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성푸른도서관
축제 기획하고 화단 가꿔…아파트 생활에 활력 불어넣는다
동아리 10개 활발하게 운영·경력단절여성에게 진로 개척 기회 제공 … “작은도서관, 공동체 거점 공간으로 역할해야”
문화체육관광부는 10월 16일 제61회 전국도서관대회전시회 개회식에서 2024년 도서관 운영 및 서비스 발전에 기여한 우수도서관으로 48개 기관을 선정하고 정부포상 등을 수여했다. 대통령 표창 2곳, 국무총리 표창 6곳,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표창 7곳, 문체부 장관 표창 33곳이 선정됐다. 2024년 도서관 운영 유공 우수도서관 5곳을 탐방한다.
18일 오전 방문한 충남 천안 성성동 천안레이크타운푸르지오아파트 안에 위치한 성성푸른도서관은 시끌벅적했다. 어머니와 함께 온 돌쯤 됐을 법한 어린 이용자들이 그림책을 읽어주는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다 기어 다니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한편에선 봉사자들이 어린이 작업실 ‘모야’를 주제로 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박민주 성성푸른도서관 관장은 “도서관은 항상 시끄럽다”면서 “오후가 되면 학교를 마친 어린이들이 몰려와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웃으며 말했다.
성성푸른도서관은 아파트 입주를 시작한 2017년부터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온동네 주민들이 함께 하는, 소란스러운 동네 도서관으로 운영돼왔다. 양질의 운영을 인정받아 2024년 도서관 운영 유공 우수도서관으로 작은도서관 부문 문체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전문인력이 체계적으로 운영 = 성성푸른도서관은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에서 운영하는 아파트작은도서관으로 사립 작은도서관에 속한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500세대 이상의 아파트는 의무적으로 작은도서관을 갖추게 돼 있다. 다만, 작은도서관은 도서관법에 따라 면적과 도서 수 등 일정 기준 이상만 갖추면 사서 없이도 운영할 수 있다. 때문에 작은도서관의 경우, 사서를 두고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곳은 많지 않다. 그러나 성성푸른도서관은 관장이 정사서 자격증을 갖고 있는 등 전문인력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또한 작은도서관의 경우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운영자들이 인건비를 책정하지 않고 자원봉사 방식으로 운영하는 곳들이 상당수다. 그러나 이곳은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가 운영비는 물론, 인건비를 예산에 편성해 도서관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고 있다. 전문인력이 근무하며 인건비를 지급하는 체계를 갖추게 되자 작은도서관 운영은 보다 전문적으로 이뤄졌다. 아파트 내 작은도서관이 잘 운영되자 어린이들은 물론, 성인들도 시간이 날 때면 삼삼오오 작은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고 봉사와 동아리 활동을 하며 풍요로운 일상을 누리게 됐다.
나아가 성성푸른도서관은 해마다 열리는 아파트 축제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원예동아리가 화단에 튤립을 심어 가꾸며 아파트 생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작은도서관을 이용하지 않는 아파트 주민들도 작은도서관에 대한 신뢰도가 높으며 작은도서관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이유다.
도서관이 활성화되다 보니 아파트 외부 주민들도 도서관을 알게 되고 이용하기를 원하게 되면서 성성푸른도서관은 2021년 아파트 주민들의 투표를 거쳐 천안에 거주하는 아파트 외부 주민들에게도 개방됐다.
박 관장은 “다양한 방식으로 아파트 주민들에게 작은도서관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에서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파트 주민들이 작은도서관의 필요성을 이해해야 지속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외부 주민들에게도 개방하면서 도서관의 공공성을 보다 확보하게 됐다”면서 “다만, 외부 주민들은 관리비로 작은도서관 운영을 부담하는 아파트 주민들과의 형평성을 위해 연간 2만원을 회비로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상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어 = 성성푸른도서관은 바닥 난방을 해 신발을 벗고 이용하게 돼 있다. 이에 영유아와 어린이들은 보다 편안하게 자기 집처럼 방문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책을 읽고 만들기도 할 수 있다. 안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어린이 작업실 모야라는 공간이 보인다. 어린이들이 이곳에 들어서면 다양한 재료와 도구들을 가지고 상상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어린이 작업실 모야는 도서문화재단씨앗의 지원으로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에 조성되는 만들기 공간인데 천안에서는 이곳이 유일하다. 어린이 작업실 모야를 이용하기 위해 천안에서 서울까지 이동하던 한 이용자는 이곳을 알고 아파트 외부 주민인데 회원으로 가입했다. 꼭 책을 읽지 않아도 만들기를 하러 방문해도 된다는 것을 알면서 도서관 이용자들이 더욱 늘어난 것은 물론이다.
2023년엔 성성푸른도서관 앞 10여평 정도 되는 유휴공간을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을 거쳐 도서관 공간으로 확보했다. 이곳엔 서가와 함께 필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이용자들이 편안하게 쉬었다 갈 수 있게 했다. 이곳에선 도서관 내부 공간과 달리 간단한 먹거리도 먹을 수 있어 이용자들의 호응이 높다. 도서관에서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비어 있던 복도에 원화 및 명화 전시도 진행한다.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는 아파트 주민들도 복도를 오가며 그림을 즐길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 이름을 불러주는 도서관 = 성성푸른도서관은 동아리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동아리 10개는 대부분 성인들을 대상으로 운영한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천안아산지회, 시간을 정해 온라인으로 만나 각자 원하는 책을 읽는 ‘묵독회’, 매일 온라인으로 필사를 인증하는 ‘사각사각’, 미술동아리 ‘푸른스케치북’, 독서동아리 ‘심야책방’, 손뜨개 동아리 ‘함뜨’, 원예동아리 ‘시크릿가든’, 그림책 인형을 만드는 동아리 ‘한땀 그림책’ 등이 그것이다. 도서관은 동아리 운영 초반에 지방자치단체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강사를 섭외해 동아리가 더욱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강사를 섭외할 때 재능 있는 이용자들을 강사로 발굴하고자 노력한다. 도서관 이용자인 전업주부들은 재능과 역량이 있어도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도서관을 이용하다 강의를 맡게 되면서 새롭게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게 된다. 대표적인 이용자가 그림책 인형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김경은 작가다. 김 작가는 도서관의 권유를 바탕으로 처음 그림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고 관련 강의를 시작해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강의를 수강하다가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기도 한다. 관련 강의를 듣고 유아숲지도사 등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 ‘이야기숲’이라는 기업을 창업한 이용자들도 있다.
박 관장은 “육아를 하다 경력이 단절된 전업주부들은 사회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자존감이 떨어진다”면서 “도서관에서 이용자들을 응대하다보면 이용자들의 장점들이 보이는데 이를 발굴하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성성푸른도서관이 활성화한 데에는 도서관이 이용자들을 부르는 호칭이 한몫했다. 도서관은 어린이들에겐 모두 이름을 외워 불러준다. 도서관에 아이가 조심스럽게 들어설 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어린이를 안심시키고 편하게 방문해도 되는 공간이라고 느끼게 한다. 성인들에겐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이용자는 누군가의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오롯한 개인으로 도서관을 방문하기 때문이다.
한편 박 관장은 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 이사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같은 단체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아파트 작은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관련 주제의 강연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요청이 있으면, 작은도서관 설립 초기에 필요한 매뉴얼과 전문상담을 지원한다.
박 관장은 “아파트 단지가 갈수록 늘어나며 아파트 작은도서관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아파트 작은도서관은 아파트 주민들의 공동체를 강화하고 연결하는 거점 공간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일신문·한국도서관협회 공동기획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사진 이의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