 은폐와 왜곡, 기만으로는 설자리가 없다. 세상이 바뀌었다. 문명의 혁신을 이끄는 인터넷 사회 관계망(SNS)이 정치를 재구축하고 있다. 기망이 아닌 진실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
정치실패 위기 극복해야 선진국 자리매김
디지털 정보혁명 시대, AI 인공지능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틀을 근본부터 바꾸고 있다. 정당정치가 지속가능하려면 더 공정하고, 더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진보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한국 정치는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발전해왔다. 이 시점에서 한국 정치의 붕괴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치실패의 유산을 송두리째 드러낸 신호. 이 위기를 극복해야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정당은 민주주의 학습장이며 수련장이다. 리더(지도자)는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학습과 수련을 통해 만들어진다. 막스 베버는 지도자의 조건으로 열정·책임·균형을 강조했다. 모두 치열한 수련으로 갖출 수 있다.
정치가 지향해야 할 기본 가치도, 지도자의 조건도 명료하다. 정직과 진실, 정의와 자유, 인간에 대한 사랑, 생명과 인권의 존중이다. 정치는 인간의 이상을 구현하는 도전이다. 지금 우리에게 꿈을 주는 정치는 있는가? 신뢰를 잃은 지도자, 정의를 외면하는 정당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이 시그널을 받을 것인가.
김명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