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물샐틈없는 방어 태세와 지역개발
손자병법 허실편에 무소불비無所不備 무소불과無所不寡라는 내용이 있다. 방어할 곳이 많아지면 병력과 자원이 분산된다. 모든 곳을 지키려고 하면 모든 곳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엄청난 자원을 쏟아부어 모든 곳을 막겠다는 만리장성도 뚫리지 않는 적이 없다.
용치의 필요성 재검토해야
우리는 6.25 전쟁 때 탱크 위협부터, 크게는 북핵과 미사일 위협, 작게는 하늘의 무인기와 풍선, 바다의 잠수정과 작은 목선까지 막아야 하고, 땅에는 낙석 장애물과 용치 등 물샐틈없는 방어 태세를 구축하고 있다. 기존의 부대구조와 무기체계가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흔들린다. 기존에 없는 무기체계를 보강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기존 조직을 잘 활용하든지 보강하면 될 것인데도, 전략사령부 창설 보도처럼 상급 지휘 부대가 늘어 상후하박의 부대구조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6·25전쟁 때 속수무책으로 당한 경험으로 북부지역에는 시멘트 구조물로 만든 대전차 장애물로 요새화되어 있다. 낙석 장애물은 찻길에 있어서 익숙하지만, 같은 목적으로 하천 어귀에 세운 용치(용 이빨)는 시민들이 잘 모른다. 백제를 지키는 용이 소정방에게 낚여서 죽고 백제가 망했다거나, 신라 문무왕이 바다를 지키는 용이 되었다는 전설처럼 지금도 용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 우리는 안시성 진주성 행주성 등에서 성공적인 방어전을 치른 역사가 있기는 하다. 현대전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용치를 설치한 임시적인 대전차 방어망이 효과를 보고는 있다. 그러나 장기간 고정된 시설이나 계획은 공격자가 우회하는 계획을 세우게 되어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지형지물이 상전벽해가 되었다. 당시 유일한 진입로 주변에 사통팔달 길이 생겼고, 벌판이 도심지로 바뀌었다. 일산 신도시처럼 시가지를 장애물로 활용하는 획기적인 도시개발 성공 경험이 있다. 미군이 이라크 전에서 고전한 것처럼 현대전에서 시가전은 공격자에게는 매우 힘든 전투다. 굳이 개발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
한국군 무기체계도 과거처럼 열악하지 않고, k-2 전차, 항공 전력과 대전차무기 등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었다. 국방개혁을 계속하고 있지만, 전력이나 부대구조 등에 치중한 편이다. 현지 부대장이 판단하니, ‘그냥 이대로!’ 문제없다는 심리적 장애물로 쓰이는 측면이 있다. 심리적 장애물이란 표현을 쓰는 이유는, 조선 시대에 적 함선을 막기 위한 목책이 지금도 항구 입구에 설치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군에게 철거를 요청하면, 현지 부대장은 ‘그냥 이대로!’라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활용하고, 문화유산 차원 관리 필요
1950년대 대전차 방어 기준이 아니라 현대전 개념을 적용하고, 억제를 통한 평화라는 큰 틀에서 작전계획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토 균형발전과 낙후된 지역의 개발을 위한 민군 상생의 과감한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전수조사와 재검토를 통해, 작전에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관리를 해야 한다. 일부 용치는 망가진 상태로 방치되고, 잡풀이 둘러싸서 미관을 헤치고 있다. 바닷가에 파도를 막는 테트라포드에 그림을 그려, 콘크리트 흉관이 야외 미술관처럼 된 곳이 많다. 낙석 장애물과 용치도 그림을 그려 놓은 곳이 있는데,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용치를 생태공원으로 만들어 시민이 활용하고 있는 곳이 있다. 주변에 물길과 의자를 만들고, 용치 위에 전망대를 만들었다. 몇 곳의 용치는 시민들이 멀리 돌아가지 않도록, 용치 위에 덮개를 깔아서 산책길 역할을 하고 있다.
군부대 방어시설과 다리 건설이 연계되지 않고 따로따로인 곳이 많다. 용치 바로 옆에 다리를 놓을 때, 튼튼하게 지어서 용치를 대체하면 된다. 군부대와 협의해서 없앤 두 곳을 봤는데, 아무런 흔적이 없어서 당시 실무자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 남북 분단과 대결 상황도 역사고, 군(軍)의 노력도 역사다. 한 시대의 역사 유적으로 용치 사진이 있는 안내판을 세우거나, 한두 개 용치를 상징적으로 남기는 방법이 있다. 개발이나 홍수 피해, 미관, 해체 비용 등을 고려하여 전체를 남길 수도 있다.
국방 필요성을 만족시키면서도 도시계획에 장애를 주지 않고, 시민들이 유익하게 활용하도록 세심하고 과감한 검토가 필요하다. 방어시설물을 평화와 통일 필요성이 피부에 와 닿을 교육 도량으로 활용하고, 해체한 곳은 대결과 분단의 상처가 후대에 교훈이 되도록 흔적을 남기자.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
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