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수시 합격생 릴레이 인터뷰
김다솔 경희대 한의예과
내신 1등급 비결은 반복과 예습 단, 스스로 하기!
누군가 경기 전에 몸을 풀고 있는 김연아 선수에게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생각은 무슨, 그냥 하는 거죠. 하하.” 다솔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무심한 듯 누구보다 열심인 김연아와 겹쳐 보였다. ‘절실하게 원하는 게 있다면 마음을 비워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결과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그의 말만 들어도 그렇다. 차가운 열정이 매력적인 다솔씨를 소나기가 내리던 경희대에서 만났다.
내신은 1년 앞서 예습, 그 외는 수능 공부 전념
다솔씨는 고등학교를 두 번 다녔다. 중3 때 ‘중2병’을 혹독하게 겪어 고등학교 학업에 대한 준비가 미흡했기에 입학 후에도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열심히 노력해도 오르지 않는 성적과 스트레스로 번아웃을 겪은 그는 결국 자퇴를 선택했다.
“유학을 준비하려고 영어 학원도 다니고 도서관에 다니며 책도 많이 읽었어요. 그러다 보니 다시 학교로 돌아갈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으니 현실을 회피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누군가 자퇴를 고민한다면 보다 신중하게 생각해보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남들보다 사춘기를 진하게 보낸 덕분에 이후엔 오로지 학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 우선 왜 성적이 잘 오르지 않았는지 분석했다. ‘공부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반복’ 학습도 빼놓을 수 없었다.
“설령 잊어버릴지라도 일단 전체 내용을 쭉 한 번 훑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다솔씨는 무려 전 과목을 혼자 예습했다. 1학년 방학에 2학년 과목을, 2학년 땐 3학년 과목을 미리 훑는 식이었다. 학원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혼자 공부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다. 학교 시험 한 달 전에는 내신 준비만 했고 그 외에는 수능 공부에 전념했다. 덕분에 딱 한 번만 제외하고 전교 1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3 1학기 최종 내신 등급은 1.06이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면 공부 방법이 틀렸을지도 몰라요. 내신이든 모의고사든 시험지를 잘 분석해보면 틀리는 문제 유형이 비슷할 거예요. 내가 개념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무엇을 모르는지 보일 수밖에 없어요. 특정 유형의 문제만 모아놓은 인터넷 강의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 <세계사>
내신 성적은 3년 내내 최상위권이었지만 사실 다솔씨에겐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다닌 4년 내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각 학년마다 희망 진로도 다 달랐다. 한의예과 진학은 고3 때 진학 상담에서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고심 끝에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아 “어른이 되면 내 병은 내가 고쳐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늦게 진로를 정했기에 그 전까지는 한 사람의 학생부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우왕좌왕했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는 과목에 대한 탐구 활동은 뚜렷하게 읽혔다. 바로 ‘역사’다.
“역사를 공부할수록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더라고요. 저에게 <세계사>는 ‘왜 배우는가’에 대한 답이 가장 명확했던 과목이에요. 마침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질병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됐고요. 코로나19와 중세 유럽의 흑사병을 비교 탐구했던 것도 그 덕분이죠. 흑사병은 유럽의 역사를 바꾼 전염병이에요. 의학과 위생 개념이 발달한 현재에는 이런 전염병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는데 코로나19가 발생했죠. 그때부터 저는 뭔가에 확신을 가져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한창 뜨거운 인공지능도 놓치지 않았다. 10여 년 후에는 어떤 분야에서든 인공지능을 활용할 거라는 생각에 관심이 많았던 윤리 과목과 접목시켰다.
“자율주행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면 자동차 회사에 책임이 있는지, 운전자의 잘못인지, 아니면 모두의 책임인지 윤리적인 관점에서 논의해볼 수 있거든요. 한의학에서도 인공지능과 접목한 진단과 치료가 이뤄졌을 때 얼마든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다솔씨가 선택한 <세계사>와 <세계지리>는 공부할 내용이 많아 부담이 크기에 많은 학생이 선택하는 과목은 아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과목을 공부한다면 자연스럽게 공부 시간이 확보될 거라는 생각에 선택했다고. 이때 비밀 병기의 도움을 받았다. 바로 더빙 앱이다.
“교과서 내용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그대로 읽어줘요. 이동하는 동안 내내 들으니 애써 외우지 않아도 기억에 남더라고요. 아마 제가 좋아하지 않는 과목이었다면 그 정도로 열정을 쏟기 힘들었을 거예요.”
한의대 면접 팁: 경험과 관심으로 어필하기
다솔씨는 삼수로 경희대 한의예과에 입학했다. 첫 대입 때는 학생부교과전형으로 교대와 한의대에 합격했고 최종 선택은 교대였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다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한의대에 도전, 삼수 끝에 원하던 경희대 한의예과에 합격했다. 3년 내내 한의대에 지원했기에 면접에도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한의학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설득하는 거예요. 한의학계의 주요 인물인 이제마와 허준 등 기본 한의학 지식도 숙지해야 해요. 한의원에서 직접 치료받은 경험을 토대로 한의학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요.”
다솔씨가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그냥 하는 거죠”였다. 오랜동안 방황을 마치고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찾아 돌아온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어느 스포츠 브랜드의 문구처럼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그냥 하는’ 일의 위력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그 시간이 쌓였을 때 비로소 발휘된다.
“고1~2 때 구체적인 희망 진로는 없었지만 내신을 놓치지 않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그래야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 원하는 대학을 지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수능을 최종 해결책으로 생각해 내신을 포기한다면 현실을 회피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없더라도 내신은 포기하지 마세요. 그래야 나중에 꿈이 생겼을 때 선택의 폭이 넓어지니까요.”
취재 황혜민 기자 hyem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