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밥캣·로보틱스 합병 재추진에 주가 6%↓
합병 비율 상향조정에도 주주이익 침해 논란 지속
얼라인파트너스 등 주주반발·금융당국 평가 주목
두산그룹이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내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두는 사업 지배구조 재편을 다시 추진한다. 이번에는 합병 비율을 상향 조정했다. 주주이익 침해 논란과 금융당국 압박에 지난 8월 합병안을 철회한 지 53일 만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두산밥캣이 두산로보틱스로 넘어가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며 새 합병 방식도 주주이익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두산그룹의 새 합병 방식에 어떤 평가를 할지 주목된다.
◆주가 급락 중 = 22일 오전 두산밥캣 주가는 전일 대비 5%대, 로보틱스는 4%대 급락 중이다. 이날 오전 9시 45분 기준 두산밥캣의 주가는 4만600원으로 전일대비 6.77%(2950원) 떨어졌다. 개장 후 주가하락 폭은 더 커지는 상황이다.
같은 시간 로보틱스 주가는 6만9500원으로 2.93%(2100원) 하락했다. 두산밥캣과 로보틱스, 에너빌리티 주가는 전일 두산 그룹의 이사회 결과가 전해진 후 시간외 매매 거래에서도 급락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21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 회사와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 법인으로 인적분할한 뒤 신설 법인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사업재편 안건을 의결했다. 두산밥캣의 모회사가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로보틱스로 전환되는 점은 이전 방안과 같다.
다만 두 회사는 합병 비율을 기존에 제시했던 1대 0.0315보다 상향 조정해 1대 0.043으로 결정했다. 기존에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가 있으면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75.3주와 두산로보틱스 주식 3.15주로 전환하는 것이었는데 새로운 안대로 합병할 경우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88.5주와 두산로보틱스 4.33주를 받을 수 있다.
두산그룹은 “회계상 순자산 장부금액 기준으로 책정했던 기존 두산밥캣 분할 비율을 시가 기준으로 바꾸고, 시가만 적용했던 신설 투자법인과 두산로보틱스 간 합병 비율에 두산밥캣 경영권 프리미엄 43.7%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사장은 이날 오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두산그룹의 사업재편 안은 자산의 효율적 재배치 및 시너지 극대화를 위한 것”이라며 “주주들에게 최대한 많은 주식이 지급되는 방향으로 분할합병 비율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두산은 오는 12월 12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재편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임시주주총회 권리주주 확정을 위한 주주명부 확정 기준일은 다음 달 12일이다.
◆주주 반발 … 금감원 제동 무마할 수 있을까 = 다만 일반 주주들의 반발과 행동주의 펀드의 향후 행보, 금융당국의 제동 가능성 등은 두산 그룹이 넘어야 할 과제다.
최근 두산밥캣 지분 1%를 확보한 국내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 15일 두산밥캣 이사회에 주주 서한을 보내 △두산로보틱스와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한 합병을 재추진하지 않을 것을 공표 △주식매수청구권 대응으로 사용하겠다고 두산밥캣 이사회가 결정한 1조5000억원을 주주환원(특별배당)에 사용할 것 △동종기업 (캐터필러, 디어, 쿠보타) 평균 수준인 65%로 주주환원율을 정상화하는 내용을 포함한 밸류업 계획을 연내 발표할 것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 등을 요구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주주서한에 대한 답변을 오는 11월 15일까지 공시, IR발표, 언론 발표 등 공개적 방법으로 해줄 것을 두산밥캣 이사회에 공식 요청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두산밥캣 이사회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간의 이해충돌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거나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절차 없이 두산로보틱스와의 포괄적 주식교환 안건을 가결한 것이 자본시장의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며 “독립적인 이사회 구축 및 주주환원율 정상화를 통해 두산밥캣이 글로벌 동종 기업들에게 뒤지지 않는 수준으로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더욱 존경받는 세계적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두산 측의 향후 행보를 지켜보면서 주주 활동에 적극 나서겠다고 공개 선언한 셈이다.
소액 주주들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지난 7월 합병안 발표 후 소수 주주 의결권 플랫폼 ‘액트’는 한때 두산의 개편안에 반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연 매출 10조원에 영업이익 1조원이 넘는 두산밥캣 주식 1주를 적자에 허덕이는 두산로보틱스 주식 0.6주로 바꿔 주는 주식 교환 비율이 문제였다. 당시 주주가치가 훼손됐다는 두산밥캣 주주들과 알짜 기업을 빼앗긴다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의 반발이 거셌다.
금융감독원까지 나서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는 등 2차례 제동을 걸자 두산은 결국 8월 말 기존 개편안을 철회한 바 있다. 증권가에서는 금융당국이 두산의 사업구조 재편에 제동을 걸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S&P를 포함한 대내외 신용평가도 신경 써야 할 요인이다. S&P는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한 합병 철회에도 두산밥캣을 여전히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지정한 상태다. S&P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두산로보틱스가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상당한 규모의 투자금이 있어야 하는 점, 두산밥캣이 재무적 지원에 나설 경우 신용도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그 이유로 들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