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살얼음판 걷는 듯한 수도권 집값

2024-08-22 13:00:02 게재

그린벨트 해제를 골자로 하는 정부의 대대적인 아파트 공급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집값이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출범 이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등으로 인한 집값 하락을 막기 위해 상승을 부채질하는 정책을 동원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투기 조짐이 나타나자 부랴부랴 억제책을 내놓았다. 그래서 집값 상승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과연 확고한 것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립서비스 인지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정부 '8.8 주택공급 확대방안'에도 꺾일 기미 보이지 않는 수도권 집값

8월은 여름 휴가철로 부동산 비수기인데다 정부가 8.8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내놨는데도 이달 둘째주 서울 아파트 가격은 약 6년 만에 가장 큰 폭인 0.32%나 뛰었다. 그러자 일각에선 “정부 억제책이 늦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이들은 정부가 비전 없는 안이한 판단으로 일관하다가 지금과 같은 집값 불안을 초래했다고 강조하면서 윤 정부도 과거 문재인 정부처럼 집값으로 나라를 온통 망조 들게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정부는 원천적으로 주택가격의 폭락을 원치 않는다. 주택경기가 살아나면 경제가 잘 돌아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엉망진창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주택경기가 살아나면 건설업을 비롯해 시멘트, 철강 등 원자재는 물론이고 가구, 인테리어, 전자, 이삿짐 센터에 이르기까지 연관산업 전반이 활황을 보인다. 이는 술집과 택시 등 다른 업종으로도 파급돼 경제 전반이 좋아진다.

특히 건설노무자 등 서민들의 일자리가 늘어나 서민들의 삶이 윤택해진다. 그래서 내수 경기가 나빠지면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주택경기 활성화이다. 게다가 양도소득세와 취득세, 재산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까지 많이 걷히니 주택경기 부양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단지 흠이라면 투기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역대 정부 거의 모두가 경기가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엄청난 후유증을 뻔히 알면서도 주택경기 활성화에 나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책임지는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조차도 불과 3주 전까지 “부동산 시장은 약간의 지역적 쏠림 현상이 있지만 추세적 상승 전환은 아니다”라고 강변했을 정도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도권 집값이 상승하면서 거래량까지 수반되자 정부가 급히 억제책을 내놓았다. 집값 상승 기대감으로 지난 2분기 가계부채가 역대 최대로 늘어나고 서울 강남 3구와 용산 등 주요지역 아파트 매수자 중 절반 이상이 갭투자자이고 외지인이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지자 이처럼 기조를 바꾸었다.

정부가 주택 시장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무겁게 받아들인 건 다행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 수준이라는 게 문제다. 이번 방안대로 주택공급이 이루어지고 가계대출에 제동이 걸린다면 시장은 안정될 것이다. 그러나 이 방안이 가시화하려면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고 10년 이상 걸릴 분야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부동산 정책 경기 조절 수단이나 지지 기반 표 얻기 위해 이용돼서는 안돼

수도권 집값은 현재 공사비 급등 등으로 인한 공급 절벽과 치솟는 전·월셋값 상승으로 무척 불안정한 상태다. 특히 ‘파주 운정지구’를 중심으로 수도권에서 사전청약을 받은 민간분양 아파트가 사업성 악화로 줄줄이 사업이 취소됐다. 3기 신도시에서도 경기 남양주왕숙2 A1블록과 A3블록의 본청약이 올해 9월에서 내년 3월로 연기되고 하남교산 A2블록도 내년으로 미뤄졌다. 이에 따라 사전청약에 당첨된 예비 청약자들 사이에서 사업이 취소되거나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게다가 이르면 금년 10월에는 기준금리까지 인하될 것으로 보여 주택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

사전청약 취소를 당한 사람들이 불안한 나머지 ‘패닉 바잉(공황구매)’에 나설 경우 집값 상승은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부동산 상승세에 일단 불이 붙으면 백약이 무효이다. 문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다 실패했던 김수현 전 정와대 정책실장도 최근 펴낸 책에서 부동산 상승을 막을 수 있다는 정부의 자만심이 문제라고 술회했을 정도다. 부동산 정책은 결코 경기 조절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지지 기반의 표를 얻기 위해 이용되어서는 더욱 안된다. 현재의 각종 경제지표를 볼 때 최근의 수도권 주택가격이 선순환적 상승, 다시 말해 소득 증가가 수요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투기 조짐이 일면서 정부 억제책이 발표되기에 이르렀으니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