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시장과의 소통 실패한 일본 통화정책

2024-08-12 13:00:00 게재

일본의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2%다. 엔화약세로 인한 기업의 임금인상과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가 늘어난 여파다. 일본의 명목임금지수는 2022년 3월 이후 101 이상을 유지 중이다. 지난 4월에는 이게 108까지 올라갔다. 최근 인플레를 임금상승발 물가로 볼 수 있는 근거다. 2014년 4월 이후 1년간 2%대 물가 상승기와 다른 점이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느리지만 나쁜 편은 아니다. 지난 1분기 GDP는 1년 전보다 2.6% 성장했다. 지난해의 5.6% 성장과 큰 차이이고 불변가격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1분기 GDP는 마이너스 0.9% 성장이다. 하지만 기업 실적과 임금이 오르면서 물가를 올리는 선순환 구조라는 특징을 보인다.

이게 일본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정상화를 결정한 이유다. 일본경제가 악성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벗어났다는 확신에서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한 게 3월이다. 하지만 이후 일본의 금리정책은 속도를 내지 못한다. 통화정책 전환을 예상한 글로벌 투기 자금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닛케이지수가 7월 사상 최고치인 4만2426을 기록한 것도 투자자금 영향인 셈이다.

일본 금리 인상하자 글로벌 투자자 이탈 본격화

일본은행 통계를 보면 엔화를 빌려 글로벌 자산시장에 투자하는 ‘엔케리트레이드’만 지난 3월 기준 13조5000억엔 규모다.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한 이후에만 2배 이상 증가했다. 이게 엔화의 과도한 하락을 불러왔다. 엔화약세는 수입가격을 올려 일본경제 회복에도 걸림돌이 된다. 인플레이션으로 실질 GDP도 하락한다. 일본은행이 수차례 외환시장에 개입한 배경이다.

일본은행의 희망 환율은 달러당 150~160엔 선이다. 수출도 늘리고 외국인 관광 수입도 늘리려는 의도다. 기업 실적이 늘면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에도 유리하다. 지난 30년간 일본경제를 괴롭혀온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는 몸부림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환율에 의존하는 정책은 한계가 있다. 이를 타개하려고 한 게 바로 지난달 말 기준금리를 0.25%로 전격 인상한 조치다. 국채 매입 규모도 절반인 월 3조엔으로 줄였다. 8일 공개한 통화정책회의록을 보면 일본은행의 금리목표는 1%다. 결과는 미국의 9월 금리인하 예고와 맞물리면서 투자자금 이탈로 이어졌다. 일본의 금리인상은 예고된 악재다.

회색 코뿔소가 위력을 더 키울 수 있었던 요인은 3가지다. 우선, 일본 통화당국이 시장과 소통에 나서지 않은 게 결정적이다. 중앙은행은 통상 시장 기대심리를 관리해 인플레이션을 조절하는 게 기본이다. 미 연준의 의사결정과정을 보면 시장의 기대치와의 일치를 매우 중시한다. 시장의 기대 차이로 인한 파동을 최소화하려는 취지에서다. 파월 의장의 발언이나 데이터 공개 등은 시장과의 소통을 위한 수단인 셈이다.

일본은행은 반대다. 아베노믹스 시절부터 마이너스 금리와 양적완화에다 수익률곡선통제(YCC) 같은 비정상적 통화정책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투기세력을 의식해 시장과의 소통을 아예 차단한 채 금리를 전격 인상했을 정도다. 소통 부재가 투자자에게 공포심을 유발하며 글로벌 자본시장에 큰 충격을 던진 셈이다.

다음, 글로벌 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를 촉발한 점이다. 앞으로 글로벌 증시는 조그만 악재에도 변동성 큰 장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엔케리트레이드의 축소로 이미 시장 유동성도 줄어든 상태에서 시장은 주식과 채권을 투매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마지막으로, 일본 기업의 수익성 악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리인상은 엔고로 이어지고 일 기업의 해외사업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추가 금리인상 선 긋지만 예의 주시해야

앞으로 일본경제의 향방은 다음 변수에 의해 결정될 전망이다. 일단 일본경제는 대침체 주기에서 벗어난 게 확실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의 대차대조표를 보면 부채율도 크게 낮아진 상태다. 엔고로 인한 수익성 하락 여부가 관전 포인트다.

일본 기업 매출이 주로 외국시장에서 나타난다는 점도 관심거리다. 일본 내 경기와 물가는 고령화 여파로 큰 파동을 보이기 힘들다. 최근 물가상승도 해외관광객의 소비와 대기업의 임금 인상에 따른 것이다.

가장 주목해야 할 사항은 향후 금리다. 금리정책은 강도와 리듬, 그리고 시장과의 소통이라는 3박자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 일본은행은 추가 인상에 선을 긋지만 주시해야 마땅하다. 일본이 촉발한 글로벌 금융시장 충격파는 중앙은행과 시장 간 소통 부재의 결과물이다. 이번 금융재앙은 연준을 비롯해 한국의 금리정책에도 영향을 줄 게 분명하다.

현문학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